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능동적 독서, 대체 불가능한 보물

by 강상도

학교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책을 고르지 못한 채 서성이는 학생을 자주 만난다. 책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자는 “이 책 어때?”라고 묻기보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떤지, 무엇이 가장 신경 쓰이는지부터 묻는다. 책은 늘 그 다음이다. 아이들의 삶과 닿지 않는 책은 오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현장에서 여러 번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을 고르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한 독서 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진로에 대한 불안, 친구 관계의 흔들림, 반복되는 실패 경험, 성적 불안 등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마음에서 출발한 독서는 조금 느리지만, 그만큼 오래 남는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어낸 경험은, 다음 선택을 훨씬 수월하게 도와준다.



학교와 사회의 경계에 서 있는 청소년들에게 책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선택지는 넘쳐나지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삶의 방향을 정하는 문제 앞에서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때 책은 정답을 주기보다, 생각의 방향을 잡아 준다. 교실과 도서관에서 필자가 만난 학생들 역시 책을 통해 자신의 질문을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읽기는 수동적인 활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능동적인 과정이다. 생화학자 제임스 보너가 말한 것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은 노력의 가치를 드러낸다. 학생들이 책을 읽으며 “이 부분이 내 이야기 같아요”라고 말할 때, 필자는 그 말이 바로 ‘읽는 힘’이 작동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글자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값진 보물이 된다.



독서는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연습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책 속 인물의 선택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어떤 가능성을 떠올린다. 예를 들면 고전 속 주인공들은 늘 선택의 순간에 서 있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생각을 믿은 선택이 얼마나 큰 책임을 남기는지 깨닫게 되었고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안전한 길보다 불안하지만 진짜 자기 자신을 향한 길을 선택한다. 이런 책 속의 물음이 ‘저 상황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달랐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사고는 한 단계 깊어진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한 학생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개인의 선택이 사회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학생에게 책은 지식을 쌓는 자료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준 계기였다.



독서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읽었니’가 아니라 ‘어떻게 읽었니’이다. 줄거리를 잘 기억하는 것보다, 어떤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한 문장을 오래 붙잡고 생각해 본 경험은, 언젠가 삶의 선택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읽기는 즉각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오늘 읽은 한 페이지는 당장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문장은 시간이 지나 판단의 순간에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작은 판단들이 모여 삶의 방향을 만든다.



청소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는 힘이다. 사서인 필자는 그 힘의 출발선에 여전히 책이 놓여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책을 만나는 자리에서, 오늘도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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