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엔 수유실이 없다
“C과장 복직했습니다. C과장 일어나서 인사하세요” 복직 첫날, 전 직원회의 시간에 대표가 말했다.
일어나서 인사했더니 대표는 “오래 쉬다 왔으니 열심히 하세요” 했다.
‘쉬다 왔다고? 난 쉰 적 없는데. 매일 밤 새벽 수유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언짢은 마음과 동시에, 2개월의 육아휴직을 쓰게 해 준 회사에 대해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난 원래 출산휴가 90일만 쓰고 나오기로 되어있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건 3개월의 출산휴가와 12개월의 육아휴직 총 15개월이지만, 출산휴가만 쓰는 게 사내 관례였다. 나는 육아휴직 중 회사에 연락을 해 육아휴직을 쓰고 싶다고 말했고, 여러 차례 딜 끝에 더 확보한 기간이 나라에서 보장한 육아휴직의 1/6인 2개월이었다. 출산휴가까지 더하면 총 5개월이니, 아기의 백일은 챙길 수 있었다. 90일만 썼다면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베이비시터나 어린이집에 맡기고 왔어야 했을 텐데, 2개월 더 허락해준 회사에 고마웠다. 미혼 친구들은 “법으로 보장된 건데 뭐가 고마워?”라고 했지만, 정말로 고마웠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다른 업계 친구가 15개월 연속으로 꽉 채워 쓰는 걸 보면 부럽기도 했다.
복직 전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단유와 젖 말리기였다. 마음 같아선 돌까지는 모유를 먹이고 싶었지만, 회사엔 수유실이 없었다. 90일 만에 복직했던 선배가 화장실 변기에서 유축하는 모습을 봐 왔던 지라 차라리 단유 하고 복직하자 결심했다.
육아휴직 전에 몇 차례 회사에 수유실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사실 나도 강경하게 ‘수유실을 만들어주십시오’ 건의한 건 아니다. 갓 이전한 사옥에 새로운 공간들에 대해 제안받을 때 ‘수유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소극적으로 어필한 정도였다. 어떤 일이든 당사자는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특히 약자이거나 소수자 경우엔 더욱 그렇다. 당시 사내에 임신 중인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는데, 90일 후에 복직할 날 위해 수유실을 만들어달라고 강경하게 말하긴 힘들었다.
복직 전 급히 ‘젖 말리는 법’, ‘단유 하는 법’ 등을 검색해봤다. 젖을 말리는 과정이 그렇게 아픈 건 줄 몰랐다. 매일 불어 터진 가슴을 짜내지도 못하고 마사지를 단유 받으러 다니던 중, 이전 회사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회의실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출산하고 돌아온 옆 자리 대리가 계속 회의실 문을 열며 “아직 다 안 먹었어요?’”했다. 13시까지 점심시간이라 회의실을 쓸 수 있는데 왜 이리 눈치를 주나 생각하며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고 회의실을 나왔다.
오후에 메신저가 울리길래 열어봤더니, 그 대리였다. “아까 미안해요. 젖이 가득 차서 유축해야 하는데, 늦게 하면 가슴이 퉁퉁 부어 아프거든요”했다.
그 대리는 어떤 날은 회의실에서, 어떤 날은 사무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쉬는 옥상 휴게실에서, 어떤 날은 대표가 없는 대표 방에서 유축했다. 그 대리는 회사 사정으로 아기가 50일 때 복직했는데, 매일 그렇게 유축해간 모유를 보냉백에 담아 집에 가서 아이에게 모유를 먹였다.
이후, 난 업계에서 큰 규모에 속하는 회사로 이직했지만 여전히 수유실은 없었다. 이전 직장에서도, 현 직장에서도 ‘수유실 없이 유축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봐왔으니 복직 전 나의 미션 중 하나가 ‘젖 말리기’ 일 수밖에 없었다.
젖을 무사히 말린 후 복직했다. 휴직 기간이 길지 않았으니, 복직 후 업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큰 변화는 다른 곳에 있었다. 복직하고 일주일이 채 안됐을 때 회사 동료들이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아기 보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여유롭게 저녁 먹고 가기가 미안했다. 나는 빠지겠다고 하고 먼저 집에 오는 길, 회사 근처 마트에 들러 기저귀와 분유, 이유식 스푼, 그리고 유아비누를 사서 집에 왔다. 퇴근길 마트 유아코너에 서서 쇼핑하고 있으니 정말 ‘일하는 엄마가 됐구나’ 싶었다.
그 날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던 동료들도 대부분 기혼이었다. 하지만 ‘애 없는 기혼’과 ‘애 있는 기혼’은 천지차이다. ‘애 있는 기혼’은 나 혼자였다.
그때의 ‘애 없는 기혼’ 동료들은 이제 아기 엄마가 되어 전업맘이 되기도 하고, 다른 회사에 이직하기도 하고, 여전히 분투하며 그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하다. 전업맘이 된 동료나, 워킹맘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료나 이렇게 글 쓰고 있는 나나 각자의 고민의 몫이 있겠지? 아기 키우고 나면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까지 회사 다녀야 하나 등등 나름의 고민이.
복직 후 가장 크게 체감되었던 변화는 ‘야근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야근이 좋을 리 없지만 여태 껏 그냥 ‘닥쳤으니 어쩔 수 없이 하지 뭐’라는 마음으로 야근을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야근이 일상이었고,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직원들도 여럿 있었다.
아기를 낳고 나니 22시 넘어 퇴근하는 일상을 ‘어쩔 수 없지’라고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집에 가면 자고 있는 아기, 다음 날 아기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는 나, 얼굴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주말뿐이었다. 그마저도 주중에 쌓인 피로로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또 아들의 하루를 놓쳤네” 놓친 하루하루가 쌓여 복직 후 반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돌이 되지 않아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양가 부모님이 아기를 봐주셨는데, 양가 부모님 일정에 맞춰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또다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돌아다니는 아기가 혼란스러울 거 같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집을 둘러보는 아기의 얼굴을 보던 어느 날, 문득 ‘남은 육아휴직을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육아휴직 중 2달만 썼으니 10달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출산 직후’도 아니고 복직한 후 남은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요청을 쉽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안 쓰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속 회사에 다닐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출산 후 몸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로 복직해, 대중교통이 끊기는 심야까지 야근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젖 말리고 복직한 지 아직 네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속 부장 자리에 찾아가 “저 육아휴직 쓰려고요” 어렵게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