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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3. 2024

#23 88 청룡열차

[소설] 원곡동 쌩닭집-23화-전래동화 나라 ④청룡열차와 12 지신 목마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나란히 줄을 섰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토끼에게 받은 주머니 속의 돌멩이 떡을 꺼내 호랑이 아줌마에게 주면서 입장하기 시작했다. 호랑이 아줌마는 커다랗고 흰 두건을 쓰고 색동저고리 같은 고운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 맨 뒤에 서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들어간 후, 호랑이 아주머니는 나에게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마치 고양이 손처럼 두툼하고 포근한 손이었다.      



“떡 안 줘? 그게 입장권인데?”

“어..? 저 아까 토끼 선생님이 준 두텁떡 다 먹었는데.. 죄송해요.”

“그래? 괜찮아. 총각이 마지막인가?”

“네? 네. 제가 마지막입니다.”

“어서 들어가. 나는 아이들 도착하기 전에 곶감 파는 다음 장소로 먼저 가야 해.”     


호랑이 아주머니는 아이들 앞으로 급히 달려가더니 저 멀리 보이는 “곶감이 무서워”라고 쓰여 있는 작은 가게로 들어가 무언가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호랑이 아줌마를 본 해 아저씨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호랑이 아줌마가 맛있는 곶감과 달콤한 식혜를 나눠준답니다. 우리 가 볼까요?”     


아이들은 나란히 서서 호랑이 아줌마에게 곶감과 식혜를 받은 후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호랑이 아줌마는 나와 달이 누나를 보더니 오라고 손짓을 했다.      


“총각, 이 곶감하고 수정과 먹어봐,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우리 어른들은 달다구리 식혜보다 가슴 속까지 쨍해지는 시원한 수정과지.”    

 

아줌마는 살얼음이 낀 수정과 위에 커다란 호랑이 손으로 잣을 집어 띄워주었다.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아주머니, 이 호랑이 수염 진짜예요?”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손을 들어서 호랑이 탈에 삐쭉하게 나 있는 희고 긴 콧수염 하나를 잡아서 앞으로 당겼다.

     

크아아앙!!!! 어흥!!!!!!!!!     


호랑이 아줌마는 큰 발을 들어서 진짜 호랑이 같은 포효를 하고는 내 뺨을 냅다 후려쳤다. 어찌나 손이 매우신지, 나는 거의 바닥으로 쓰러질 뻔했다. 휘청거리는 나를 달이 누나가 잽싸게 잡아줬다.     


“아파 이놈아. 뽑지 마, 진짜 수염이야,”

“엇.. 죄송합니다. 진짜 호랑이 시구나. 몰랐습니다.”     


***     


곶감하고 식혜를 다 먹은 아이들을 향해 아저씨가 크게 이야기했다.      


“여러분 우리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할까요? 이번에 우리는 용님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날아 볼 거예요. 우리 어린이를 사랑하는 용님께서 직접 등에 태워주신대요!”     


곶감과 식혜를 다 먹은 아이들은 해 선생님을 따라서 다음 장소인 ‘용님 등 타기’ 놀이기구로 향했다. 저 멀리 파란색의 88 청룡열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열차가 공중에 붕 떠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달이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제 눈이 이상한 걸까요? 저기 보이는 청룡 열차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

“당연하지. 진짜 용님이니까. 어린이를 정말로 좋아하시거든. 일이 없으실 때는 여기 오셔서 저렇게 자신의 등에 아이들을 태워서 하늘을 날고 오셔.”

“진짜 하늘을 난다고요?”

“응. 근데 우리는 못 타. 어린이만 태워주셔. 우리는 여기 벤치에 앉아서 수정과나 먹으면서 기다리자.”  

   

벤치에 앉아서 멀리서 바라보니 정말로 아이들이 50 미터는 되어 보이는 긴 청룡의 등에 올라타서 하늘을 날고 있는 게 보였다. 용님은 높이 날지는 않고 있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날던 용님이 우리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부딪힐 거 같은데요?”     


쉬이 이 이 이이익!!  꺄르르르르!!     


용님의 등에 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거대한 용님이 날아오더니 우리 바로 앞을 쉬이익 하면서 낮게 날아서 지나갔다. 용님의 수염이 흩날리면서 나를 잠시 스치듯이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용님이 나에게 윙크를 하고 지나간 것 같았다.     



“와.. 진짜 하늘을 나네요. 재밌겠다. 가까이서 용님 보니 장난 아니네요.”

“용님 등타기는 진짜 재미있지. 너나 나나 나이를 처먹어서 이제는 용님도 못 타네. 우리 언제 이렇게 나이를 처 잡수셨대...”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누나는 저보다 수천 년 더 사신 거 아니에요?”

“닥쳐!”     


다시 민숭민숭한 맨 얼굴로 변한 달이 누나는 다시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피기 시작했다. 나도 남아있는 수정과를 먹으면서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용님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둥그런 대관람차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누나, 애들 나오면 저기 대관람차로 가겠네요?”

“아니. 거기랑 놀이방은 안 가.”

“엇.. 왜요?”

