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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Oct 18. 2024

월미바다열차 두 번째 차량

[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 12

지은이 월미아쿠아리움에서 일을 시작하고 세 번째로 맞이하는 금요일이었다. 11시 50분이 되자 곰소장과 문선생은 역시나 퇴근을 서둘렀다. 지은은 사무실의 벽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두 분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잠깐 ‘남극이빨고기’ (파타고니아 이빨고기 (Patagonian Toothfish)) 한번 더 살펴보고 갈게요. 아까 봤을 때 어디가 안 좋은지 밥을 잘 안 먹고 비실비실 하더라구요. 제가 문 잘 잠그고 퇴근하겠습니다.“


“안돼!!!!!!!!!!!!!!!!!!!!!!!!!!!!!!!!!”     


지은이 말을 하자마자 곰소장과 문선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소리쳤다. 두 분의 과격한 반응에 놀란 지은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곰소장을 보면서 물었다.      


"네? 안된다고요? 왜요?"

"방금 내가 메로양 보고 왔는데, 밥 잘 먹고 멀쩡해.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


"메로양이요?"

"파타고니아 이빨고기 (Patagonian Toothfish)를 우리나라에서는 메로라고도 부르지."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메로구이의 메로요? 메로는 다른 물고기 아니었어요?"

"대구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Merluza(메루자)'가 일본에서 '메로'라고 변형되고 우리나라로 그대로 유입되어서 메로라고 부른거야. 정식 명칭은 파타고니아 이빨고기 (Patagonian Toothfish)지. 우리나라 말로는 ‘비막치어’, ‘흑태’라고도 하고."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은 괜찮다고요? 이렇게 빨리 좋아졌다구요?"     


지은의 질문에 이번에는 문선생이 대답했다.      


"그 가시나. 지금 다이어트 중이야. 지가 살 뺀다고 밥 안 먹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다이어트요? 메로라는 물고기가 다이어트를 한다구요?"



”얼마전에 누가 기름치 부장이랑 자기를 헷갈려 하는 걸 보고는 메로 그 가시나가 다이어트 시작한 거 같더라고.“

“네? 기름치 부장이랑 메로를 헷갈려 했다고요?”


"아, 내가 방금 한 말은 무시해. 암튼 지금은 다 좋아졌으니까 우리도 빨리 퇴근하자."      


문선생이 지은의 어깨를 잡고 방을 나가자 곰소장이 둘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둘이 먼저 가, 나는 문 잠그고 나갈게. 주말 푹 쉬고 다음 주에 보자고."

"네, 소장님, 저희 먼저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문선생은 지은의 어깨를 붙잡고 퇴근을 서둘렀다.      


우당탕탕탕     


매주 금요일과 같이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월미아쿠아리움 천장 배수관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잠깐 기다려, 나 화장 지우고 금방 나올께.”


1분도 안되서 진한 화장을 지우고 예쁜 원피스로 말끔하게 갈아입고 나온 문선생을 본 지은이 놀라면서 말했다.


“와. 대박, 선배님 화장 진짜 빨리 지우세요. 뭘로 지우시는 거에요?”

"특별한 거 없어. 그냥 익숙하니까 빨리 하는 거지. 그나저나 우리 지은샘 오늘 뭐 특별한 계획 있어?"

"아니요. 오늘은 혼자 저기 보이는 바다열차를 타고 월미도를 한 바퀴 돌아볼까 해요. 아직 한 번도 안 타봤거든요."


"그래? 그러면 내가 같이 가줄까? 오늘은 나 조금 늦게 집에 가도 되거든. 우리 밥도 같이 먹고 카페월미도에서 새로 나온 커피도 한잔 하자. 저기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에 차이나타운 가서 자장면 어때?"

"앗, 너무 좋아요. 저 자장면 좋아해요."     


월미 아쿠아리움 정문을 나온 문선생과 지은은 저 멀리 보이는 월미바다열차 정거장을 향해 걸어갔다. 정거장의 이름은 ‘월미바다역’이었다. 둘은 티켓을 사서 열차를 타는 정거장으로 올라갔다.   



***     


"생각보다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엄청 많네요?"     


지은은 월미바다열차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찬 정거장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지은이 정거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니 특이하게도 월미바다열차의 뒷 칸의 열차를 타는 곳에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지은은 문선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열차의 뒤칸에만 줄을 서 있어요."

