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한무 Apr 09. 2024

집 짓기가 한풀이가 되다

집 짓기의 시작은 우리 세 가족에 딱 맞는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집을 짓는 동안 어느새 집 짓기가 한풀이 수단이 되어갔다. 내 안에는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결핍이 있었다. 진로 실패에 대한 좌절감, 세입자로 전전하던 설움, 집을 마음껏 꾸미고 살고 싶다는 욕망에 이르기까지. 해소되지 못한 결핍은 '한'이 되어서 내 안에 쌓여있었다. 



실패를 만회하고 싶다

프리랜서이자 주부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치과대학진학이라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이 나와 어울리는 것인지 부모의 기대로 인한 것인지 끝내는 좌절되었다. 꽤 오랜 기간 패배의식 속에 살고 있던 나는 집짓기가 실패를 만회하는 기회가 될거라 생각했다. 누가 봐도 흠 없는 집을 만들고, 주택 살이도 잘해보고 싶었다. 이런 욕심을 보란 듯이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집 짓는 내내 이런 동기가 덕지덕지 붙어서 집 짓기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몰두하는 결과를 낳았다. 


집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붓게 되면서 집 짓기는 즐거운 프로젝트가 아니라 큰 부담이 되어버렸다. 집 짓는 과정이 너무 고생스러웠고 입주해서도 그 부정적인 감정이 이어져 편안하지 않았다. 잘 해내야 할 숙제이고, 성공시켜야 할 프로젝트였는데 뜻대로 되지 못해 부끄러웠다.  



안정된 내 집을 갖고 싶다

열아홉 고3 때부터 친정사정이 안 좋아졌다. 서울 중심부에 있던 아파트에서 나와 주변 다가구주택으로 이사 갔다. 그리고는 경기도로, 경기도 중에서도 점점 외곽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스물아홉에 결혼을 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주거불안이 이어졌다. 결혼 후에는 작게라도 내 집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남편의 반대로 10년 넘게 전세살이를 전전했다. 20년 넘게 주거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쌓였다. 이제는 '쫌' 내 집을 가지고 싶었다. 


드디어 집을 다 짓고 입주! 더 이상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내 집이 생겼다. 전화번호 목록에 '집주인' 번호가 없어졌다. 기쁘고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내 마음은 왜 이러지?



마음껏 꾸미고 싶다

신혼집은 오래된 아파트의 낡은 마감과 함께 시작했다. 이 때는 신혼의 새 가구와 새 침구로 꾸미는 재미가 있었다. 전셋집이라도 남편과 나만의 보금자리니 귀하고 소중했다. 당시 핫했던 '레몬테라스' 네이버카페에 우리 집자랑인가 하는 게시판에 잘 꾸민 집을 구경하곤 했다. 집을 좋아하기 때문에 구경하는 게 즐거웠다. 집을 어떻게 꾸밀까 상상하며 잠든 밤도 여러 날이다. 그런데 현실 속 내가 사는 전셋집들의 마감은 오래되어 꾸며도 낡은 티를 벗지 못하거나, 온통 체리색이거나, 나뭇결모양 시트지로 도배되어 있거나 했다. 늘 한계가 있었다. 나는 깔끔한 화이트가 좋단 말이다. 


집을 지을 때 흰색에 대한 한풀이를 마음껏 했다. 벽지도 문도 창틀도 모두 다 흰색으로 했다. 내 마음껏 꾸미면서 흡족한 마음이 들었냐면? 집 꾸미는 건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를 꾸미면 또 저기가 부족하게 보인다. 아. 적당히 해야겠다. '마음껏'하다가 집안 거덜나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한'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한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것도, 입시에 실패한 것도, 내 집이 없어 세입자로 전전하며 살면서 마음대로 집을 꾸미지 못한 것이 내게는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져 한이 되었다. 한이 풀린다는 것은 '어떤 제약이나 제한이 해제되어 자유로워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풀이가 되었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집짓기 자체가 한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집을 짓는 과정, 집을 짓고 사는 과정에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내주며 현재를 보듬고 미래에 소망을 가지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다짐하게 되었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할 때 한풀이 하듯 하지 않겠다. 감사함으로, 소망으로, 기대감으로 할 것이다. 한풀이하듯 하면 과정도 결과도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는 한을 쌓는 삶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풀이는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 그래야 한풀이가 별로라는 걸 알게 된다.



이전 05화 집짓기 민원 또는 오지랖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