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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Apr 02. 2024

집짓기 민원 또는 오지랖

집을 짓는데 골치 아픈 것 중의 하나가 고약한 민원이다. 관공서에 민원을 넣어 공사를 지연시키거나 건축주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서 서로 이웃이 될 사이이기에 서로 참아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오히려 흔히 겪게 되는 것은 과한 관심에서 오는 간섭, 전문용어로 '오지랖'이다. 우리 집을 지을 당시 인접한 땅들이 거의 빈땅이어서 집 짓는데 민원이 들어오는 어려움은 없었지만, 오지랖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땅을 구입하고 난 뒤 처음으로 세 식구가 다 같이 땅을 보러 간 날이었다. 춥고 흐린 날씨의 겨울, 잡초가 지저분하게 엉켜있던 빈 땅들, 그 주변으로 화물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어 분위기는 다소 황량했다. 우리 땅은 LH에서 분양을 받은 땅이었기 때문에 LH에서 세워준 무단 경작물 경고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땅에는 텃밭을 가꾼 흔적이 있었는데 겨울이라 농작물은 정리되어 있는 상태였다. 남편과 가만히 땅을 밟아보았다. 땅을 밟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느껴볼 새도 없이 우리 땅 옆집에서 창밖으로 빼꼼히 내다보시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드렸더니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초대에 어리바리하면서 옆집으로 들어갔다. 어색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따뜻한 집에 들어서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거실에 앉으니 할머니가 차를 내주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사시는 집이었다. 내주신 차를 마시며 집 짓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은 할아버지 혼자 집짓기 강의를 하셨다. 알고 보니 건축 시공을 오래 해오신 분이었고 워낙에 말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집 짓기에 대한 경고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집짓기 만만하게 보지 마~"

'(만만하게 본 적 없는데요)'


"집 지으면 팔 생각은 하지 마"

단독주택은 매매가 쉽지 않은 것 알아요. 그때는 몰랐지만 할아버지 댁은 몇 년째 집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인데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난방은 지열로 해"

지열난방은 친환경적이라 하지만 지원을 받는다 해도 초기 설치비가 비싸고, 땅 150미터 깊이로 파이프를 묻어야 해서 설치 난이도도 있으며 문제가 생기면 수리가 거의 불가능한 거 같더라. 우리 마을은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지역인데 왜 굳이 지열난방을 설치하셨는지.


"태양열판 설치해"

우리 집은 전기요금이 매월 3만 원 내외로 그리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설치비를 따졌을 때 별 이득이 없었다.


"집 짓는 동안 그 집 수도는 동네 수도가 돼서 물 값 많이 나올 것이니 각오해~"

할아버지 말씀대로 주변 텃밭 일구시는 분들이 우리 집 수도를 마음대로 쓰는 일이 발생했다.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더니 생각만큼 요금폭탄을 맞지는 않았다.


"어떤 집을 지을지 두서없더라도 메모해서 설계사에게 전달해~ 우리 집 설계한 건축가 소개해 줄까? 연락처 줄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맞지 않는 것도 많았다. 처음에는 귀 기울여 듣다가 점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멍해졌다. 할아버지 집에서 나올 때는 기력이 소진되고 영혼이 가출한 상태가 되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폭풍 강의를 수강한 가족이 여럿 있었다. 이웃집 분들도 집을 지으며 강연을 한 시간씩 듣고 왔다는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강의하시는 동안 조용하셨던 할머니께서는 의외로 우리 집이 지어지는 동안 현장소장님께 이런저런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고 한다. 대부분 현장에서 해결할만한 자잘한 문제였기에 현장소장님은 나에게 말씀 안 하시고 나중에서야 이야기를 하셨다. 덕분에 이웃 간에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


집을 짓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 조언을 한다. 할아버지처럼 집을 지었던 경험이 있고 전문 종사자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 거나, 미디어를 통해 접한 지식이다. 집 짓기를 준비하며 공부해 온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사실 나에게는 정보보다는 격려와 지지가 더욱 필요했기에 자꾸 정보를 주는 사람들이 귀찮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보 전달이라는 행동을 통해 관심과 응원을 보낸 걸 텐데, 지랖으로 매도한 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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