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한무 Mar 19. 2024

30점 만큼의 빈틈

완벽에 대한 환상

집을 지으면서 완벽한 집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자주 완벽에 대한 환상에 빠졌다. 이런 착각은 결국 나 자신을 괴롭히며 안달복달 하게 만들었다. 건축주가 공부를 많이 하고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너무 지나치면 고통이 될 수 있다. 


집을 처음 지어 보는데 모르는 것도, 실수가 많은 것도 당연한 것. 그런데도 높은 기준을 부여하고 실패와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패착을 저지르고 말았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주변에서는 나를 보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너무 열심히 하면 지쳐 나가떨어진다고 직접적으로든 우회적으로든 조언했다. 그러나 그 조언들이 와 닿지 않았다. 




70점에 만족하기

집 지으며 괴로워 하는 내게 어느 분이 70점에 만족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늘 100점, 아니 120점을 원해왔다. 완벽을 넘어서 더 완벽하고 싶어서 말이다. 혹시 모를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20점을 비축해 두는 심정이었다. 20점 만큼 남과 나를 착취한다는 것을 모른채로. 그런데 70점이라니. 100점에서도 30점이나 못 미치는 70점. 나는 70점 짜리 집을 갖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집 짓는 과정도 70점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 할 수 없었다. 후회는 반드시 있고 빠트리는 부분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집을 지은 직후, 결과물인 집도, 집을 지은 과정도 내가 스스로에게 메긴 점수는 120점도 100점도, 하다못해 70점도 아닌 0점이었다. 왜냐하면 완벽함 아니면 그냥 절망과 포기를 택하고 마는 나의 어리석은 교만 때문이었다. 심리학적으로는 우울증적인 사고가 이러하다고 한다. 정신과 용어로는 ‘부정화 사고’라고 한다는데,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로 만들어버리는 사고 방식으로 자신이 잘 했던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백지화 시켜버리는 ‘모 아니면 도’의 심리라고 한다. 남이 정해놓은 원칙에 압도되면 부정화 사고에 휩쓸리기 쉽다고 한다. ('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 중)




30점 만큼의 빈틈

집을 짓고 들어와 산 지 7년째가 되는 지금, 시간이 흐른만큼 내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집에 나와 가족의 흔적이 더해가고, 우리가 나이 드는 만큼 집도 나이를 들어가는 걸 보면서 조금씩 애정이 생기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부족한 점과 실패한 점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잘 가꾸어 나가고 있다. 오히려 70점만 되어도 감사하고 만족하며, 모자른 30점 만큼의 빈틈이 사랑스러운 그런 집과 삶, 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 02화 하자가 눈에 띌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