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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19. 2024

#19 돌아가는 길

[소설] 원곡동 쌩닭집-19화-템플스테이 ⑧돌아가는 길

석가모니의 설법강의가 막 시작한 그 시간, 각황전 안은 긴장감과 적막감만이 맴돌았다. 심봉사와 청이 아주머니는 자신의 앞에 있는 금빛 불상들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긴 적막감 끝에 심봉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용왕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비서관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청이 아주머니는 여전히 불상을 바라보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딸은 아직 이 애비에 대한 화가 안 풀린 것이냐?”

”풀리고 말고 할 게 뭐 있어요. 다 지난 일인데.”

”아무리 지난 일이라 해도 이 애비는 우리 청이에게 면목이 없구나. 어리석은 내가 요괴의 꼬드김에 넘어가다니...”

”그놈의 면목. 그나저나 곧 아버지 형이 끝난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심봉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끝나면 진짜 용궁으로 오셔서 사실 거예요? 아무리 와서 살라고 했어도 그건 좀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용궁에서 산다고? 내가? 그 무슨 소리냐?”


“신랑이 그러던데요? 그러면 용궁에서 둘이 사세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신랑이 친구 염라대왕에게 부탁해서 형을 200년 이상 깎아 줬으면 감사해하고 조용히 있으면 어련히 제가 알아서 잘해줄까! 그 새 못 참고 올해 말에 출소하면 용궁에 자리가 있는지 신랑에게 물어보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사람은 안 바뀐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요. 아무튼 저는 이혼하고 혼자 살 거니까, 아빠는 용궁 가서 저 인간하고 살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세요.”     


심봉사는 놀란 눈으로 심청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이 늙은 애비가 아무리 갈 데가 없고 면목이 없어도 그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싶구나.”     

“그러면 이 모든 건 용서방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한 거예요?”     


심봉사는 심청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애비는 매일매일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단다. 용서방이 얼마 전 내가 벌을 받고 있는 교도소에 와서 출소 후, 용궁에 와서 살라고 했지만 나는 싫다고 했다.”

“그럼 출소 후 어디서 어떻게 사시려고요? 환생을 하실 건가요?”

“나 같은 죄인은 환생도 마음대로 못 한다. 나는 이번에 출소를 하지 않을 것이다.”     


출소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심청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다.    

  

“출소를 하지 않는다니요?”

“나는 원래 200년 이상 형을 더 받아야 하는 몸이었다. 나는 형을 모두 채우고 나올 것이다. 아까 석가모니 님에게 내 뜻을 전했고, 석가모니 님도 그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심봉사는 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우리 딸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애비가 되고 싶구나, 인맥이나 편법을 쓰면서 내 형을 줄인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못난 나는 그것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러면....”     


그 후로도 약 10분 정도 심봉사의 말을 듣는 심청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     


잠시 후,      


심청이는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황전을 나갔다. 각황사를 문을 열고 나가자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자네가 여기 원곡사까지 어쩐 일인가?”

“용왕님께서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밤이 늦었네, 내일 아침에 돌아가게나. 나는 다음 주에 아버님을 모셔다 드린 후에 돌아가도록 가겠네,”

“그러면 저도 그때까지 이곳 원곡사에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공기가 찹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심청은 하늘의 달을 쳐다봤다. 한참 달을 쳐다본 후, 템플스테이를 하는 방으로 걸어갔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몇 걸음 뒤로 그 뒤를 따랐다.     

 

***     


잠시 후,      


1주일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사람들이 모인 커다란 방 안에서, 두상이 둥글둥글한 귀여운 동자승들이 우리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눠줬다. 그 뒤를 이어서 원곡사 스님들이 입으시는 수련복을 나눠주기 위해서 다른 스님들이 들어오셨다. 동자승들이 나눠준 종이에는 일주일간 이어지는 원곡사 템플스테이 스케줄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일정이 108배와 명상, 그리고 자유시간이었다.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동행인과의 대화를 삼가해 달라는 게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오늘 체험하시는 원곡사 템플스테이는 일주일간 진행 예정입니다. 이곳 원곡사 템플스테이에서 편안하게 여러분의 지친 마음과 몸을 쉬면서 원곡사의 평온함과 법향을 느껴보세요~!


<아래 사항을 꼼꼼히 읽어주세요>


※ 방사 사용 : 1인 1실이 기본이며, 본인 제외 2명 이상의 동행인이 있을 시 4인실 사용이 가능합니다.


