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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도 Feb 13. 2021

사서의 일은, 가슴 벅찬 일

<사서의 일>을 읽고

아침 출근길에 만난 과일장수의, 떡집 사장님의, 꽃가게 플로리스트의 일상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과일 하나, 떡 하나, 꽃 하나에도 의미와 빛이 존재했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고 있지만 누군가에 다가가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또는 연금술사에 나오는 산티아고처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진정한 순례자로서의 삶은 나를 오롯이 성장해 가기도 한다.

사서를 하고 있는 나는 책 한 권에 다시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양지윤 사서가 쓴 <사서의 일>은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때론 혼자만의 비밀공간이 되고 때론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도서관의 시간은 늘 비슷비슷 흘러가지만 도서관이 마치 광활한 우주 같다고 말한 저자는 항해사가 되어 그 안을 별 하나에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경험하는 일상이지만 세심한 배려가 없다면 작은 것들이 아무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작은도서관 지혜의 집은 외딴섬에 있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 이 작은 외딴섬에도 봄은 오고 있다는 것, 문화강좌가 열리고 작은 고민거리가 때론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재능기부로 만들어가는 이 공간은 또 다른 삶을 가슴 뛰게 하는 신비한 것들로 채워졌다.


지혜의 집은 분명 작은 도서관이다. 대형 도서관의 규모나 서비스에 비하지 못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고 문화가 흐르고 있다는 것,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다.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일 뿐,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이 작은 도서관에 눈이 가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안의 우주는 색다른 묘미를 풍겼다.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때의 책과 접한 순간들이 도서관 사서를 하면서 빛을 발하고 새 생명을 잉태하는 도서관에서 그런 경험들이 고스란히 우리의 삶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이곳을 찾아와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주는 것. 그들이 도서관을 나설 때 마음속에 조금의 온기라도 채워 돌아갈 수 있도록”    


사서란 본래 인류문명의 축적된 지적 산물을 사회와 연결해 주는 일이라는 거대한 거시적 안목을 지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온기가 잠시 그 작은 도서관에서 퍼지는 것은 세상 모든 것들이 느리게 흐르고 있음을, 가끔 그곳에는 또 다른 새로운 공기들이 모여 가슴 벅찬 일상을 마주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오는 이용자가 잠시 마주하는 미묘한 점들이 모여 책이란 큰 물성과 마주하는 힘을 지녔다. 작은 도서관이 놓인 작은 것마저도 그저 소중하게 다가오는 글이었고 책이었다.

당신이 몰랐던 작은 도서관일지도 모른다. 가지 않고 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작은 도서관의 책, 공간, 사서에 대해 알지 못한다. 도서관은 열려있다. 누구에게나,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분명 특별하다.

텃밭이 자라고 어느 때는 고양이가 수시로 들락거린다. 정적을 깨우는 이용자가 넌저시 건네는 간식거리는 어쩌면 이런 평범한 일상이 책과 연결된 튼튼한 매개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지도에 둘러싸인 채 일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은 한 사서의 개인적인 기록이자 성장기이다. 그의 선한 영향력은 아주 작은 배려에서도 보였고 나름 소심하지만 늘 친근함이 무기이기도 하고, 끌어들이는 그녀만의 빈 곳을 채워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장점이 있었다.

이용자와의 거리는 늘 가깝다. 그 환대의 공간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했었다. 우연히 운명을 바꿀 책을 찾거나, 알려주는 행위는 부드러운 바닐라라떼처럼 달콤하다.

사서란 환대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 아닌 너와 함께 눈을 마주치는 일들이다. 이 책이 준 것들이 단순히 사서의 일상이지만 다분히 소소한 것들이 끌림이 강하다.


책을 찾을 때의 묘한 짜릿함, 최초의 기억이 도서관이라는 말들은 서로의 세계를 씨줄과 날줄을 삼아 엮어 연결하는 곳이 작은 도서관 지혜의 집이다. 그곳에는 책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상이 자연스럽다.

운명을 만나고 나의 꿈을 만나는 것이 값지지만 사유하는 자체만이라도 그 영향은 무수한 가능성의 열쇠다.

사서라는 일들이 책을 다뤄고 책 속의 무수한 문장들을 누군가에게 가슴 벅찬 일로 채워주는 것이기에 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멋진 일이다. 알아주지 않는 알찬 일이기에 그들의 눈빛을 기억하고 또 보듬어주고자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늘 똑같은 풍경과 익숙한 시간 속에서 무기력해질 때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은 이 작은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기록하여 보이지 않는 위안과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넣었다. 나는 알고 있다. 사서란 늘 고민하고 고민하는 삶을 통해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사람 냄새나는 곳으로 북적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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