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무소에서 시공사 다섯 군데에 견적을 의뢰했는데 한 곳을 제외하고 열 페이지가 넘는 상세 견적을 보내왔다. 네 곳의 견적서를 인쇄하니 꽤 두툼했다. 모르는 용어들 투성이어서 살펴볼 엄두가 안 났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 싶어 한 줄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부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시공사 별로 책정한 가격을 비교하며 적어봤다. 시험 공부하는 것처럼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 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예측이 되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공사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시공사 별로 공정별 견적금액이 엇비슷하기도 했지만 차이가 많이 나는 항목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섯 곳 중 가장 인기 있다는 시공사 두 곳의 총금액이 비슷했고, 나머지 두 곳이 중간 정도 가격으로 비슷하고 나머지 한 곳이 가장 낮았다. 세부 항목에서는 꽤 차이가 나는 데도 총금액이 비슷하게 나온 것이 신기했다. 결국 평당 금액을 책정해서 거기에 맞게 세부금액을 맞춰 넣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잘하는 곳들은 평당 700만 원 후반, 중간 업체는 평당 600만 원 후반, 제일 낮은 업체가 600만 원 초반으로 나타났다.(2017년 기준)
세부 견적을 내는 일은 공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견적을 내는 데 비용을 받지 않으니까 현장에서는 평당 금액이 여전히 손쉬운 견적 책정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견적 내는 비용을 따로 받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관례대로 평당 금액으로 견적을 산출하기보다 정당한 비용을 받고 정확하게 견적을 내면 건축주와 시공사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부 공정별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강구할 수 있게 되고 시공 계획도 보다 정확하게 세울 수 있게 될 것 같다.
세부견적서를 보면 온통 모르는 용어투성이에다 필요 수량과 인건비가 정확히 책정되었는지 알기도 어렵다. 견적은 건축공사비, 이윤 및 경비, 부가세, 제외 항목으로 나뉘어 표기되어 있었다. 먼저 건축공사는 크게 가설공사(예비공사), 기초공사(철근콘크리트 공사), 골조공사(경량목구조공사), 단열, 금속, 유리, 방수, 미장, 인테리어(내부목공), 타일, 창호, 도어, 도장, 외장, 기계설비, 전기, 통신, 소방, 에어컨, 위생기기, 부대공사(가구, 외부데크 및 조경 등)로 나뉘어 있다. 이는 공사 순서와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각 공사는 세부공정으로 나뉘어 표기되어 있었다. 공정별로 재료비, 노무비, 경비로 나뉘어 비용이 책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초공사는 터파기, 되메우기/다지기, 토사반출 및 건축물 주변 토사 정리, 잡석 깔기 등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필요 규격과 단위 및 수량에 따라 견적이 산출되어 있다.
한 항목씩 적어가면서 업체별로 비교하다 보면 적어도 대략적인 감은 잡을 수 있게 된다. 공사 진행 절차를 예상할 수 있게 되고, 견적서 상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게 된다. 세부 견적서를 하나하나 써서 나만의 표를 만들어 비교해 보길 권한다.
내가 견적을 비교했던 다섯 업체는 모두 설계사무소를 통해 여러 번 시공경험을 쌓은 업체들이라서 기본적 신뢰가 있기에 세부내역에 있어 차이가 있어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총금액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인기 있고 실력 있는 업체는 이윤을 많이 책정했고 보통인 업체는 그에 맞는 적절한 이윤을 책정했기 때문이다. 검증된 업체라면 아주 낮은 가격이나 아주 높은 가격이 아닌 이상 속을 일은 없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