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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2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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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Nov 09. 2022

건축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실패증후군 통과하기

소개받은 세 분의 건축가와 상담을 한 후 이제는 내 힘으로 내게 맞는 건축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저 예산으로 대가족이 살 집을 깔끔하고 세련되게 지어 눈여겨본 젊은 건축가 분이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그분은 열정도 있고 재능이 많아 보였다. 일단 설계사무소로 전화 연락을 해보았다.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분이기에 유명인을 대하는 것 같아 그랬는지 전화 연결을 기다리는 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유명인 건축가분은 외근 중이셨고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건축가에게 전달해 주겠다며 간단한 정보를 물어보았다. 땅 위치와 가족 구성원, 원하는 평수와 층수와 예산 등을 말해주었다. 전화를 끊고서도 한동안 심장의 요동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매번 이렇게 떨리는 마음이라니 언제쯤 익숙해질까.


건축가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서야 건축가분에게서 연락이 왔고 상담 약속을 잡았는데, 어떤 이유인지 상담 약속을 또 미루었다. 건축가 분의 답이 늦어지고 약속이 미뤄질 때 건축가에게 화가 나기보다 차라리 연락이 안 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건축가라면 만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진짜로 설계에 돌입할 것을 생각하니 '아직 집 지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라며 뒷걸음질 치던 내 마음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땅을 한 번 보고 척척 사고, 건축가도 척척 결정하고 후루룩 집을 잘도 짓는 것 같던데, 나는 매 단계마다 주저했다. 심사숙고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과거에 반복했던 실패의 경험이 나를 그렇게 주저하게 했던 것 같다. 쓰디쓴 실패의 상처가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있어, 조금씩 나아가다가도 두려움 때문에 자꾸만 멈추었다. 땅을 사고도 바로 건축가를 찾은 게 아니라 몇 달간 집 짓기는 휴업 상태로 있었다. 의욕적으로 건축가를 찾아 설계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건축가 찾기를 두려워하고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즈음 친정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서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는데 친정 아빠는 내가 집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빠 친구를 보니 집을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나는 '얼마든지 관리하기 쉬운 집을 만들 수 있는데 아빠는 잘 알지도 못한다'라고 대답하면서 나를 지지해주지 않는 아빠에게 서운해했다. 그리고는 ‘이제까지 실패한 인생이었는데 집 짓기는 꼭 성공시킬 거’라고 말했다. 아빠는 ‘네 인생을 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냐’며 속상해했다.


나는 한 가지 과업에 대한 실패를 내 전 존재의 실패로 받아들였다.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 그러니 뭘 해도 실패할 것이다'라는 패배의식이 내 안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는 어김없이 드러나는 깊은 패배의식. 집 짓기를 하며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때마다 실패할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멈춰있었다. 그럼에도 끝내는 겨우겨우 일지라도 한 걸음씩 떼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 원동력은 우리 가족을 위한 아늑한 거처가 허락될 것이라는 소망 하나를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그 힘든 작은 걸음 하나하나가 패배의식을 점점 옅어지게 하고 있었다는 거다.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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