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13
어느 덧 2개월간의 임상 로테이션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지은은 아침 미팅을 위해서 곰소장의 회의실로 향했다.
“네에? 문선생님이 오늘부터 1년 휴가를 가신다구요?”
지은은 곰소장의 방에서 계란 노른자가 띄어진 쌍화차를 마시면서 문 선생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옆에 나란히 앉은 문선생을 바라봤다. 평소와는 다르게 진한 화장을 하지 않고 쌩얼로 출근한 문선생 옆에는 귀여운 강아지 ‘자기’가 앉아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문선생은 방긋 웃으면서 지은을 보며 말했다.
“1년 동안 우리 월미수산 아쿠아리움 식구들의 건강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할 거 같은데, 어때?”
“네? 뭐가....요?”
“1년 동안 나 대신에 여기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의 수의사가 되어 줘.”
“네? 저는 이제 3학년 학생인데요? 아직 정식 수의사도 아니고.”
“알아, 괜찮아, 뭐든 다 부딪히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르지 않겠어? 딱 1년만 부탁할게. 곰소장님도 이미 OK를 하셨고“
“어... 저 학교도 마쳐야 하고...학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데...”
멍!
지은이 주저하자 자기가 멍! 하면서 크게 짖었다. 그러자 문선생이 쌍화차 속의 봉긋한 계란 노른자를 수저로 톡 터트린 후, 휘휘 저으면서 말했다.
“우리 자기가 지은샘 월급은 한 달에 천만 원이 적정할 것 같다고 하는데?”
“천만 원이요? 매달?”
멍!
“당연하지. 그리고 세후기준으로”
“세후요? 세금 십원도 안 내고?”
멍멍!
“당연하지 그리고 일시불로”
“일시불이요? 그러면 1억 2천을 저에게 한꺼번에 주신다고요?”
멍멍멍!
“응. 그러면 1년 뒤 복학하고 나서 우리 지은샘 남은 학년동안 학비는 충분할 것 같은데?”
“완젼 충분하죠, 그렇다면 오후에 휴학계 제출하고 오겠습니다.”
멍멍멍멍!
"계좌번호 보내봐. 자기가 바로 이체해준대."
"지금 당장요?"
"쇠뿔도 단칼에 빼야지. 지은샘 말 번복하기 전에 이체해놔야 자기가 맘이 편할 것 같다고 하는데?"
놀란 지은은 똥그래진 눈으로 문선생과 자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니 그 정도면 지은선생 월급이 소장인 내 월급보다 훨씬 더 많은 거 같은데? 에잉.”
지은과 문선생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곰소장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문선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소장님은 제가 올 때 좋은 선물 가지고 올게요.”
문선생이 곰소장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자 곰소장이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문선생 약속한 거다? 나 그거 꼭 갖다주기로."
"그럼요."
***
문선생은 웃으면서 지은샘을 바라봤다. 문선생은 열쇠 하나를 지은샘에게 주면서 말했다.
“지은샘, 대신 부탁이 있어.”
“네. 말씀하세요.”
“1년간 우리 집 좀 맡아줘. 밥을 해 먹을 수 있으니, 그동안 지낸 월미호텔보다는 지내기가 훨씬 나을 걸? 우리같은 샐러리맨들에게는 맛있는 집밥이 제일 중요하잖아?“
“앗, 감사합니다. 그럼 월세는 어떻게?”
멍!
“그런 거 신경 쓸 거 없어. 그리고 매달 관리비도 다 우리 자기가 내줄 거야.”
“진짜요? 지금 이 상황이 꿈만 같아서 저는 믿기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 더 있어.”
“네, 말씀하세요.”
“아마 처음에는 혼자서 일을 하기에 좀 힘들 텐데, 말 잘 듣는 월미수산 신입 한 명을 1년간 붙여줄게.”
“월미수산 신입사원이요?”
“아주 듬직하고 착한 놈이지.”
곰소장은 책상 위에 있던 이력서 하나를 지은에게 전달하면서 말했다. 지은은 곰소장이 전해준 이력서에 있는 이름을 보면서 말했다.
“이름이 범사원? 특이하네요? 우리나라에 범 씨도 있었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범사원이 다 도와줄 거야. 저기 콜센터에서 2개월 인턴기간 마쳤고, 이제 막 우리 월미수산의 정사원이 되었지.“
“엄청 착하게 생겼는데요?”
“생긴 거는 엄청 순진하고 착해 보여도, 월미수산에서 가장 똑똑하고 힘도 쎈 애야. 그리고 한번 화내면 장난 아냐. 심지어는 우리 범사원을 보면 수족관 안에 있는 모든 상어들이 움찔한다니까. 월미 철물점 백사장님도 우리 범사원 앞에서는 꼼짝도 못해.”
“에이...설마요. 그 덩치 좋은 철물점 백사장님이..“
“진짠데, 물론 우리 지은샘에게는 절대 화 안 낼 거야. 정어리에 약만 몰래 안 탄다면.”
