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장들] 블라디미르 레닌 5
■스탈린에 대한 투쟁과 죽음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레닌은 한동안 의욕적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한 불행이 발생했다. 1922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사실상 전면에서의 정치 활동은 어렵게 됐다. 레닌이 부재한 틈을 타서 스탈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 서기장이 된 그는 인사권을 장악했고, 자신의 세력을 빠르게 구축해 나갔다. 레닌은 병상에서 스탈린의 움직임을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경계하는 마음이 커졌다. 스탈린에게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과 거칠고 무례한 태도를 문제 삼았다. (레닌은 스탈린이 혁명 정신보다는 관료주의적 독재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했다.)
결국 레닌을 폭발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조지아 사건'이다. 스탈린과 그의 측근인 세르게이 오르조니키제는 조지아 공산당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 했다. 이에 레닌은 격하게 반발했다. 민족 자결 원칙을 훼손했으며, 러시아 중심주의(대러시아 쇼비니즘)라고 비판했다. 레닌은 이 문제를 공개 석상으로 갖고 와서 비판할 준비까지 했다. 더욱이 정치적 문제를 넘어 개인적 문제도 발생했다. 어느 날, 스탈린이 레닌의 아내인 나데즈다 크룹스카야에게 전화를 걸어 거칠게 위협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레닌은 격노했다. 즉각 스탈린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고, 공개적인 사과까지 요구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상 파탄이 났다.
이런 가운데 레닌의 병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악화 일로를 걸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레닌은 1923년에 유명한 문서인 '레닌의 유언'을 작성했다. 거기에는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담겨있었다. 눈에 띄는 점은 레닌이 유독 스탈린을 과하게 비난했다는 것이다. 그는 스탈린의 폭력성과 권력을 향한 동물적인 야심을 좌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유언장에 "스탈린 동지는 너무 성격이 급하고 잔인하다"라고 썼다. 나아가 "스탈린을 서기장직에서 해임하라"라고 요구했다. 스탈린에겐 너무 불리한 내용이었다. 트로츠키에 대해선 "그의 능력은 당 내에서 최고다. 다만 교만하고 독단적인 측면이 강하므로 주변에서 이를 바로잡아줘야 한다"라고 썼다. (이 밖에 부하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사실상 레닌은 후계자로서 트로츠키의 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스탈린에게는 시종일관 비난만을 하며 쫓아낼 대상으로 규정했지만, 트로츠키는 일부 모난 성품이 있어도 당 내에서 가장 훌륭하며 주변에서 적절히 조력해 주면 괜찮다고 본 것이다. 궁극적으로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철저히 레닌의 유언장만을 놓고 본다면, 스탈린은 위태로움을 넘어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천운들이 그를 따라줬다. 우선 레닌의 유언장이 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널리 공개되지 않았다. 단지 제한적으로만 공유됐다. 이미 스탈린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던 탓도 있었다. 서기장으로서 인사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당 간부 대부분이 그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또한 트로츠키를 비롯한 다른 경쟁자들이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분열한 것도 큰 원인이었다. 스탈린은 레닌에게 버림받았지만, 유리한 권력 구조와 정치 현실에 힘입어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이후 스탈린은 트로츠키 등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다.
한편, 위중한 상태에 빠진 레닌은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였다. 1923년에 세 번째 뇌졸중이 발생하면서 레닌은 말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됐다.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 그를 40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집중적으로 돌봤다. 그럼에도 몸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1924년 1월 21일, 결국 레닌은 모스크바 근교 고르키에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뇌혈관 질환(연속된 뇌졸중)이었다. 향년 53세였다. 레닌은 사망 이후에 신격화됐다. 그의 시신은 일반적인 매장이 아닌, 방부 처리된 후 영구 보존이라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으로 다뤄졌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레닌 영묘가 건설됐고, 시신은 대중에게 공개 전시됐다. 이러한 장례 방식은 향후 공산권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전통이 됐다.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 베트남의 호치민 등이 해당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기실 레닌은 자신을 어머니의 무덤 옆에 묻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스탈린이 이를 무시하고 레닌 신격화를 밀어붙였다. 혁명과 국가의 정통성을 보존하고,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였다.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거대한 혁명가, 레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평온을 누리지 못했다. 이제 소련은 레닌의 시대를 지나 스탈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