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역사 12] 사라예보 사건 전말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일정이 변경된 것을 알지 못했던 운전사는 국립박물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뒤늦게 길을 잘못 든 것을 확인한 보스니아 총독은 급히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차에는 후진 기어가 없었고 빠르게 차를 돌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거리의 폭이 좁았다. 이에 운전사는 매우 천천히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거의 서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하필, 암살자 프린치프가 그 주변 카페에 있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국가 간 전쟁이 자주 발발했다. 수많은 국가들이 밀집해 있고 저마다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보니 크고 작은 전쟁이 지속됐다. 다른 지역에서도 전쟁이 있었지만 유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유럽 자체가 이른바 '화약고'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에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 촉발된 전쟁의 결정판이었다. 그동안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에 대항해 새롭게 독일이 부상하면서 전운이 고조됐다. 열강들의 후원을 받는 발칸반도 국가들 간 대립도 심상치 않았다. 당시 각국에서 유행한 '민족주의'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전쟁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가운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전쟁의 불씨를 댕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사라예보 사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자국이 합병한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 적국인 세르비아 출신 청년에게 암살을 당했다. 이 사건은 정말 기묘했다. 충분히 암살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몇 가지 우연들이 완벽히 겹쳐져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페르디난트 부부는 마치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은 사라예보 사건을 씁쓸하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 사건 직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 세계는 전쟁의 참화에 빠졌다. 조기 종전될 것이란 전망과 달리 전쟁은 '소모전' 양상으로 가면서 장기화됐다. 뚜렷한 전황의 변화 없이 사상자 수만 걷잡을 수 없이 폭증했다. 그 당시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지옥도'가 펼쳐진 셈이었다. 전쟁과 이것의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어리석을 수 있는지를 새삼 느꼈다. 전쟁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것도 절감했다. 강렬한 '반면교사'인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기묘한 사건', 사라예보 사건과 전쟁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