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읽고
책이 도착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읽었다. 감동도, 서사도, 극적 긴장감도, 반전이 없는 간결한 풍의 소리 없이 잔잔한 98쪽의 단편소설이었다.
<맡겨진 소녀>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1981년 아일랜드 시골 마을이다. 목가적으로 묘사된 풍경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마을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짧은 소설이지만, 누구라도 한 번만 읽고 기억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것.
우물 주변의 고요한 공기, 옷을 사고 나오는 길에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 간식을 실컷 사고도 남은 잔돈이 짤랑거리는 소리. 그렇지만 풍요로운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에도 죽음이 슬그머니 끼어드는데 그 여백의 이야기가 독자가 채워할 몫으로 남겨둔다. 기교가 없는 섬세한 감성과 절제된 표현이 그녀의 문장으로, 소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자체 이 한 문장을 보아도 이 소설책이 가진 잊을 수 없는 문장이다.
그리고 여기 마지막 문장,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이 책을 가장 함축적으로 불분명한 경계에서 오는 색채를 선명하게 그려냈다. 밑줄을 긋는다. 이 짧고도 찬란한 여름을 보낸 소녀의 마음이 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