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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2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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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Nov 10. 2022

예산 정하기

네 번째 건축가와 드디어 만났다. 그는 저 예산으로 멋진 집을 지어 나에게 희망을 주었던 건축가이다. 직접 만나보니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스타일의 건축가였다. 건축가를 만나다 보니 대부분이 여성스럽다고 해야 할까? 공대생 이미지보다는 미대생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아무튼, 예산 이야기를 꺼내니 그는 저예산의 집을 더 이상 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리얼리, 진짜요?! 초기 작업으로서는 건축주의 적은 예산 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좋은 결과물을 내었지만 그런 작업이 반복될 경우 저예산 집을 짓는 건축가로 정해져 버리기 때문에 꺼려한 것이다. 네 명의 건축가를 만나면서 깨달았다. 책에서 읽은 내용은 이상이었다는 것을. 건축가를 만나면 적은 예산으로 기능과 미를 두루 갖춘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건 현실성이 아주 적은 일이라는 것을.


주택 건축 경험이 거의 없는 젊은 건축가에게 의뢰한다면, 편견을 깨는 새로운 건축에 도전해 본다면, 적은 예산으로 특색 있는 집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고, 집이란 무난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새로운 시도를 한 멋진 집들은 눈요기거리로만 생각했지 감히 도전해 볼 용기는 없었다.


건축가를 만나러 다니기 전, 집짓기 예산을 구체적으로 정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큰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한다는 게 처음이라서 무서웠다. 전 재산을 들여 집을 짓는데 손해 보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들었다. 단독주택은 크게 오를 일도 없고 결국 토지 값이라던데 이렇게 큰돈을 낭비(?) 해도 되는 건가? 가치가 떨어질 일에 덮어놓고 플렉스 하는 거 아닌가? 집 지어서 손해 날까 셈에 집중하다 보니 뼈가 말랐다. 우리 가족에게 잘 맞는 안정된 보금자리에 대한 소망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이익과 손실에 초점을 두니 저절로 생기가 빠져나가는 기분. 그래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산은 무조건 최소한이다!' 이렇게 정했다. 자금 동원 여력이 있다 해도 무조건 최소한으로 하자 결심했다. 예산을 건축가에게 알려주려니 좀 초라한 생각이 들 정도로 작게 정했다. 예산이 작고 보잘것없어 건축가가 무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들은 작은 예산으로도 기똥찬 아이디어를 내서 멋진 집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건축가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예산이 초라해서 무시당할까 하는 걱정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정한 예산이 현실성이 없으며, 건축가는 기똥찬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는 것을.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책으로만 건축을 준비하다 보니 이상 속에서 헤매며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나였다는 것을.


알고 보니 건축가가 짓는 집들 대부분이 평당 600~700만 원대로 지어지며, 목조주택은 평당 500~600만 원 선에서 시공비가 책정된다고 했다(2016년 당시 기준. 지금은 50% 이상 오른 것 같다). 각종 부대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40평 목조주택을 짓는다고 했을 때 시공비 2억~2억 4천에 부대비용까지 하면 최소한 2억 5천~3억은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부대비용까지 합쳐 2억 내에서 짓겠다고 계획했으니, 나의 생각은 참으로 비현실적이었다. 관행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도전을 한다면 모를까, 웬만큼 수준이 되는 집을 짓고 싶어 하면서 예산은 빠듯하게 정해놓았으니 처음부터 헛된 희망일 뿐이었다.


예산의 비현실성을 자각하고 현실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적은 돈으로 고품질의 집을 지어줄 능력자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숨어 있었다. 내가 끈질기게 이렇게 믿은 까닭을 들여다보니 바로 착취적인 사고와 미디어를 통해 접한 왜곡된 정보에 그 원인이 있었다.  


누구나 싸고 좋은걸 원한다. 그러나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 싸고 좋은 것이 있다면 그 배경에는 착취가 있다. 착취라니 너무 극단적인 용어 같기도 하지만, 착취는 악독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좋은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능력과 경험치가 필요하다. 능력과 경험치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온 결과다. 좋은걸 싸게 구입한다는 것은 그 능력과 경험치, 즉 그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수 있고 그것이 곧 착취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누구나 인지하지 못한 채 착취를 행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예산을 세운 다른 이유는 바로 '1억으로 집짓기, 땅부터 집까지 3억으로 집짓기'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현실을 호도한 미디어 때문이다.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구호에 쉽게 현혹된다. 일부 미디어나 업체는 건축주의 순진한(?) 욕심을 파고들어 이익을 챙긴다.


건축주에게 예산은 중요한 이슈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슈일지도 모른다. 건축주들이 돈돈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속고 싶지 않아서 또는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일 수 있다. 계획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예산을 정해놓고 그것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었다.


가격과 품질 모두를 만족시키는 합리적인 예산을 설정하려면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 싸게 하려고 하지 말고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 품질이 뛰어난 게 아니라 적당한 품질로. 아니라면 고품질의 것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아니면 저품질의 것에 낮은 가격을 지불한다, 착취적인 사고를 버리고 미디어가 홀린 왜곡된 정보를 버리고. 냉정해보이지만 이게 상식이고 현실인 것을.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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