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정책(NEP)

[서기장들] 블라디미르 레닌 4

by 최경식
KakaoTalk_20260403_162547475.jpg 레닌의 '신경제정책' 포스터. 이는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었다. 국가는 큰 것만 쥐고 있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긴다는 게 핵심이다.

■신경제정책(NEP)

레닌과 볼셰비키는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목적을 달성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산업이 붕괴했고, 농업 생산도 급감했다. 이는 러시아 내전의 영향 탓도 있었으나, 레닌이 추진했던 전시 공산주의 정책 탓도 있었다. 상술했듯 국가가 농민의 곡물을 강제로 징발하고 모든 산업을 국유화함에 따라, 농민들이 생산을 거부하고 도시 노동자들은 농촌으로 탈출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소련의 시장과 화폐 기능은 사실상 붕괴됐으며, 전국적으로 기근까지 초래됐다. 이대로 가다가는 신생국가의 앞날이 위태로워 보였다.


레닌은 다시 한번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출된 결과물이 바로 '신경제정책'(NEP)이다. 이는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었다. 국가는 큰 것만 쥐고 있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긴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레닌은 곡물의 강제 징발을 폐지했으며, 현물세만 내면 시장에서의 자유 판매를 가능하게 했다. 이에 힘입어 농민들은 다시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또한 소규모 상업 활동을 허용했다. '네프맨'이라는 신규 상인 계층이 등장해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치면서 시장경제가 부분적으로 부활했다. 중소기업을 사유화하기도 했다. 작은 공장이나 상점은 개인이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부담을 감소시켰다.


다만 대규모 산업은 여전히 국유화를 유지했다. 대기업, 은행, 철도 등은 국가의 소유였다. 즉 '신경제정책'은 완전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국가의 강한 통제 아래에서 운영된 혼합 성격의 정책이었다. 이의 성과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농업 생산이 회복됐고, 시장이 활성화됐다. 도시 경제도 부활했으며, 생활 수준의 개선이 이뤄졌다. 어려운 상황에서 레닌이 긴급하게 내린 '경제 응급처치'가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농과 빈농, 부유한 상인과 노동자 간의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 사회주의 노선에 대한 논쟁도 빚어졌다. 당 내부에서 급진파는 혁명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한 반면 온건파는 경제가 살아야 혁명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닌의 뜻은 명확했다. '신경제정책'을 두 걸음 전진을 위한 한 걸음 후퇴로 규정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경제 문제를 해결한 뒤, 다시 사회주의로 나아갈 계획이었다. 해당 정책은 레닌 사후인 1928년까지 지속되다가 스탈린에 의해 폐기됐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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