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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2. 2024

#22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소설] 원곡동 쌩닭집-22화-전래동화 나라 ③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맨 얼굴 보여주면 쟤네들이 놀라지 않을까?”

“다 이해할 거예요. 그리고 내가 편해야 남들에게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 볼게. 일단 지금은 아닌 거 같아.”     


누나는 전자담배를 끄고 주머니에 넣더니, 인간의 얼굴로 바꾸고 아이들을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얘들아, 우리 구운 돌멩이 떡 먹으러 가자!”


***     


조금 걸어가자 분홍색의 작은 노점에서 커다란 토끼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이 떡을 구워서 팔고 있었다. 노점상의 이름은 ‘청이네 구운 돌멩이 떡’이었다. 불판 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면서 익어가는 떡의 모양을 보니 영락없는 돌멩이였다. 나는 토끼에게 다가가 슬며시 물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이 돌멩이 떡 아이들이 진짜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해사장님이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먹는 거에는 신경을 쓰시거든요. 원곡시장 청이네 떡집에서 매일매일 공수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일 남은 건 다 진짜 돌멩이로 만든 후, 폐기처분 합니다, 이거 드셔보세요.”     


토끼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이 나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운 돌멩이 떡을 두 개 건네줬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향해서 크게 소리쳤다.     


“어린이 여러분 ~ 따끈하게 구운 돌멩이 떡 하나 먹고 가요!”     


아이들이 한 명씩 떡을 받아 호호 불어가면서 먹기 시작했다. 나도 떡을 가지고 달이 누나에게 갔다.


“누나 이거 드세요. 구운 돌멩이 떡이래요. ”

“아, 나는 많이 먹어봐서 괜찮아. 너 다 먹어.”     


나는 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진짜 맛있는데요?”

“그거 두텁떡이야. 괜히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했겠어?”     

토끼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은 떡을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주머니를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어린이 여러분, 지금 주머니에 나눠주는 돌멩이떡은 먹지 말고 꼭 가져가서 이따가 쓰셔야 해요. 알았죠?”

“네!”     


아이들에게 돌멩이 떡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나눠준 토끼는 바쁘게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두텁떡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달이 누나에게  물었다.   

   

“저 토끼분은 어딜 저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요?”

“이따가 우리가 볼 예정인 지구 도깨비 마을이랑 퍼레이드 준비해야지.”

“아. 여기서는 다들 멀티로 뛰시는구나.”     


***     


“자, 구운 돌멩이 떡 선물도 받았으니 우리 이제 다음 장소로 가 볼까요?”     


해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음 놀이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장난감 새총으로 구렁이를 맞추는 “은혜 갚은 까치” 놀이기구였다. 나보다 더 큰 크기의 커다란 구렁이 인형 한 마리가 초가집 위에 있는 까치집으로 스멀스멀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놀라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자아, 여러분. 저기 까치집으로 올라가는 커다란 구렁이가 보이죠? 구렁이가 까치를 잡아먹으려 해요!”     

“안 돼요!!!”     

“그러면 이 새총으로 우리가 못된 구렁이를 혼내 줄까요? 한 번만 맞추면 벌칙이 있어요. 두 번 모두 맞춰야 벌이 없어져요.”     

 

아까 보았던 귀신과 요괴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아이들에게 장난감 새총을 나눠주면서 나에게도 새총을 하나 건네줬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달이 누나를 쳐다봤다. 달이 누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바이트생이 아이들에게 크게 말했다.      


“여기 아저씨가 시범을 보여줄 거예요.”

“제가요?”     


나는 받은 장난감 새총으로 구렁이를 향해서 두 방을 쐈다. 한 방은 구렁이를 맞췄지만 두 번째는 그만 빗나가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쉬이이익!     


초가집의 나무문이 벌컥 열리면서 또 다른 커다란 구렁이 모양의 인형이 튀어나오더니 나를 진짜 뱀처럼 칭칭 감기 시작했다. 뱀이 소리쳤다.   

 

“네 이놈. 내가 우리 와이프의 원수를 갚겠다!!!”     


“으어어어...”     


내가 놀라자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나를 똬리치고 있는 거대한 인형뱀이 갑자기 입을 크게 열어서 자신의 입에 내 머리를 집어넣었다. 깜짝 놀란 나는 뱀의 커다란 입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으어어어...”     


“아이,, 좀.. 가만히 있어요. 아이들이 재미있어하잖아요. 웃어요! 누가 보면 진짜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어요. 저 이제 사람 안 먹어요.”     


뱀은 나를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뱀의 눈은 내 검은 왼손을 향하고 있었다.  

    

“어? 아.. 네네네..”     


거대한 구렁이 입에 머리가 물린 내가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웃자 아이들이 더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귀신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이 사진기를 가지고 오더니 한 장 찍으면서 말했다.      


“지금 표정 좋아요. 이따가 끝나고 저기 까치누님이랑 같이 담배나 한 대 피워요.”

“아.. 저 담배 안 피우는데,”

“그래요? 안 그럴 얼굴인데.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들어가세요.”


