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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집짓기2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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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Nov 22. 2022

건축가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

내가 이런 스타일의 건축가와 만날 날이 올 줄이야. 예전에 잡지 기사를 통해 한 번 접했을 땐, 발랄하다 못해 너무 몸부림치는 게 아닌가 싶어 나와는 관련 없는 스타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넷 기사에서 그들의 최신작 주택을 보고 한눈에 반해 연락해 볼 용기를 냈다. 건축가 상담을 다니다 어느 순간부터 건축사무소에 연락할 때 전화를 하지 않고 땅 정보, 가족 소개, 원하는 집에 대한 내용을 담은 파일을 첨부한 뒤 상담 가능한 시간을 적어 메일을 보냈다. 그러면 사무소에서 그걸 보고 우리에 대해 파악한 후 가능한 상담시간을 정해 회신을 해주었다. 이 분들에게도 이렇게 메일을 보냈는데 답 메일의 분위기 역시 유쾌했다. 우리 집이 재미있을 것 같으니 당장 내일 만나자고.


이 분들의 사무소는 작고 허름한 건물에 있었는데 그동안 방문했던 건축사무소 대부분이 그랬다. 개인들이 하는 작은 규모의 사무소이고 비교적 젊은 건축가들만 찾아다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건축가에게 지불하는 설계비가 높아 보여도 경비를 제외한 수익이 크진 않다는 걸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유쾌한 분들과의 첫 대면은 예상보다 훨씬 정신없고 산만했다. 이제까지는 건축가 한 분과 조용히 상담을 했는데, 이곳은 건축가 두 분과 스텝 한 분 총 세 분이 함께 상담을 시작했고 어느샌가 스텝 한 분이 더 추가되어 왁자지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스스로를 표현할 때 깝치는 것이 숙명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가끔씩 선을 넘는 장난기는 어째야 할지 다소 난감할 때도 있었지만 거부감이 들기보다 한참 동생들같이 느껴지고 귀엽게 보였다. 만나보기 전에는 너무 튀고 싶어 하고 나대는 스타일 아닌가 싶었는데 그들이 지은 주택은 절제되어 있고 완성도 있으며 무엇보다 작업에 대한 태도가 진지했다. 자기 고집만 있지 않고 실력 있고 소통이 잘 되는 건축가들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다 보니 건축가라는 직업이 주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각자 색깔이 있고, 사명감 있는 좋은 건축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발랄하거나 차분하거나 성격은 모두 달라도 대부분 섬세하고 예술적인 면이 보였고 건축에 대해 열정이 있었다. 미디어로만 통해 접하다가 실제로 만나다 보니 건축가에 대해 한껏 부풀어 있던 환상이 점점 수그러들었다. 그들이 대단하고 특별한 집단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직업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괜스레 주눅 들어 있던 마음이 점점 담담해져 갔다.


건축가를 찾아 연락하고 만나러 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배우는 게 많았고 만남 자체가 즐겁기도 했다. 영 아니다 싶어 괴롭기도 했지만. 만나는 건축가 수가 늘어가면서 내가 건축가를 찾고 있는 건지 건축사무소를 탐방하러 다니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만큼 건축사무소에 대한 호기심과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것 같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건축가 분들의 시간을 빼앗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미리 준비할 것은 준비하고 상담시간도 길어지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도움이 되었을는지.


다양한 땅을 보는 것이 땅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듯 건축가도 다양한 스타일을 만나보며 시야를 넓힐 수 있지만 사람은 땅과 달라서 아무리 많이 만나도 잘 파악이 안 되는 면이 있었다. 건축사무소의 형태를 대충 분류하고 건축가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수렴이 되긴 했지만,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건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다. 이건 건축가를 많이 만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 관계의 경험을 했는지 인생 내공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건축사무소의 형태는 1인 사무소 혹은 직원 1~2명과 일을 하는 젊디 젊은 사무소, 2명 이상의 건축가가 직원 여러 명을 두고 동등하게 협업하는 형태, 대표 건축가 한 명과 중간 건축가(?)가 리더인 팀이 여럿 있는 형태 등이 경험과 규모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 규모가 작고 신생일수록 건축가와 밀착해서 집을 지을 수 있고, 규모가 크고 경험이 많을수록 건축가와 거리가 생기지만 체계가 잘 잡혀 있어 신속히 일을 진행할 수 있다. 건축주가 좀 더 주체가 되어 좌충우돌하면서 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앞쪽으로, 안전하게 시스템의 편리함을 가져가고 싶다면 뒤쪽 형태의 사무소를 선택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내가 어떤 스타일과 맞을 것인지가 파악이 잘 안 되었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과제에 도전을 해보고 좌충우돌하면서 실패나 성공의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내 스타일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경험이 부족했다. 인생의 내공이란 관계 속에서 화합하며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 갈등이 생겼을 때 회피하지 않고 함께 극복했던 경험, 또는 반대로 갈등 때문에 관계가 깨어진 경험, 화합이 되지 않아 실패한 경험 등이 얼마나 쌓였는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관계 속에서 성공이든 실패든 희로애락을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내공이 쌓이면 선택을 보다 잘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와 좀 더 잘 맞는 건축가를 선택하는 일처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를 바라보는 내 마음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기보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능성을 바라봐주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고 마음을 닫는 게 아니라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여유일 것이다. 이런 능력과 여유는 인생의 단 맛, 쓴 맛을 겪다 보면 차츰 길러지지 않을까.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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