"월미바다열차는 뒷 칸이 바다가 더 잘 보이거든."


"아.."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야. 우리는 그냥 앞칸에 타자."


"네, 좋아요."     


지은과 문선생은 월미바다열차의 앞 칸에 줄을 서서 열차를 기다렸다. 잠시 뒤 인기척을 느낀 지은이 뒤를 돌아보자 지은의 뒤에는 키가 180cm는 되어 보이는 가냘픈 여성이 줄을 서 있었다.


그녀는 한여름임에도 긴 검은 코트와 검은 모자를 입고 있었고, 무릎에 닿고도 남을 찰랑이는 금발머리에 신비로운 주황빛 눈동자에 긴 속눈썹을 가진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여성의 이미지에 지은은 입을 틀어막으면서 소리쳤다.      



"헉... 이분은 은하철도 만화에 나오는 메..."

"안녕하세요, 저는 이곳 월미바다열차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메팀장입니다."


"메팀장이요?"

"지은샘, 여기는 월미바다열차의 마케팅과 홍보를 담당하는 바다열차팀의 메팀장이야."


"바다열차팀이요?"

"응, 이 월미 바다열차도 우리 [월미수산]이 운영 및 유지보수를 담당하거든, 우리 메팀장이 월미바다열차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지. 저것도 다 메팀장 작품이야."


문선생은 약사내에 있는 커다란 간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월미바다열차의 캐릭터인 '해(海)미리'와 '해(海)누비'가 그려져 있었고, 옆에는 바다열차의 각 역마다 있는 편의시설물이 안내되어 있었다.



"와, 그렇구나. 캐릭터 귀엽고 깜찍해요. 각 역마다 테미시설도 재미있을 거 같구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이 좀 필요한 거 같아서 지금 기획 중입니다."


"메팀장, 그동안 사무실에서 일만 했는데 주말에는 간만에 집에서 푹 쉬겠네?"


"네, 이번주는 푹 쉬려구요. 아 참, 아까 영양보조제 감사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다이어트 심하게 하지 말라고, 지금도 충분히 날씬하고 예뻐."


"에이. 문선생님이 더 예쁘고 날씬하시죠.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그래. 들어가. 주말 잘 보내고."     


저 멀리서 두 량짜리 월미바다열차가 정거장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메팀장이라고 하는 금발의 여성은 지은과 문선생이 서 있는 앞 칸이 아닌,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두 번째 칸에 줄을 섰다. 열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차량에 콩나물시루처럼 꽉 채워서 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지은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텅 빈 앞 차량에 문선생과 같이 탑승했다.      


'아무리 바다가 잘 보여도 저렇게 미어터지게 타면 아무것도 안 보이지 않나?'


***


열차는 월미바다역을 출발했다. 첫 칸에는 문선생과 지은밖에 없었고, 두 번째 칸은 미어 터질 듯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월미바다열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연경관(바다·산·섬 등), 역사(개항근대사, 한국전쟁사등), 산업 현장(항구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도심형 관광모노레일입니다. 총 운행거리는 약 6km이며, 평균시속 9km의 속도로 월미도를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2분 정도 소요됩니다. 지상으로부터 7m에서 최고 18m 높이에서 월미도 경관 및 인천내항, 서해바다와 멀리 인천대교까지 조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낙조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인천의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명물입니다.      


경관이 잘 보이는 월미바다열차의 첫 차량 창가에서 지은과 문선생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열차가 멈춰 서더니 안내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저희는 잠시 후 빅물관역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곳에서 1분 정도 열차는 멈춰 설 예정이오니, 관광객 여러분들께서는 [월미문화의 거리역]과 [박물관역] 중간 지점에서 멋진 월미도 바다를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은은 연신 카메라로 바깥 풍경을 찍으면서 말했다.


"와. 여기서는 진짜 바다가 잘 보이네요. 지금 우리는 바다 위에 있는 거죠? 흔들리지 말고 이렇게 사진 잘 찍으라고 중간에 열차도 멈춰 주시고, 서비스 너무 좋은데요?"

"응,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아래가 서해바다지. 수심이 꽤 깊어."

"여기도 잘 보이는데 굳이 뒤에 탈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그런데..."     

"그런데?"

"제가 묵고 있는 월미호텔에서 보는 월미도랑은 좀 다른 거 같아요."

