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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21. 2024

#21 아르바이트생들

[소설] 원곡동 쌩닭집-21화-전래동화 나라 ②아르바이트

아이들이 모자를 다 쓴 것을 확인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후다닥 앞으로 뛰어가셨다.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상점으로 들어가시더니 빵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아이들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가게의 이름은 ‘도깨비방망이빵’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먹고 있는 빵은 작은 방망이 모양이었다. 한 아이가 이야기했다.


“할아버지, 이거 초콜릿 맛이에요.”

“초코가 아니라 개암나무 열매로 만든 쨈이란다.”

“개암나무요?”

“응, 다른 말로 헤이즐넛이라고도 하지. 이 헤이즐넛 쨈은 우리 할망구가 원조야.”     


할아버지 옆에 있는 커다란 유리병에서 달콤한 향기가 퍼져나왔다. 쨈을 바른 방망이 빵을 아이들에게 나눠준 할아버지가 어느 내 옆으로 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여기서는 원래 할망구가 방망이 빵을 주면서 재미있는 도깨비방망이 전래동화를 같이 들려줘야 하는데, 12 지신 아이들이라서 패스한 거라네.”

“아. 그렇군요, 애들이 지금 잠이 들면 안 되죠.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     


아이들은 다시 해태 아저씨의 안내를 따라 도깨비방망이 빵을 먹으면서 ’ 흥부놀부게임‘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초가집 위에 집채만 한 노란 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은 요괴와 귀신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의 안내에 따라 둥글둥글한 날이 있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장난감 톱을 받았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쓰고 있는 요괴와 귀신탈은 귀여운 탈이었는데, 어찌나 정교하게 잘 만들었는지 탈의 입과 눈코입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2인 1조로 저마다 자기들 앞에 있는 박을 양쪽에서 방금 받은 장난감 톱을 가지고 천천히 켜기 시작했다. 해태 아저씨는 아이들을 보고 신이 나서 깃발을 흔들면서 크게 이야기했다.     


“영차영차. 조금만 더 열심히 켜면 박이 곧 터질 거예요! 영차영차.”     


아이들이 까르르르 거리면서 정신없이 박을 켜고 있는 사이, 나는 초가집의 뒤편으로 살짝 돌아가봤다. 그곳에는 방금 아이들에게 장난감 톱을 나눠준 귀신과 요괴탈을 쓴 5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박이 터지면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을 가지고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부 아르바이트생은 사람보다 훨씬 큰 전체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들이 쓰고 있는 모형 탈은 일반 사람얼굴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와, 지금 쓰고 계신 귀신과 요괴 탈, 정말 잘 만든 것 같아요. 표정까지 리얼한데요?”     


귀신 탈을 쓴 여자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어. 우리 이거 탈 아닌데.. 진짜 얼굴인데..”     


주황색 얼굴에 외눈박이 대머리 요괴 한 분이 전자담배를 피우면서 나를 보고 이야기했다.      


“저희를 보고 사람이 인형 탈을 쓰고 있는 걸로 착각을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진짜 여기 원곡동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요괴와 귀신들인데.”     

“아.. 죄송해요. 저는 다들 탈을 쓰고 계신 줄 알았어요.”     


대머리 요괴는 나의 검은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손 멋진데요? 이 검은손...예전에 본 것 같은데...혹시 오래 전에 어머님이랑 같이 이 곳 [전래동화 월드]에 오신 적 있지 않으세요? 앗. 나갈 시간 되었다. 잠시만요.”     

***     


퍼엉!    


커다란 효과음과 함께 연기가 나면서 초가집 뒤에 숨어있던 귀신과 요괴들이 급히 전자담배를 끈 후, 아이들 앞으로 후다닥 뛰어가서 1번부터 12번까지 번호가 적힌 작은 상자를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선물상자를 받은 아이들은 연못의 옆에 있는 ‘금도끼은도끼 게임’ 장소로 이동했다. 작은 연못 앞에 모인 아이들을 향해 해태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자, 여러분들이 방금 귀신과 요괴 언니오빠들한테 받은 상자를 저 연못으로 던져 보세요. 산신령님이 나타나서 착한 사람에게는 더 큰 선물로 돌려주실 거예요.”    

   

첫 번째 아이가 방금 전에 받은 (1번) 이라고 쓰여진 선물상자를 연못에 던졌다.      


퍼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연못에서 하얀 수염에 하얀 옷을 입은 산신령이 나타나 (2번) 상자를 들고 아이를 향해 물었다.      


“이 2번 선물상자가 네 선물상자니?”

“아니요! 저는 1번이에요.”

“우리 아이는 거짓말을 안하는 착한 아이로구나, 내가 더 좋은 선물을 주도록 하겠다.”     


