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인생 최고의 사극
드라마를 자주 보진 않았지만 사극만큼은 지속적으로 챙겨봤다. 수많은 사극 가운데 지금껏 필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용의 눈물'이다. (현재 역사 저술가로 활동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여말선초 시기와 '태종 이방원'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큰 흐름은 정사를 따랐지만 야사인 '연려실기술'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장 최근에 나왔던 사극인 '태종 이방원'의 경우엔 정사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용의 눈물은 매력적인 측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이방원 역을 맡은 '유동근'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유동근이 곧 이방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방원의 모습을 훌륭히 구현했다. '왕자의 난'을 통한 권력 찬탈과 아버지 이성계와의 숨 막히는 갈등 및 화해, 외척 공신 숙청을 통한 왕권 강화 등이 대표적인 모습들이었다. 험난한 과정 속에서 이방원이 느꼈을 고뇌와 고독, 슬픔 등 내적인 면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유동근이 살려낸 이방원은 대표적인 '명군'이었다. 혹자는 여러 숙청으로 인해 '킬방원'이라고 비판하지만, 이방원은 그 시기에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과업을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었다. 조선 초기의 혼란을 잠재우고 민생을 안정시켰으며 외척과 공신 세력 숙청을 통해 '세종' 시대의 초석을 닦았다. 이방원이 없었다면 세종도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다른 군왕에 비해 이방원의 숙청 규모는 크지 않았으며 철저히 정치적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만을 골라 숙청했다. 그 대상의 자손들은 건드리지도 않았고 되레 출세길을 열어줬다. 결과적으로 이방원의 정책 및 숙청이 세종대에 선순환 효과를 불러온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용의 눈물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국가가 가뭄으로 힘들어할 때, 이방원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우제를 지낸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죄과를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서 제발 비를 내려달라고 절규한다. 연려실기술 기록을 반영한 것이다. "세종 4년에 상왕(이방원)이 승하함에 임하여 이르기를 '가뭄이 지금 극심하니 내가 죽은 뒤에 반드시 비가 오도록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왕의 말처럼 죽음에 이르러 비가 왔는데, 그 이후로도 매양 제삿날이면 반드시 비가 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비를 '태종의 비', 즉 '태종우'라고 하였다."
이방원은 세종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뒤 세상을 떠났다. "모든 악업은 이 아비가 지고 간다고 하였소. 주상, 부디 성군이 되시오." 고독한 인간상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군왕상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이는 개인적으로 사극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연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용의 눈물'을 진지하게 정주행 해보길 권한다. 이방원의 숙청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필자의 저서 '숙청의 역사-한국사편'도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https://youtu.be/c1O0H_49G2U?si=S9tBxZoOJbqJgWD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