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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도 Oct 20. 2022

사서와 함께 떠나는 책 여행, 그 시작의 의미

우리 동네에는 음식점이 많았다. 서점이 한 곳, 도서관이 두 곳 딱히 문화라는 공간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가로수가 늘린 도로 옆 한 카페가 폐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삭막한 이곳에 책방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들어진 카페보다는 은은한 불빛에 스며든 책방의 풍경이 더 감칠맛 날 것 같았다. 풍경이라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책방 안에 각기 다른 이야기의 책들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거나 각기 다른 풍경으로 담겼다.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생각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깨우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동네 불빛에 비친 책방의 역할은 아이슬란드의 오로라가 열린 오묘함의 신세계처럼 달콤함이다. 요즘 찾지 않는 책방이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동네마다 활력을 불러 넣고 있었다. 작은 골목을 지나 찾아 나선 책방은 문화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는 위안의 공간이 되기도 하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마주하며 기댄 그 미소가 때로 단골손님이 되지만 큰 물줄기를 만나는 기분이 되니까.    

 

나는 지금 그 길에 마주하고 있었다. 끌리는 책방보다는 가슴이 아리고 깊은 사연으로 인연이 쌓여가는 그런 공간으로 떠나고 싶었다. 꼭 책방만 아니라 작은 도서관도 좋고, 동네에 허름한 북카페도 좋고 무인으로 운영하는 공간도 책만 있으면 된다.    

사람이란 결국 소리 소문 없이는 글을 쓸 수 없고 전달하는 마음의 아연함으로 채울 수 없다. 이제 그런 공간으로 들러 소박한 삶의 이야기가 멋진 길이 되고 아직도 살만하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무작정 떠나는 사서의 책 여행은 그렇게 시작하면 좋겠다. 도서관이 무엇이며 책방은 또 무엇일까? 책이란 아이들에게 삶과 대단하게 연결되는 일인가? 그 물음을 떠나기도 했고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생각의 잣대를 비추어봤다.     

내가 느낀 것들을 글로 써 내려갔고 그 길을 함께 걷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결국 나의 목소리보다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담아야 했다. 흘린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그들의 책방은 많이 닮아있는 듯 공간마다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많은 책들 사이에 책방지기만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펼쳐진 인생사를 다 담을 수 없지만 우리는 결국 그 공간의 시간을 누렸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사회 경제적으로 접근할 것인지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요즘 젊은이는 책방을 좋아한다. 책방이라는 공간이 트렌드를 선호하고 젊은 세대의 감각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책방의 ‘화두’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이다. 경제적으로 한계로 도달할 것이고 사회적으로 무모화될 가능성이 크다. 시사기획 창 ‘책방은 살아있다’에서도 책방의 정책적 배려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책방은 문화공간일까?, 자영업일까? 아직은 자영업이 더 크게 와닿을 것이다. 

문화공간으로서의 배려가 미약한 수준이다. 국가적으로 책방의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할 시점이다. 경제적 이익보다는 문화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그 자체만이라도 우리의 문화는 힘이 세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가 있듯이 책방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다. 유럽여행에서 책방은 그야말로 문화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듯이 우리도 그런 문화적인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책을 파는 곳이라 아니라 문화가 흐르는 하나의 공간이라는 삶의 공존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허접한 문화는 이제 버려야 한다. 다소 볼품이 없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간다움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곳이라면 나는 환영하겠다. 그래서 문화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책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매개체로서의 연결 곡선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함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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