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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2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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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Apr 04. 2023

믿고 맡긴다는 것에 대하여

집 짓기를 준비하는 동안 한 건축사무소의 인터넷 카페에서 하는 오픈하우스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해당 건축사무소에서 집을 지은 건축주가 예비 건축주를 위해 자발적으로 집을 오픈하는 거였다. 집을 오픈한 선배 건축주들은 후배 건축주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궁금증을 풀어주고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선한 의도로 집을 오픈했다.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방문한 용인의 한 택지지구의 단독주택에서 젊은 부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집 자체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분위기였고, 예술가인 남편의 작업실은 천고가 높고 작품들이 들어차 있어 멋진 분위기를 자아냈다. 집을 둘러보고 거실 겸 주방인 1층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부는 집짓기 결정부터 완공까지 10개월이 안 걸렸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집을 짓기로 결정한 것도, 땅을 사고 건축가를 선정한 것도 모두 적게 고민하고 쉽게 결정했다고 했다. 집이 지어지는 동안 남편 분이 심장수술을 하게 되어 불가피하기도 했지만 건축가에게 모든 걸 믿고 맡겨서 시공하는 현장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을 정도였단다. 설계사무소를 온전히 믿고 맡겨 지은 이 집에서 3년 동안 아주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부부는 '어설피 아는 지식으로 건축 현장의 전문가들을 의심하면서 감시하기보다 온전한 신뢰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믿었다. 맞는 말이다. 지식이 의심의 도구가 된다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그러나, 믿고 맡긴다고 했을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건축가와 시공자를 덮어놓고 믿은 채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 반드시 후회한다. 집을 지으면서 '건축주가 아는 만큼, 건축주의 수준만큼의 집이 나오니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들었고 공감한다. 소통을 할래도 알아야 더욱 풍성한 소통이 될 수 있다.


이분들이 만약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덮어놓고 믿고 맡긴 거라면 그건 도박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 나름대로 원활히 소통했기에 현장에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어도 만족스러운 집에서 살며 건축가와도 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 일터이다. 건축가가 특별히 좋은 건축가였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건축가는 유명 건축가였는데 그를 통해 집을 지은 다른 건축주는 안티블로그를 만들 만큼 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와 시공자를 온전히 신뢰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믿으려고 몸부림을 쳤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속은 타들어가지만 갈등상황을 겪으면서도 단절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며 쥐어짜서라도 믿어주기 위해 애썼다. 집에 들어와서 산지 5년이 흐른 몇 달 전 설명절에, 시공자가 커다란 생선박스를 선물로 보내왔다. 우리 집 현장을 통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 말에 감동하기보다는 솔직히 좀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믿어준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내 속은 속이 아니었고 집을 짓고 들어와 산지 5년이 흘렀어도 그 힘든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끄러우면서 고마웠다. 내가 보낸 신뢰는 온전한 신뢰관계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없는 억지 신뢰였음에도 우리 집 현장에 최선을 다했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하니 말이다. 억지로라도 믿어주기 위해 몸부림치며 손해도 보며 믿어주었던 것이 집을 지으며 내가 배운 신뢰이다. 아름답지 않은 누더기 신뢰였어도 알아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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