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

[이야기] 법 위에 군림한 절대권력

by 최경식

"여기 중정이야. 죽었다 치고 다 말해봐. 뭐 재미있는 거 아는 것 같은데." -영화 <남산의 부장들> 中


박정희 정권 18년을 지탱해 온 두 개의 지주가 있었다. 하나는 경제 발전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정보정치'였다. 정보정치의 심장부에는 정치공작사령부로 불렸던 남산의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중앙정보부. 그 이름만 들어도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다는 공포의 권력기관. 수많은 정치공작과 폭력을 자행하며 엄혹한 밤의 역사를 창조해 낸 음지의 괴물. 남산 1호 터널을 통과해 중앙정보부 지하 고문실로 가게 되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거나 운 좋게 살더라도 병신이 됐다고 전해진다. 중앙정보부가 겨냥한 표적은 전방위적이고 무차별적이었다. 최고 권력자나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된 정치인, 일반시민, 언론인, 교수, 작가 등이 모조리 표적이 됐다. 한번 덫에 걸려들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었다.


중앙정보부를 지휘한 '부장'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제1대 김종필 부장, 남산돈가스라 불렸던 제4대 김형욱 부장, 정보정치의 귀재라 일컬어졌던 제6대 이후락 부장, 역적과 의사 사이를 오가는 제8대 김재규 부장, 중앙정보부의 간판을 내리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간판을 변경한 제10대 전두환 부장까지. 중앙정보부의 정점엔 이들 부장들이 있었고, 정보부장과 정보부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위치했다.


박정희 소장과 함께 5.16 쿠데타를 주도한 김종필은 정보, 첩보, 수사 업무를 전담하는 특별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1961년 6월에 '중앙정보부법'이 제정됐다. 법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국내외 정보사항 및 범죄수사와 군을 포함한 정부 각 부서의 정보, 수사활동을 감독한다. 그리고 국가의 타기관 소속 직원들을 지휘, 감독한다.' 사실상 중앙정보부의 필요에 따라 누구든지 수사하고 지휘할 수 있는 무소불위 기관의 탄생이었다.


중앙정보부는 김형욱 부장 시절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매우 과격했던 그는 수틀리면 야당 국회의원은 물론 여당 국회의원, 심지어 장관까지 지하 고문실로 잡아와 두들겨 팼다. 김형욱의 중앙정보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67년에는 조작으로 점철된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같은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과도하면 반드시 화를 입게 되는 법. 김형욱은 박정희 3선 개헌 공작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고 정보부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후에 그는 보복이 두려워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코리아게이트 청문회에 출석해 박정희의 사생활을 폭로했다가 석연치 않게 행방불명됐다.


김형욱 시절의 중앙정보부가 무지막지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조직이었다면, 이후락 시절의 중앙정보부는 영악하게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이후락은 막후에서 보안사령부, 검찰, 경찰, 지자체 등 관권 조직을 총동원해 공작 정치를 펼쳤다. 이를 통해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끌거나 10.2 항명 파동 등을 일으켰다. 1972년 '10월 유신'도 이후락의 작품이었다. 여담으로 유신의 밑작업은 '풍년 사업'이라는 암호명 하에 궁정동 안가에서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궁정동 안가는 나중에 박정희 시해 장소가 된다. 또한 이후락은 북한에 밀사로 파견돼 김일성과 비밀 회담을 갖고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재규 시절의 중앙정보부는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김재규 자체가 이전 부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이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굉장히 신사였으며, 민주화 인사들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서는 "의로운 일을 한 사람들이며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박정희에게 분개했다고 한다. 추후에 '부마항쟁'과 관련해서도 박정희의 실정을 지적하며 노선 전환을 해야 한다고 직언했다. 부장이 이렇다 보니, 이 시절의 중앙정보부는 과거에 비해 매우 온순했다.


중앙정보부의 역사는 김재규가 일으킨 '10.26' 사태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전두환 시절에 명칭이 바뀌면서 소멸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중정 직원들은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졸지에 보안사 고문실로 끌려가는 처지가 됐다. 자신들이 혹독하게 했던 짓(고문)을 그대로 되돌려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실상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셈이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이듬해인 1981년 4월에 안기부로 변경됐다.


자고로 명확하게 입증된 명제가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고 망한다는 것. 중앙정보부가 그랬다. 한 때는 법 위에 군림했다. 지금이야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이 대표적 권력기관이지만, 그 당시에는 중앙정보부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하위 파트너에 불과했다. 중앙정보부 말단 직원이 방문해도 부장 검사가 직접 마중 나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중앙정보부의 역사가 곧 독재정권의 역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파워가 워낙 막강하다 보니, 권력의 과잉 행사와 부패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사회 곳곳에서 저항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권력 내부의 분열까지 유발됐다. 그 결과 자신을 만든 정권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그 명맥은 안기부로 이어졌다.) 이제 중앙정보부의 역사는 과거 독재시대의 엄혹함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학습자료로 남았다. 어두운 역사는 회피하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밝은 역사를 만들어나갈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놓여있다.



https://youtu.be/bYKIAa6LT6E?si=dPCQElPTWFGsCZ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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