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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2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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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Feb 24. 2023

우리가 원하는 집

따뜻한 마당에서 햇볕을 맞으며 책을 읽는 것

집을 짓기로 결심한 이후, 머릿속으로 집의 모양을 그려보는 일에 푹 빠져있었다. 살고 싶은 집의 모양을 그리다 보니 지금까지 살았던 집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이사를 많이 다녔기 때문에 거쳐간 공간이 많고 다양했는데, 성장기의 중요한 때,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10년 정도 살았던 집은 꿈에도 가끔 나올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이 내게 주던 따뜻한 위로와 편안한 느낌은 내 안에 고향처럼 자리하고 있다. 13층 꼭대기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네 자매 여섯 식구가 살면서 불편함도 많았고, 다른 친구들 집에 비해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아 부끄러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 집을 떠올릴 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건 지금은 돌아가셔서 볼 수 없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 있던 엄마라는 안전한 도피처와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던 거실의 기억이 내 감각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좁은 집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생활해 보고자 이렇게 저렇게 공간 배치를 새로 하곤 했다. 안방을 나와 동생들에게 내어주고 현관 옆 작은방에는 언니가, 부엌 옆 작은 방에서 부모님이 지내던 때도 있었고, 거실을 언니 방으로 쓰고 나머지 방을 식구들이 나누어 쓰며 거실 없이 지내던 때도 있었다. 나는 거실이 거실일 때, 안방이 안방일 때가 가장 안정감이 들고 좋았다. 거실이 거실의 기능을 할 때, 즉 가족이 모두 모이고, 소파와 테이블이 있어 편하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쉴 수 있고, 언제든 손님에게 열려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안방이 나와 동생들이 같이 쓰는 방이 아닌, 부모님의 자리일 때가 가장 안정감이 있었다. 부모님이 가장 크고 중요한 안방을 차지했을 때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식탁을 없앴을 때도 있었는데, 임시로 상을 폈다 접었다 하며 이리저리 옮겨가며 먹는 식사는 어쩐지 불안했다. 늘 식사가 준비될 수 있는 식탁이 그 자리에 있을 때 편안했다.


이렇게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새 집에서도 식탁은 항상 비워두고 언제든 식사가 가능하도록, 부모인 우리 부부의 잠자리도 언제나 안방에, 거실은 언제든 손님이 와도 괜찮도록 깨끗하고 열려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히 숨어 지친 몸을 쉴 수 있고,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언제나 나의 자리에 있어 식구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때 우리 집이 평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추억과 원하는 집의 모양에 대해 이야기를 끌어내는 건 무척 힘든 과정이었다. 그는 성장한 집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고, 앞으로 살 집에 대한 소망도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좁고 낡은 저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부모님과 삼 남매 다섯 식구가 살았는데, 밥상에서 아버지가 잔소리하던 것을 집에 대한 기억으로 제일 먼저 말할 정도로 집에 대해서 좋은 추억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자란 집이 좁고 답답했기 때문에 그저 널찍한 집이면 좋겠다는 바람정도가 전부였다. 좋았던 기억을 캐물으니 어머님이 해주신 꽃게탕이 맛있었다고 해서 빵 터졌다.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버님 잔소리에 이어 꽃게탕은 뭔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공간에 대한 기억은 당연하게도 그 안에서 느꼈던 어떤 감각으로 기억된다는 걸 깨달았다. 남편은 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에서 따뜻함과 안정감을 느꼈고 그것은 미각이라는 감각으로 기억되었다. 나의 경우 집짓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린 로망이 따뜻한 마당에 앉아 밝은 햇살아래 책을 읽고 싶다는 거였는데 그건 어렸을 적 따뜻한 거실에 앉아 은은하게 비추는 햇살을 맞으며 소파에 푹 파묻혀 책을 읽었던 평화로운 기억 때문이다. 밝다는 시각적인 느낌과 따뜻하다는 촉각의 느낌으로 기억된 것이다. 이 모든 안정과 평안과 위로는 공간 속에 흐르던 사랑에서 오고 사랑은 각자에게 특정한 감각으로 기억이 된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핵심을 뺀 채로 오직 이 감각만을 쫒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쫒고, 미각의 만족을 좇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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