산신령님은 주머니를 뒤적거리시더니 귀여운 쥐 인형을 아이에게 전해줬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쥐인형을 받고 뒤로 이동했다. 그렇게 12번 아이까지 차례대로 자신의 선물상자를 연못에 던져서 자신의 12지신에 맞는 귀여운 인형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달이 누나에게 스윽 다가가서 물었다.      



“누나, 저 산신령 할아버지 진짜에요?”

“당연하지. 주말에는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거야.”

"산신령이 아르바이트를요?"

"그분들도 신성한 노동을 해야지."

"이곳 원곡동은 산신령님도 노동을 해야 먹고사는구나.."

"석이오빠도 원곡사에서 강의 하시잖아. 그게 일이지."

"생각해보니 진짜 그렇네요."


나는 잠잠해진 연못을 보다가 달이누나를 보면서 말했다.      


“누나, 우리도 여기에 뭐든 던지면 산신령님이 선물로 바꿔주실까요?”

“글쎄? 저거 다 자비로 준비하는 선물인데 바꿔주실지는 모르겠네?”

“아..선물은 자비로 준비하시는 거였군요. ”     

“그럼 이거 한번 던져볼래?”     


달이 누나가 나무 옆에 있던 장난감같은 작은 동도끼를 집어서 나에게 건네줬다.      


“이 동도끼를 연못으로 던져봐, 혹시 알아, 산신령님이 금도끼로 바꿔줄지.”

“오.대박. 그럼..한번 던져 볼까요?”     


나는 동도끼를 달이 누나에게 받았다. 생각보다 꽤 묵직했다.      


풍덩!!     


동도끼를 연못으로 던졌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동화는 동화일 뿐인데요?”     


우리는 웃으면서 아이들을 따라서 다음 게임 장소로 이동했다.


퍼엉!  


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번쩍거리는 금도끼를 들고 연못에서 산신령님이 나타나 말했다.     


“산신령 할아버지가 잠깐 화장실 갔다오느라 좀 늦었어요, 이 금도끼가 네 도끼...어? 다 어디갔어?”    


산신령님은 금도끼를 들고 두리번 거리시다가 다시 연못으로 사라졌다.  


***     


아이들이 향한 곳은 ‘3년 고개’라는 게임을 하는 곳이었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커다란 투명한 공에 들어간 아이들이 몸을 굴려서 공과 함께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오는 게임이었는데, 얼핏 봐도 세상 안전하게 만들어진 두툼하고 투명한 공이었다. 해선생님이 아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곳은 3년 고개라는 곳이에요. 저기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서 굴러서 내려오면, 한번 구를 때마다 수명이 3년 늘어난다고 하네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너~무 좋겠어요. 우리 모두 공을 타러 언덕으로 올라가 볼까요?”     


“네!!!!”     


해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나와 달이 누나는 올라가지 않고 언덕 밑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투명한 공에 들어가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누나의 얼굴은 사람이 아닌 달걀귀신과 같이 민숭민숭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달이 누나, 아직까지 재네들이 끔찍해요?”

“당연하지, 지금 해선생님이랑 노느라 저러지 좀만 지나 봐, 밥 달라고, 졸리다고, 놀아달라고 땡깡부릴 걸? 으으으.. 생각만 해도 싫어.”

“누나도 참. 누가 보면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본 줄 알겠어요.”     


누나는 주머니를 부스럭거리더니 전자 담배를 꺼냈다. 민숭민숭한 계란과 같은 얼굴에서 입이 생겨나더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 누나도 담배 피우시는구나.”

“넌 안 피니?”

“네, 영 입맛에 안 맞더라고요. 몇 번 피워보다 말았어요.”

“누가 담배를 입맛에 맞아서 피니?”

“그럼요?”     

“사람이든 요괴든 귀신이든 모두 사는 게 괴로워서 담배 피는 거야. 한 번 피워볼래? 멘솔이야.”

“아닙니다. 기왕 안 핀 거 끝까지 금연하려고요.”

“잘 생각했어.”

“근데 누나는 지금 그 얼굴이 가장 편하신 거죠?”

“왜? 보기 불편하니? 다시 바꿀까?”

“아니요. 궁금해서요. 누구나 가장 편한 얼굴이 있잖아요. 화장을 안 한 얼굴처럼.”

“응. 나는 이 얼굴이 제일 편해.”

“그러면 인간의 얼굴로 변했을 때는 불편함을 느끼시는 거예요? 우리가 마스크팩 썼을 때 그런 느낌인가?”

“맞아. 딱 마스크팩을 쓰고 다니는 그 느낌이야.”

“아이들 앞에서도 일부러 변하지 말고 지금의 편한 얼굴로 보여주세요. 뭐 어때요.”     


달이 누나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놀랐는지 나를 쳐다봤다. 언덕 위에서 모든 아이들이 공과 함께 굴러서 내려와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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