땡땡땡     


어디선가 종이 세 번 울리자 뱀은 똬리를 풀더니 ‘들어가세요’라고 말하고 초가집 뒤편으로 사라졌다.   


***     


해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다리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다리의 이름은 오작교였는데 만들다 만 것처럼 중간이 뚝 끊어져 있었다.     


“세상에.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없어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모두 견우야! 직녀야! 하고 불러봐요.”     


해 아저씨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손을 모아서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견우야! 직녀야!”

     

아이들이 손을 입에 대고 크게 외치자, 푸드드덕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놀이동산에 있던 수많은 까치와 까마귀들이 날아와서 끊어진 다리를 이어줬고, 아이들은 그 위를 재잘거리면서 건너가기 시작했다. 신기해하면서 아이들을 따라 다리를 건너기 직전, 한 아이가 나를 툭툭 쳤다.    

  

“아저씨, 여기는 무게 제한이 있대요. 지금 저 까치가 아저씨를 보면서 ‘그 몸으로 진짜 우리를 밟고 건너시게요?’라고 했어요. 아저씨는 무겁다고 까치다리 말고 밑으로 돌아서 가래요.”     

“나는 괜찮대?”     


달이 누나가 웃으면서 말하자 아이는 까치를 본 후,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까치가 달이 언니는 가볍다고 괜찮대요.”      


나를 빼고 모두 오작교를 건너서 갔고, 나는 혼자 빙 돌아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오작교를 건너서 이동한 전래동화 월드의 다음 장소는 ‘타는 놀이’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갑자기 저 앞에서 어흥! 하는 호랑이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저 앞에 호랑이 탈을 쓴 덩치 좋은 아주머니가 서 있는 곳 위에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고 쓰여 있었다. 해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러분 ~저기 입구 앞에 호랑이 아주머니 보이죠? 호랑이 아주머니에게 떡 안 주면 어~흥!!! 하고 잡아먹혀요. 아까 토끼에게 받은 구운 돌멩이떡을 줘서 입장해 봐요!”     


아이들이 다가가자 호랑이가 거친 여성의 목소리로 말했다.   

  

“어~~~ 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갑작스러운 포효로 놀란 나는 아주머니 옆에 있는 전래동화 월드의 [타는 놀이] 지도를 바라봤다.


****


[같은 시각 전래동화 월드]


"엄마, 나 풍선 사줘."


한 아이가 엄마를 향해서 풍선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괴물탈을 쓴 인형이 걸어오더니 파란 풍선을 집어 들고 아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 착한 어린이에게 아저씨가 풍선 줄게요."

"감사합니다. 해야지."


"감사합니다. "


인사를 한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에게 풍선을 준 아르바이트생을 바라봤다. 아이의 눈에 눈코입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거대하고 파란 요괴가 보였다.


몸에 털이 복실복실한 거대한 인형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을 쳐다보던 아이는 결국 엄마를 보고 크게 소리쳤다.


"엄마, 엄마.. 탈이 살아서 움직여. 사람이 아냐,"

"애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아이의 말을 들은 요괴탈을 쓴 아르바이트생도 흠칫 놀라면서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 아저씨는 탈을 쓴 거란다.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착한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있지."


그러나 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계속해서 인형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저씨, 그러면  탈을 벗어 보세요."

"어? 그... 그건 안 돼."

"이것 봐. 진짜 요괴 맞네."

"아.. 아니라니까."


그 순간 아이가 주변 아이들을 향해서 크게 소리쳤다.


"얘들아, 여기 진짜 요괴가 있어. 진짜야."

"정말? 정말?"


아이들이 탈을 쓴 요괴의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새 수십 명에 달하는 인간 아이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아이는 다시 크게 소리쳤다.


"아저씨, 진짜 요괴가 아니라면 지금 탈을 벗어 보세요."


***


"아이참, 어린이 여러분, 아저씨는 요괴가 아니라니까요."


아르바이트생은 양손을 올리더니 커다란 요괴 탈을 벗었다. 그러자 안에서는 마치 우즈베키스탄 사람과 같은 이국적인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 요괴 아니라고 했지? 맞지?"

"어.. 이상하다. 진짜였는데...."  


요괴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한 아이들은 받은 풍선을 들고 모두 사라졌다. 아이들이 모두 저 멀리 간 것을 확인한 남자는 두터운 털복숭이 팔을 들어 얼굴을 잡더니 두 번째 가면을 벗었다. 인간의 가면을 벗자, 튀어나온 두 눈과 뾰족한 귀, 커다란 입을 가진 요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와. 삼십 년 감수했다. 진짜 걸릴 뻔했네. 요새 인간 아이들 속이기 쉽지 않다니까."

그는 주변의 다양한 요괴탈을 쓰고 걸어가는 아르바이트생들을 향해 크게 이야기했다.


"너희들도 나처럼 이중 가면을 쓰고 일하는 게 좋겠다."

"맞아 맞아. 이중 가면 필요해 보여. 요새 인간 애들 영리해."


주변의 요괴들은 모두 맞장구를 쳤다. 저 멀리서 전래동화 월드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는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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