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9주 내내 왜 자기 검열을 했을까?

유산 위험이 있어도, 자궁 수축이 와도 출근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날들

by 세실리아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회의실에서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임신 6주 차, 직속 상사 두 명의 자리에 찾아갔다.


임신했다고 말하니 A부장은 “너무 잘됐다. 축하해. 지금 몇 주야?”라고 묻는데,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여러 번의 험난한 시도 끝에 2년 전 엄마가 된 A부장은 평소의 말없던 모습과 달리 내 소식을 듣고 기분 좋게 웃었다.


또 다른 직속 상사 B부장을 회의실에서 만나 “부장님 저 임신했어요”라고 하자 1~2초 어색한 공기가 느껴졌다. 평소 온화하고 성품 좋은 사람이지만, 어색한 공기 속엔 ‘임신했다고? 그럼 출산 기간 동안 이 자리 백업은 누가 해야 하지?’하는 당혹감이 느껴졌다. 이내 ‘잘됐다. 축하해”라며 몸조리 잘하라고 등을 두들겨줬다.


‘임신 유세’ 떤다고 생각할까 봐 움츠러들던 시간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업계 특성상 인력이 수익인 시스템이라 인력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팀에서 한 명이 없으면 다른 팀원이 어떻게든 그 일을 쳐내야 그 자리가 메워진다. 임신했지만 배려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입덧한다고 갑자기 반차 내면 다른 팀원이 야근하며 그 일을 해내야 하니까.


“임신부 단축근무 신청하면 안 돼?” 묻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있다 한들 신청할 엄두도 안 났고, 신청한다 한들 허락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전 회사는 늘 6시 칼퇴를 했지만 업무가 너무 지루하고 빠르게 변하는 업계를 따라가지 못했다. 여기 계속 있다간 나중에 이직하고 싶어도 못하겠구나 싶어서 결혼 전에 이직한 곳이 이 회사였다. ‘애 없는 기혼여성’은 취업시장의 기피 1순위라 하는데, 결혼 전에 미션 클리어하듯 이직했다.


이전 회사와 달리 지루할 틈 없이 일하는 덕분에 이직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는데, 고역 같은 출퇴근 시간을 매일 겪다 보니 ‘임산부 10시 출근, 5시 퇴근, 금요일 재택근무’ 혜택이 있던 이전 직장이 그리워졌다.

‘아 맞다. 그 회사는 출산 후에도 금요일은 재택근무였는데’ 떠올리며 미혼여성과 기혼여성의 좋은 직장 우선순위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침몰하는 배처럼 느껴지던 그 회사에서 굳이 이직하지 않은 선배들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그 회사에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아기 엄마들이었다.


매일 아침 토할 거 같은 기분으로 회사에 가선 입덧을 완화해준다는 참크래커, 마이구미, 탄산수를 먹으며 ‘몸 괜찮아?’ 묻는 동료들에게 괜찮은 척했다. 사실은 안 괜찮은데. 그리고는 ‘이직 안 했으면 좀 괜찮았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결혼하고도, 출산 후에도, 오래오래 일할 생각으로 고심 끝에 이직한 건데 아기를 낳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거 같았다.



위험한 순간에도 자기 검열하던 시간들

담당하던 브랜드의 화보 촬영이 있던 어느 날, 브랜드 모델인 배우가 도착하고 클라이언트와 촬영 스텝, 촬영 기자 등이 다 모였다. 막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진통이 왔다. “아직 출산일은 한참 남았는데, 설마 이게 진통인가?”, “근데 지금 내가 배 아프다고 나가도 되는 건가?” 고민하는 사이 쥐어짜듯 배가 아파 부장에게 촬영 현장에 와달라고 전화한 후 헐레벌떡 산부인과에 갔다.

의사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자궁 수축이 있으니 2주 동안 푹 쉬라며 소견서를 떼줬다. “모델이랑 촬영팀까지 다 모였는데, 담당자인 내가 지금 자리를 비워도 되는 건가?” 고민만 하며 아픈 배 쥐어 잡고 그 자리를 지켰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일어날 뻔했다. 사실 나 하나 없어도 촬영 현장은 잘 돌아가는데.


왜 이리 주변 눈치를 봤던 걸까? 그리고 다음날 의사의 소견서를 내고도 병가 쓰는 걸 왜 그리 어려워했을까? 내 몸이 우선이고 배속 아기가 우선인데, 당시엔 ‘임신 유세’ 떤다고 생각하진 않을지, 내가 너무 유난 떠는 건 아닐지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 검열했던 거 같다. 유산 위험 시기에 다른 팀 행사에 동원되고도 안 간다고 말하지 못했고, 출산 두 달 전엔 하루 종일 밥 한 끼 못 먹고 14시간 내내 서서 프레스 행사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새벽 내내 토하다가 급히 연차를 냈더니 “그래도 메인 담당자인데 오늘 미팅에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부장 말에 꾸역꾸역 옷을 입고 웩웩 거리며 회사로 향하기도 했다.


동료들이 ‘임신했는데도 퇴사 안 한 건 네 선택이잖아’라고 생각할 거 같았다. 돌이켜보니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출산 후, 90일만 쉴 수 있었던 사내 분위기

그렇게 임신 초기, 중기, 후기를 보내고 어느덧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예정일 한 달 전에 휴직해 천천히 출산 준비를 하고 싶었다. 인사팀에서는 “너무 일찍 휴가 쓰기보다는, 예정일에 최대한 임박해서 들어가야 출산 후에 애를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미 예정일이 한 달 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일찍’이란 기준은 언제일까?


한 차장은 출산일을 코앞에 두고 출근하다가 출근길에 아기를 낳았다. 사내 분위기가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환경이 전혀 아니어서 딱 90일(출산휴가)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휴가를 개시하면 출산 후 아기를 얼마 보지 못하고 복직해야 하니 최대한 아끼려고 하다가 그랬던 거 같다.


또 다른 차장은 퇴사하던 날 “OO아, 이 회사에서 결혼은 해도 임신은 다른 회사에 가서 해”라며 “내가 여기서 애 낳아보니 너무 아니야”라는 말을 내게 남기고 갔다(이 차장도 딱 90일 쉬었다). 하지만 업계를 떠나지 않는 한, 다른 회사라 한들 딱히 다르진 않았을 거 같다. 출산휴가 3개월 외 육아휴직 12개월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홍보회사가 당시엔 흔치 않았다.


직원의 90% 이상이 여성인 회사라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여성으로서 연대하지 못했을까? 많은 선배가 임신을 경험했고, 또 많은 후배가 앞으로 임신할 텐데 ‘수유실을 만들어주세요’라고 했던 내 건의사항을 왜 아무도 귀담아들어주지 않았을까? 남자가 90%인 회사에도 10% 여성을 위한 유축할 수 있는 수유실이 있을 텐데.


초기 유산의 위기와 자궁수축의 위험, 그리고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던 짧고도 긴 39주가 지났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출산휴가 전 마지막 퇴근을 하면서 “90일 후에 복직하면 유축은 어디서 해야 하지?” 생각했다. 매일 화장실에서 유축하던 선배가 떠올라 막막했다. 동료들이 보기엔 무난한 임신부라 평하겠지만, 스스로 돌이켜보면 휴직 전 날까지 고군분투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퇴근한 지 12일이 지나 아기를 낳았고, 워킹맘 라이프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