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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도 Aug 17. 2020

한 사내의 소심한 저항, 필경사 바틀비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책톡 900 담당교사 모임에서 <필경사 바틀비>의 책을 받았다. 예술책인 줄 알았는데 문학책이다. 표지에는 한 사내의 얼굴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감각한 표정, 창백한 눈, 오직 필사에 집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사내의 이름은 필경사 바틀비!!


알 수 없는 그의 기묘한 행동과 말투가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의문의 말은 또 다른 소극적 저항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틀비에 대한 생각들이 오랫동안 머물렸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바틀비는 필사하는 일도, 공동으로 서류 검토하는 일도, 우체국에 다녀오는 일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라는 권유도 모두 거부하기에 이른다. 사무실을 떠나라는 것도 거부한다. 끝내 부랑자 구치소에 갇히게 된 그는 식사를 거부하여 아사되어 생을 마감한다.     


그의 이상하고 야릇한 화법과 행위는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걸까? 인간 내면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었을까? 처음에는 이해가 되었지만 갈수록 그의 말과 행동들이 비상식적으로 다가왔었다.    

처음 그의 말투에 짜증이 났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변호사의 배려심에 더 놀라웠다. 하지만, 그는 갑이고 바틀비는 을의 관계다.    


독립적이고 자기 합리화에 감춰져 있는 사람이 바틀비이다. 한 번쯤은 변호사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소심한 저항이 이해할 수 없을 때 이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의 편을 들고 끝까지 믿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고 말 못 할 사정이 있다. 바틀비에게도 그런 동정이 남아 있기에 그의 삶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반 미국 뉴욕의 월가를 중심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상업과 부동산, 금융업이 성행했던 시기다. 자본주의라는 틀 아래에서 소극적이고 소심한 저항이 가진 작은 힘들이 모여 우리의 사회를 변화시키고 그 안의 새로운 것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변호사가 이기적인 자본주의, 억압적인 법률과 질서, 합리주의 등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징한다면 바틀비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사람으로 인식되지만 늘 양면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행동과 말투가 정중하면서도 부정의 어투가 담겨있기에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또 하나, 바틀비는 필경사 이전에 배달 불능 우편물을 취급하는 사서(死書)였다. 


“사서라! 사자(死者)처럼 들리지 않는가! 날 때부터 그리고 운이 나빠서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상상해보면, 끊임없이 사서를 취급하고 분류해 불태우는 것보다 더 절망을 키우는 데 적합해 보이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다는 표현에서 하루하루 그런 편지를 다루었던 바틀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의 행동과 말투가 가진 것들이 여기서의 문장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짧게는 개인적 저항이지만 넓게는 모두에게 구원의 길을 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글을 번역한 공진호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립과 소외, 산업화된 일터의 본질과 계급투쟁, 노동운동, 형제애, 정신질환, 허무주의, 메시아론 등 다양한 논의에 사용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선, 낯설지만 강렬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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