“저기는 ‘전래동화 관람차’야. 동화 하나를 선택해서 관람차 안으로 들어가면 한 바퀴를 돌면서 이야기 할아버지와 함께 전래동화 현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거든, 할아버지와 함께 전래동화 속으로 들어가면 12 지신 애들이 어떻게 되겠어?”

“아.. 인형으로 변하겠군요. 저는 그럼 다음에 따로 한번 와봐야겠어요. 그럼 놀이방은요? 거기도 같아요?”

“놀이방도 같아. 거기서는 진짜 혹부리 영감님이 나와서 옛날이야기를 해주거든.”

“와. 진짜 재밌겠다.”    

 

순식간에 인간의 얼굴로 변한 달이 누나는 나를 쳐다봤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다. 애들 나온다, 가자.”     



***     


해 아저씨는 청룡을 타고 온 아이들을 데리고 정말로 대관람차를 건너뛰고 ‘12 지신 목마 타기’로 이동했다. 커다란 회전목마가 천천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회전하는 속도가 급속하게 줄더니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는 속도가 되었다. 회전목마 속의 타는 인형들은 모두 12 지신 동물의 모양으로 만든 인형들이었고 살아서 움직이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해아저씨가 아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러분! 여기서 내가 선택한 12 지신이 나의 수호신이 되어준대요, 우리 모두 12 지신의 등에 올라타 볼까요?”     

“네!”     



해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12 지신에 맞는 인형을 찾아서 태워줬다. 저 앞에 보이는 ‘팥죽 할매집’에서 아까 보았던 호랑이 아줌마가 어느새 와서 따끈하고 달콤한 팥죽을 나눠주고 있었다. 회전목마를 다 탄 아이들이 와아~ 하면서 호랑이 아줌마가 나눠주는 단팥죽을 받기 위해서 걸어갔다. 우리도 나란히 아이들 뒤에 줄을 서서 그릇에 있는 단팥죽을 받았다. 팥죽을 푸시던 호랑이 아줌마가 나를 보더니 그릉그릉 하면서 말했다.

 

“총각, 새알 더 줄까? 많이 있으니까 많이 먹어.”     


인심도 손도 크신 호랑이 아주머니는 주걱에 새알을 듬뿍 담아서 내 팥죽 그릇으로 덜어주셨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달이 누나와 같이 맛있게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     


“와 이제 슬슬 피곤한데요? 애들이라 그런가.. 지치지도 않나.”

“지금 얼마나 즐겁겠어.”

“어휴, 이제 뭐가 남은 거예요?”

“음... 이제 ‘지구 도깨비 마을’이 남았네. 그게 끝나면 저기 보이는 북두칠성 돌다리를 건너서 [놀이 나라]로 가게 되어 있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 우리는 [놀이나라]는 패스할 거야.”    


나는 손에 든 지도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놀이나라]의 두 방인, 혹부리 할아버지 노래방과 요술부채 놀이방과 관련된 별도의 안내가 있었다.   


    

“누나, 저 먼저 나가 있으면 안돼요? 너무 피곤한데.”

“안돼! 내가 뭐라고 했니,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들이라고 했지?”     


****


우리는 ‘지구 도깨비 마을’로 향했다. 그곳은 배를 타고 동굴로 들어가면 양쪽에서 수많은 도깨비들과 요괴들이 우리를 향해서 장난을 치고 서로 배에 달린 물총을 쏘는 곳이었다. 우리가 탄 배가 안으로 들어가니 신나는 도깨비 송이 흘러나왔다.      


“금나와라와라 ~ 뚜욱딱! 은나와라와라 ~ 뚜욱딱!”     


저 멀리서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향해 내리치는 낯익은 도깨비가 보였다.     


“엇! 이 과장님?”

“엇! 이준 님?”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여기 전래동화 월드에서 일하는 우리 도깨비들 노동환경 점검하러 왔지요.”

“일하러 오신 거예요?”

“그럼요. 먹고사는 건 역시 힘듭니다.”     


이 과장은 우리 배로 껑충 뛰어서 올라탔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이 동굴은 제가 스토리라인을 짜고 관리하고 있거든요. 저어기 가마솥 안에서 삶아지고 있는 커다란 도깨비 보이시죠? 요괴들이 나무주걱으로 막 휘젓는.”


“네. 와.. 저 도깨비는 이 과장님보다 적어도 세 배는 커 보이는데요?”

“우리 아들이에요.”     

“네에? 결혼하셨어요?”

“엥? 제가 말 안 했나? 저 애가 다섯이에요. 저기 보이는 재가 큰 애고 여기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 중이랍니다. 나중에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세요. 야야, 거기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아이 참. 적혀 있는 스토리대로 하라니깐!”     


호쿠사이가 그린 ‘오니 퇴치 장면’


이 과장이 막 짜증을 내면서 주변의 도깨비와 요괴들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오늘 점검을 나왔지요. 야야야!! 아들, 너 똑바로 안 할래? 뜨거운 표정을 지어야지. 지금 너는 가마솥에서 삶아지고 있는 거라고. 웃으면 어떻게 해. 아이 참. 여기 스토리보드에 써 있잖아. 괴로운 표정, 그래, 그 표정!”     


어느새 배가 동굴 밖으로 나오고, 이 과장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저는 점검마저 하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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