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 12일째, 아들을 만나다
드디어 출산휴가를 개시했다. 육아카페에서 ‘출산 준비물’을 검색해 벼락치기하듯 물건들을 사고, 가제손수건을 삶고, 배냇저고리를 세탁하는 등 그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몰아치기 하느라 정신없었다.
호르몬의 변화로 감정을 종잡을 수 없던 어느 날,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우울함이 몰려와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남편한테 한바탕 짜증을 내고 침대에서 혼자 훌쩍대며 ‘이게 산전 우울증인가?’ 생각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화장실을 가보니 이슬이 비쳤다. 보통 이슬이 비치면 며칠 내로 아기를 낳는다고 들어서, 곧 아기가 나오려나 보다 생각하던 찰나 양수가 터졌다. 양수가 터지면 위험하니 곧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감염 위험이 있어, 24시간 이내에 출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수가 터졌으니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 유도분만 촉진제를 맞아야 하는데, 혈관이 잘 안 보인다며 촉진제 맞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렸다. 혈관이 안 보여 아픈 부위에 꽂을 수밖에 없겠다며 아주 불편한 위치에 엄청 큰 주사 바늘을 꽂더니 관장할 시간이란다. 임산부 3대 굴욕이 내진, 관장, 제모라고 하던데 내진에 이어 관장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3개의 굴욕 중 내진이 가장 굴욕적이었다. 자궁이 4센치 열려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데, 내 침대 옆을 지나가는 간호사들이 예고 없이 내 질 안에 손을 넣어 휘휘 젓고 “아직 3센치네요”라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또 다른 간호사가 와서 손을 휘휘 젓더니 드디어 4센치란다. 새우 자세를 하고 척추에 무통주사를 맞는데, 진통이 너무 심해 주사가 아픈지도 몰랐다. 무통주사 빨리 놔달라고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
무통주사를 맞으니 ‘무통 천국’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무통 빨'이 떨어지고 진진통이 시작됐다(가진통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얼굴 전체에 식은땀이 흐르고 목이 바짝 말라 입안에 침이 단 한 방울도 없는 거 같았다. 진통에 맞춰 가까스로 호흡하며 힘을 주고 있을 때 제모가 시작됐다. 쓱쓱 이상한 느낌이 나는데, 진통에 가려져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내가 계속 움직이며 힘을 주고 있으니 혹시나 베일까 걱정되는 거 말고는 굴욕적이고 말고도 없었다. 근데 아마 맨 정신이었다면 3대 굴욕 중 제모가 가장 굴욕적이지 않았을까? 진통에 맞춰 정신없이 호흡하고 있는데, 쓱쓱 제모하는 웃픈 광경이라니.
자연 분만하려면 회음부를 절개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질 안으로 손을 넣어 질과 골반을 검사하는 ‘내진’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임신인지 티도 안나는 임신 초기가 배가 남산만 한 임신 후기보다 더 위험한 건지 몰랐다.
임신 막달에 병원에서 처음 내진(질에 손가락을 넣어 자궁경부가 벌어진 정도를 확인하는 일) 하던 날, 당황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 나오는 날 보고 의사는 의아하게 ‘내진 뭔지 모르셨어요? 요즘은 다들 검색해봐서 미리 알던데’라고 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출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산부인과 정기검진만으로도 연차는 바닥나 있었다.
‘연차가 조금 더 남았더라면 임신부 요가도 듣고, 산부인과에서 주최하는 클래스를 들으러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자 몇 년 전 퇴사했던 전전 회사가 떠올랐다.
여성 친화적 기업으로 일간지에 몇 차례 소개되었던 그 회사는 임신부는 연차 외에 월 1회 특별 휴가를 쓸 수 있게 했다. 월 1회 산부인과에 정기검진 가는 임신부를 배려한 휴가였다. 당시 나는 미혼이어서 그 휴가에 대한 메리트를 전혀 못 느꼈고, 사내 복지 리스트의 그 항목을 보면서 ‘다른 거 어필할 게 없어서 저것까지 써놨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역시 자기 일이 아니면 모른다. 임신부들에겐 그 복지가 얼마나 소중했을까?
출산을 하지 않은 내 친구들은 예전의 나처럼 회음부 절개, 내진, 임신 초기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임신 초기에 선택이 아닌,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 임신 기간 동안 주의해야 할 점, 임신 주차 별 특징, 내 몸에서 일어날 변화 등에 대해 의무적으로 듣는다면 그 상황에 닥쳤을 때 조금 덜 당황스럽지 않을까? 내진이 뭔지 모르고 진료실에 들어갔다가 다리를 휘청이며 나올 일이 없으면 좋겠다.
새벽 2시쯤 병원에 왔는데, 오전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사이 엄청난 횟수의 ‘내진’을 했고, 간호사는 이제 “다섯 번만 더 힘주면 아기 나올 거 같아요”라고 했지만, 그런 말을 이미 너무 많이 해서 믿음도 안 갔고 한 간호사가 다른 간호사한테 “산모가 너무 힘을 못 줘서 힘들어 보여요”라고 속삭이듯 말하는 걸 들었는데 그걸 듣는 순간 더 힘이 빠졌다.
급기야 제왕절개 해달라고 울었는데, 의사는 이제 아기 머리가 보이는데 웬 제왕절개냐고 했다. 도대체 끝나기는 하는 건가 싶어서 대성통곡하듯 울었는데 간호사가 “힘을 줘야 아기가 나오는데, 우느라 힘 빼면 안 된다”라고 했다. 꺽꺽 울면서 정신없이 호흡하는데, 내 주변이 갑자기 흥건히 젖더니 무언가 풍덩 하고 나왔다.
의사가 남편을 불러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39주 동안 매달 얼굴을 봤던 의사가 자상한 목소리로 내 볼을 만지면서 "힘을 너무 줘서 피부가 다 터졌네"라며 "힘들지? 원래 엄마 되기 힘든 거야. 고생 많았어"라고 말하며 아기를 안겨줬다. 처음 만나는 아들 볼에 뽀뽀를 했는데, 볼과 내 입술이 만났던 그 촉감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됐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 옆에서 남편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남편이 불편해 보이는 피케셔츠를 입고 있길래 “왜 그 셔츠 입고 왔냐”고 물었더니 아들과의 첫 만남을 목 늘어난 티 입고 할 수 없어서란다. 우리는 핏덩이 아들과 처음 만나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
39주 내내 퇴사해야 하나 고민하며 초기 유산 위기를 넘기고, 조기 진통 위기를 넘기고, 태교다운 태교를 못했어도 이렇게 건강한 아기가 우리한테 왔다. 남편은 양가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했고, 나는 회사에 소식을 전했다. 와중에도 ‘회사에는 언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거지? 지금 하면 되는 건가?’ 그리고 ‘누구한테 연락해야 하는 거지?’ 생각했다.
인사팀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두 팀에 소식을 전했더니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팀장이 클라이언트에도 소식을 전했는지, 클라이언트사의 차장에게도 연락이 왔다. "그 힘들다는 유도분만을 해내셨네요. 고생 많으셨고 축하드려요". 유도분만은 내 예상에 없던 일이라 더 힘든지 아닌지도 몰랐고, 양수가 터져 '갑분 유도분만'이었다. 힘든 유도분만 잘 해냈다는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받으니 예기치 못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계속되는 축하 인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39주 동안 배 속에 아기를 품고 지냈던 회사에서의 날들을 떠올렸더니 다정한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악착같이 혼자서만 버텨낸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따뜻한 기억도 정말 많았다. 카톡 메시지 알림이 울릴 때마다 그 사람한테 받았던 배려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