※ 전체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 1일 차: 오후 3시 도착, 입소안내, 사찰 탐방, 저녁, 발우공양, 자유시간, 취침


● 2~6일 차: 아침, 108배, 명상, 점심, 자유시간 저녁, 발우공양, 자유시간, 취침


● 7일 차: 아침, 108배, 명상, 점심, 퇴소안내, 사찰 이탈


※ 원곡사 템플스테이는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가급적 동행인과의 대화를 삼가 주시고, 나 스스로에 대한 여행으로 진정한 나의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템플스테이를 통해 평안하고 행복한, 나를 찾는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원곡사 템플스테이




정말로 우리는 1주일간 서로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청이 아주머니의 곁을 지키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분도 옆에서 같이 108배를 하면서 1주일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석가모니 님이 이야기하신 진정한 나의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1주일간의 템플스테이를 마친 우리는 마지막 점심식사를 한 후, 퇴소 안내를 듣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나는 교도소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할아버지와 길동의 얼굴을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만기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곳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석가모니 님과의 여러 차례에 걸친 이야기 덕분에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셨는지 얼굴이 매우 편안해 보였다. 반면 길동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할아버지와 길동은 1주일 간 템플스테이를 한 원곡사를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뒤를 나와 청이 아주머니,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그 뒤를 걸어갔다. 그는 대웅전 앞에서 청이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청이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인 후, 심 씨 할아버지와 주지스님을 따라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     


“다음 버스가 1시간 정도 뒤에 있네요?”     


주차장의 버스 안내 표지판에 있는 배차 시간을 확인한 나는 심 씨 할아버지와 길동이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리고 조만간 다시 보는 척해주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안 되는 거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버스 시간 지났을 걸? 내가 운전해 줄 테니까 우리 원곡사 승합버스 타고 가.”     


뒤따라 오신 주지스님은 앞에 보이는 15인승 승합버스로 걸어가시더니 운전석 문을 열고 앉으셨다.   


“뭐 해? 안 타고? 거기서 1시간 기다리려고?”     


***     


버스를 타고 원곡 요괴 교도소로 향하는 약 1시간 내내, 맨 뒤에 혼자 앉으신 청이 아주머니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셨다. 길동은 고개를 돌려 청이 아주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너무 슬퍼 마세요. 어르신은 곧 만기 출소이십니다. 조만간 뵐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승합차의 맨 앞에서 운전을 하시는 주지스님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딸에게 울지 말라고, 곧 출소해서 볼 거라고 한마디 하실 법도 하신데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계셨다. 쾌활하신 주지스님 석가모니도 아무 말 없이 운전을 계속하셨다. 승합차 안이 청이 아주머니의 울음소리로 가득 차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원곡 요괴 교도소]가 가까워졌는지 승합차 안은 청량한 솔숲의 향에서 어느 순간 비릿한 피 냄새로 가득했다. 순간적으로 바뀐 냄새를 감지했는지 내 옆에 앉은 길동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멀리 보이는 교도소 정문을 바라봤다. 심 씨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길동의 손을 꼬옥 잡아줬다.      


***     


승합차가 멈춘 요괴 교도소 정문 앞에는 교도소 소장인 철물점 할머니와 사무장이 직접 나와 있었다.  

    

“석이 오빠, 여기요.”     


소장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줬다. 우리는 천천히 승합차를 내려서 소장 앞에 섰다. 교도소장님의 옆에 선 커다란 덩치의 사무장은 옆구리에 찬 검을 만지작거렸다. 검을 본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교도소장님은 길동을 보면서 크게 말했다.     


“안 도망갔네? 심 씨야 만기 출소니 도망가는 게 손해니까 돌아오는 건 당연하고.”   

 

소장님은 종이 한 장과 모나미 볼펜을 주지스님에게 내밀었다.     

 

“석이 오빠, 여기 사인하세요.”

“아니 뭐 이런 걸 내가 사인까지 해야 하는 거야? 허,, 참.. 나..”

“우리 [교도소] 정관(定款)에 나와 있어서 받아야 해요. 심 씨도 여기에 사인해.”    

 

교도소장은 다른 종이 한 장을 심학규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그 종이를 받고 웃으면서 사인을 하시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청이 아주머니가 흐느끼면서 사인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았다. 심 씨 할아버지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청아.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할아버지는 사인을 한 종이를 소장님에게 건네준 후, 딸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나는 나의 죗값을 모두 치르고 당당하게 우리 딸을 마주하고 싶구나.”     

“이제 들어가시지요?”     


소장님이 할아버지와 길동을 보면서 말했다. 둘은 주지스님을 향해서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합장 반배를 했다. 합장 후, 길동은 주지스님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덕분에 영혼의 평안을 얻고 돌아갑니다. 제가 죗값을 치르고 언젠가 다시 나오면, 꼭 한번 다시 뵙고 싶습니다. 그럼..”     


길동은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준이형, 고마웠어요. 이제 형이라 불러도 되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볼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볼 때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저 이만 가 볼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동이는 교도소 정문을 지키고 서 있는 사무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무장이 거대한 칼을 빼들었다.      


***     


“지금 어딜 들어가는 거야?”     


이를 지켜보던 교도소장님이 길동을 보면서 크게 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주지스님이 사인하신 종이를 들어 보여주며 크게 읽기 시작했다.     


“여기 교도소 정관 1-3조 항에 의해서, 홍길동의 남은 200년 벌을 받는 기간을 여기 심학규가 대신하여 200년간 추가로 받는 걸로 협의한다. 심학규가 추가로 벌을 받는 기간 동안 홍길동은 용궁에서 일을 하면서 심학규의 명복을 비는 것으로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놀란 홍길동은 심학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교도소장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읽어서 마무리했다.    

  

“이 모든 것을 원곡사 주지 석가모니가 보증하도록 하며,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지는 것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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