"어떻게 다른데?"

"뭐랄까. 제 방에서 보는 월미도는 약간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 지은샘 하와이 가봤어?"

"아니요. TV로만 봤죠."

"그래서 그래. 직접 하와이 가서 보면 여기 월미도 바다랑 크게 차이 없다? 다 화면발이야."

"정말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어머, 저기도 너무 예뻐요."


지은은 다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덜컹덜컹덜컹

우르르르르르

최아아아아악     


그 순간 열차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커다란 폭포와 같은 소리가 들린 후, 열차는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음 역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역은 박물관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월미바다열차의 첫 차량에는 지은과 문선생이 앉아있고, 두 번째 차량은 텅 빈 상태에서 박물관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은은 아직까지 뒷 차량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진 것을 모르고 창 밖의 바다 풍경을 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     


방금 전 열차가 [월미문화의 거리역]과 [박물관역] 중간에서 잠시 멈춰 선 그 시간이었다.


월미바다열차는 바다 위 열차 선로에 있었고, 열차의 바로 아래는 파란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앞 칸에 타고 있던 지은과 문선생이 열차 밖의 풍경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두 번째 열차 차량이 순간 흔들거렸다. 열차의 바닥 중간에 마치 영화와 같이 문이 열리자 열차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다로 떨어지는 사람들은 환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다들 주말 잘 보내세요"

"주말 잘 보내세요"


그 후 약 30초간 월미바다열차 두 번째 차량 바닥의 문을 통해서 월미수산 사람들은 모두 인천항구 인근의 바닷속으로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빠지기 시작했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월미수산 사람들은 모두 다양한 종류의 해양식물들로 변한 후,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헤엄쳐서 어느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덜컹덜컹덜컹


두 번째 열차 차량의 열렸던 바닥문이 흔들거리면서 닫히자, 월미바다열차는 마지막 역인 [박물관역] 방향으로 출발했다.      






월미바다열차 두 번째 차량을 타고 가는 사람 중, 키는 메팀장의 허리 정도에 코는 뭉뚝하고 긴 갈색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두 눈은 마치 동전마냥 동그랗게 얼굴 가운데에 모여 있었고, 얼굴 전체에는 마치 일부러 기름을 바른 것처럼 반질반질했다. 챙이 넓은 은갈색 모자와 망토를 걸친 그는. 옆에서 같이 낙하하고 있는 메팀장을 보고는 말했다.



"엇, 월미수산 일벌레 메팀장이 이 시간이 퇴근이라니?"

"벌레라니요. Patagonian Toothfish 입니다."

"............ 아.. 그 그래요. 주말 잘 보내요. 그런데 낙하 속도가 지난주보다 빨라진 거 보니 메팀장 몸무게가 좀 늘었나봐?“

"지금 그 발언 직장내 성희롱이 될 수 있는 거 아시죠?"

"............ 아.. 죄소해요. 메팀장님."

"제 몸무게가 아무리 늘어도, 온 몸에 기름이 자글자글한 기름치(oilfish) 기부장님만 하겠습니까? 제 몸무게는 이제 그만 신경 끄시고 맡고계시는 용궁제과 공장장 업무나 잘 하시죠."


표정 없는 딱딱한 말투의 메팀장은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잽싸게 사라졌다. 온 몸에서 기름이 좔좔 흘러내리는 기름치로 변한 기부장은 멋적은 표정을 짓고는 메팀장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헤엄쳤다.



[참고] ‘남극이빨고기’ (파타고니아 이빨고기 (Patagonian Toothfish) 와 '기름치' (oilfish)     


'남극이빨고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메로’라고도 불리며, 고급 식재료로 분류된다. 완전히 성장했을 경우 1m가 넘는 대형어류이며 수명은 50년 이상이다. 느린 번식속도 탓에 긴 수명에도 불구하고 개체수가 많이 줄고 있다. 근본적으로 심해어라는 특성과 느린 번식 속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탓에 양식 역시 현재로서는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가 관리하는 남극 로스해 어업 관리감독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중이다.


먹을 수 없는 기름치를 고급어종인 메로로 속여서 판 식당이 적발된적이 있으며, 외견상으로도 비슷하기 때문에 월미철도 메팀장은 기름치인 용궁제과 공장장 기부장과 자신을 헷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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