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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2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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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Mar 24. 2023

엎을까 말까

집 짓는 동안 수시로 포기하고 싶었어요

집 짓는 동안 여러 번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땅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남편과 협력이 잘 되지 않았을 때 등 수많은 고비 때문에. 심지어 설계를 다 끝내놓고도 시공사 찾지 말고 그냥 그만둘까 싶었다. 주택살이에 대한 열망 때문에 시작한 집 짓기는 수시로 거대한 무게로 나를 짓눌렀기 때문에 고비고비마다 포기하고 도망가버리고 싶었다.


집을 지으면서 우리는 햇볕 잘 들고 전망 좋았던 전세 아파트를 나와서 보증금이 싼 어둑어둑하고 작은 다가구 주택에 세를 들었다. 땅 구입 자금을 따로 떼어놔야 해서 이기도 했지만,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환경이 좋지 않은 작은 집을 택한 것이다. ‘임시거처'라고 굳이 이름까지 붙였다.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한 선택이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급급하다 보면 집 짓기에 대한 열망이 식을 것 같았고, 어려운 일이 나타날 때마다 포기할 것 같았기에 주택살이 전 '임시'로 살다가 갈 집이라 분명히 못을 박아 둔 것이다.  


'임시거처'는 좁고 마감도 촌스러웠으며 창들이 작아 환기가 어려웠다. 단열이 잘 안 되어 곰팡이가 구석구석 올라오는 것도 힘들었다. 아이는 화장실이 1개이고 지저분해서 불편하다고 했고 남편은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혹평했다. 이만하면 눌러앉지 않고 열심히 집짓기 준비를 해서 이사 나가는 날이 멀지 않았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적응력은 놀랍다. 금세 임시거처에 적응이 되어 좁은 집에 맞게 미니멀 라이프를 하며 짐 정리를 하니 잘만 살아졌다. 임시거처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땅을 빨리 사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 짓기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골치 아프게 진행하는 것보다 그냥 조금 불편한 집에서 살면서 일상에 묻히고 싶었다. 


집 짓기를 하면서 다 귀찮고 그만두고 싶다고 느낀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남편과 협력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을 때이다. 한 건축가가 쓴 책을 읽었는데 설계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가족이 집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하고 그것을 통해 가족의 바람과 철학이 담긴 집을 그려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가족과 집에 대해 소통하다 보면 집이 지어지는 과정 자체가 가족의 축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저자에게 격하게 동의했고 가족과 함께 집 짓기를 축제로 만들고 싶어 설렜다. 


그러나 그 설렘은 나의 설레발이었을 뿐,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했던가? 남편과 아이를 모아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자며 노트를 펼쳐놓고 필기할 준비까지 했지만, 남편은 귀찮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고 아이도 집중하지 못했다.  남편은 그냥 집을 짓지 말고 싸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단다. 아니, 집을 어떻게 하면 잘 지을지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 보자고 한 자리에서 갑자기 싸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니!!! 집을 짓기로 동의했으니 남편이 협조적인 자세로 도와주길 바랐지만 뭘 할 때마다 남편을 달래 가며 해야 했던 그 간의 일이 한꺼번에 올라와 폭발 직전이 되었다. 집짓기 축제는 고사하고 싸움판이 될 지경이었고 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고야 만 것이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집을 짓는 일인데 그 과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을 지어 뭘 하나, 집이고 뭐고 다 귀찮다. 그냥 관두고 싶었다. 


그럼에도 관두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임시거처 2년 전세를 2년 또 연장해서 4년 동안 잘 적응해서 살면서도 집 짓기에 대한 열망의 불씨는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완성된 집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불씨가 꺼진 것 같아도 다시 살아나고 또 살아났다. 남편과의 갈등상황도 잘 들여다보면 둘 다 다른 이유로 지치거나 피곤한 상태였을 때였다. 조바심치고 있는 상황을 자의건 타의건 멈추고 잠시 쉬면서 여유를 찾으면 남편을 이해하게 되고, 남편 또한 편안한 상황이 되면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었다. 집을 짓고 있다는 걸 아는 주변 사람들은 가끔 안부를 물으며 격려해 주고 이런저런 자료도 보내주곤 했는데, 이런 것도 지쳐있던 내게 힘이 되곤 했다. 무엇보다 매일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신께 의지하고 하루하루를 점검한 것이 끝까지 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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