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몽도가 어디에서 왔는지 말할 수 없으리라. 그 아이는 어느 날 우연히 아무도 모르게 이곳 우리 도시로 왔고, 사람들은 곧 그 아이와 친숙해졌다.” - 르 클레지오, ‘어린 여행자 몽도’
책을 읽으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어떤 특별한 날에 하루를 보낸다면 또 얼마나 책 여행자로 살아가야 하는지 나를 찾는 기회, 영감의 시간으로서의 공간이면 얼마나 족할까.
남해 도림마을 ‘몽도 북스테이’를 찾았다. 남해바다처럼 잔잔한 바람과 자잘한 파도소리가 그저 방해되지 않는 별채의 책방 공간에 책 한 권 위로를 담아낼 수 있었다. 에디터와 사진작가였던 고우정, 현일수 부부가 낯선 이방인을 위한 침대 위 놓여있는 물 한잔, 로즈메리 향기, 시 한 구절, 음악과 문장들, 구석구석 따뜻한 감성을 가득 채웠다. 현관 입구 웰컴 보드에는 환영의 마음을 담아 ‘오늘의 몽도는 한 지붕 다섯 식구 : 3인의 길손과 주인장 부부’ 쓴 멘트가 친근하다. 눈길마다 섬세한 손길이 뻗어있는 흔적들은 낯선 길손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의 감각을 깨우게 위한 배려였다.
2018년 7월, 여름에 문을 연 북스테이는 “몽도가 사람들에게 한 권의 책 같은 집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몽도’라는 이름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어린 여행자 몽도’라는 책에서 발견했다고. 이 도림마을 뜻이 ‘복숭아 도 수풀 림’ 즉 복숭아 숲이다. 마을 이름이 복숭아 숲인 게 너무 좋아 도림에서 복숭아 도를 따와 꿈 몽(夢), 복숭아 도(桃)를 합쳐 ‘몽도’가 되었다고 한다.
“책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이기에 오시는 분들이 몽유도원 같은 공간으로 느껴졌으면 했어요.”
몽도는 숙박채와 별채의 두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숙박채엔 주인 방이 한 칸, 손님방이 세 칸, 주인 방과 손님방 사이엔 책장으로 담을 쌓고 얇은 가림천으로 경계선을 그었을 뿐, 한 지붕 함께 하는 공유의 공간이다. 마당에는 사진작가인 남편의 오픈 스튜디오, 옥상에는 대숲과 달을 바라볼 수 있는 망명월의 쉼터가 있어 잠시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가지런히 꽂아 놓은 별채의 책방 ‘방란장’은 또 얼마나 책 여행자를 위한 배려의 솜씨가 대단한가. 문학, 소설, 시, 페미니즘, 최근에 재미있게 읽는 책, 주제별 관련 책, 그림책 등의 주인장 취향에 따른 북큐레이션이 누군가를 운명처럼 기다린다. 묵언수행 목걸이, 필사, 방명록 등 작은 배려의 공간은 주인장의 삶을 엿보게 한다.
망명록에는 각각의 사연들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았다. 번아웃으로 왔다가 책에 오롯이 기댈 수 있었다는 손님, 리틀 포레스트처럼 즐기고 갔다는 손님, 시간을 느긋하게 한가롭게 보냈다는 손님. 이곳에 온 여행자들의 고향집처럼 또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이 글귀에 담겼다.
몽도의 긴 겨울밤은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에 책 읽는 시간이 길어지고 인기척 없는 시골마을은 작은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새벽닭의 울음에 잠이 깨었다. 점점 밝아오는 몽도의 아침에 마을을 둘러보았다. 남파랑길로 통하는 마을의 작은 길은 마을 어르신의 삶의 결들이 묻어난다.
아침밥상의 따뜻한 한 끼와 직접 내려준 커피 한잔, 함께 나눈 이야기가 그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듯한 삶을 기억하는 순간일까. 책 여행의 오랜 기억들이 감각되고 충전된 시간이다. ‘몽도’의 공간에서 어떤 보통날 책 한 구절처럼 달콤한 마음의 위로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