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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Mar 26. 2024

결정장애 극복하기

집 짓기를 하다 보면 날마다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수많은 선택에 압도되다


집 짓기를 하다 보면 날마다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결혼식 준비할 때와 비슷했는데 둘의 공통점은 짧은 시간에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결혼 준비하다가 예비부부가 싸우는 일이 흔한데, 선택이란 게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후회 없는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기 때문에.


집 짓기는 나에게 꼭 맞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꿈같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고민하고 찾아내어야 하는 수고가 따르는 일이다. 하다못해 콘센트 하나를 고를 때도 내 취향과 맞는지, 집과 어울리는지, 기능은 충실한지 점검해 볼 게 많다. 너무도 많은 선택 앞에 피로해지기 쉽다.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기에 가족의 필요와 취향까지 고려하다 보면 머리 터지기 일쑤다.


살면서 두고두고 후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더해지면 집짓기 과정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 변한다. 지나친 염려 때문에 결정장애가 오고, 아무것도 선택을 못하겠으니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힘들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게 되면 싸움 나기 딱 좋다. 무기력과 분노로 감정이 메말라 가는 건 덤이다. 이쯤 되면 나는 집 짓기의 주체가 아닌 노예가 되어 있는 거다.




결정장애 극복하기


마음을 지키려면 압박감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집 짓기는 큰 프로젝트지만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결혼준비의 본질은 사랑하는 부부의 탄생이지 그럴듯한 결혼식이 아니듯, 집 짓기의 본질은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간소하게

결혼도 집 짓기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지만 사실 단순하고 간소할수록 좋은 것 같다. 불필요한 것을 하나라도 없애면 좋다. 결정할 것이 줄어들어 준비 과정이 가벼워지니까. 평수를 줄이거나, 같은 바닥 평수라도 벽면의 면적을 줄이는 등 간소하게. 우리 집은 조명을 선택할 때 펜던트 등을 최소로 하고 가능한 매립을 했는데 내가 결정할 등은 식탁등 1, 벽등 2, 외부벽등 1종뿐이어서 그나마 수월했던 듯하다. 이런 식으로 간소화하는 게 결정장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팀의 도움 받기, 위임하기

다 갖춰서 하고 싶을 경우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위임한다. 결혼식 준비에서 폐백과 한복 선택은 부모님께 맡기고 웨딩드레스는 내가 선택한다는 식으로. 모든 걸 내 취향에 맞게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하면 감당하지 못해 허덕이게 된다. 집 짓기도 마찬가지다. 나같은 경우 인테리어는 비교적 잘 알고 내 취향을 적극 반영하고 싶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선택했고, 별다른 취향이 없던 지붕재는 건축사무소에 일임했다.



선택지 제한하기

선택지를 제한해 두는 건 정말 유용한 방법! '조명가게 세 곳을 둘러본 후 정한다' 이런 식으로 미리 선택지를 제한해 두면 한도 끝도 없는 제품의 홍수에서 허덕이게 되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중요포인트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위임이나 선택지 제한에 대해 지나치게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물이 한정된 나의 시간과 능력 안에서 최선이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당연히 후회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후회가 되어도 너무 몸이 상할 정도로 후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원망하지 않는다.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거나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집을 지으면서 나는 위임하는 걸 잘 못해서 혼자 끌어안고 허덕이기 일쑤였다.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몇 개를 위임하고 나서도 나중에 후회를 많이 했다. 후회만 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배울 점은 기록해 놓고 잊지 말도록 하고, 능력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한다.


집을 지을 때 현장소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집은 세 번을 지어봐야 그때 후회가 없다고.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지어도 후회는 있을 테지만, 그때쯤 되면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게 돼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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