“네? 정어리에 몰래 약을 탄다니요?”
“아니야. 나중에 다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어 저기 왔네. 여기야 들어와.”
문선생은 밖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문 밖에는 방금 이력서로 본 순딩한 얼굴의 범사원이 말끔한 검은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범사원은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문선생을 껴안으며 말했다.
“문선생님, 자주 연락 주세요.”
“그래. 알았어. 그나저나 너, 우리 지은샘 잘 보필해야 한다?”
“걱정 마세요. 제가 옆에 이렇게 든든하게 있는데 월미수산 그 누가 우리 지은샘을 괴롭히겠습니까?”
“그렇지? 나 우리 범사원만 믿고 간다.”
“네네, 걱정하지 마세요.”
문선생은 의자에서 일어나 지은을 보면서 말했다.
“나 지금 갈게.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전화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1년 동안 어디 가세요? 세계일주?”
멍!
문선생은 옆에 앉아있는 자기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응. 우리 자기랑 세계일주 하려고.”
“와, 대박, 좋겠다. 그러면 비행기로 어느 도시를 가장 처음으로 가세요? 파리? 영국?”
“비행기 안 타.”
“네? 그럼요?”
“이번에 요트 하나 장만했거든”
“요트요? 영화에서 부자들이 타는 그 요트?”
멍!
“중고로 장만했어. 여기 사진.”
문선생은 지은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월미도 앞바다에 있는 요트 사진이었는데, 문선생과 강아지 자기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대박, 그런데 연약하신 문선생님 혼자 이 커다란 요트를 잘 운전하실 수 있겠죠? 요트 운전이 힘이 많이 든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리고 잘 모르겠지만 바다의 상어나 고래들도 위험할 거 같은데 조심, 또 조심하세요.”
지은의 말을 들은 곰소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연약하다고? 문선생이? 힘으로는 우리 문선생을 당할 자가 없지. 그리고 조심은 우리 문선생이 아니라 바다놈들이 해야지.”
멍!!!
“바다놈....들이요? 요즘에도 해적이 있어요?”
“아니 그렇다 이거지. 자자, 문선생은 이제 바쁜 몸이니까 어서 나가서 세계일주인가 뭔가 출발하고, 남은 우리들은 월미 아쿠아리움에서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해야지?”
곰소장은 당황하면서 말을 돌렸다.
***
잠시 후, 우리는 월미도에 있는 요트 선착장을 떠나는 문선생과 자기를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문선생은 지은과 곰소장, 그리고 범사원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1년간 세상구경 잘하고 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선배님.”
"아 참, 중요한 거 잊을 뻔 했다."
문선생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잘 접은 종이 한장을 지은에게 전달해주면서 말했다.
"여기 적힌 대로만 만들면 내가 만든 거랑 100% 똑같은 쌍화차를 만들 수 있어. 그거 비법 중의 비법이니까 지은샘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해?"
"앗, 네.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연락할께."
지은이 종이를 받은 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자, 문선생과 자기가 탄 요트가 저 멀리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은이 뒤를 돌아보자 요트 위에 있던 강아지 자기는, 파란 선원복을 입은 멋진 남자 올피로 변신하더니 문선생을 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올피는 작은 담요를 손에 들고, 문선생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노르웨이해협으로 갈까?”
“좋아!”
"그곳은 여기보다 추우니 담요가 필요할 거야. 이 담요 기억나?"
"어머..이 담요는 그 때 세미나 때 자기가 나에게 덮어줬던?"
"맞아, 그 담요야. 사랑해"
"나도"
이 모든 사실을 모르는 지은은 월미 아쿠아리움으로 돌아왔다. 곰소장은 회의가 있다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지은의 옆에는 순딩 순딩한 범사원이 서 있었다.
범사원은 지은을 보면서 싱긋 웃더니 지은과 함께 거대한 파이프가 있는 월미수산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한 파이프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목에 월미수산 사원증을 건 인사팀의 갑부장이 나타났다. 밝은 색의 양복을 입은 갑부장을 보고 범사원이 깍듯하게 인사하면서 말했다.
“부장님, 여기 1년간 우리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의 수의사로 정식 임명이 된 지은샘입니다. 지은선생님, 여기는 저희 월미수산의 모든 인사를 총괄하시는 갑부장님입니다.”
“안녕하세요, 갑부장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비 수의사 김지은입니다."
지은은 갑부장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갑부장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문선생으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월미수산] 인사팀으로 가서 자세한 사항을 말씀 나누도록 하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갑부장은 지은과 범사원을 향해 자신이 서 있는 거대한 파이프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갑부장의 손은 파이프 안을 향하고 있었다. 긴장으로 침을 크게 삼킨 지은은 옆에 나란히 서있는 범사원을 바라봤다. 범사원은 믿음직한 얼굴로 지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은 고개를 끄덕인 후, 범사원과 함께 갑부장을 따라 거대한 파이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월미수산 아쿠아리움(시즌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