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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May 24. 2020

직장인은 공감할 업무 단톡방

앞으로 '안읽씹' 못하게 되면 어쩌지?

카카오톡이 업데이트되면서 '접속 중'이 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뉴스로 나온 건 아니고 각종 커뮤니티에 도는 말이라 실제로 이뤄질 일인지, 소문인지는 모르겠다. 이제부터 '안읽씹( 읽은 상태로 두기)' 못한다고 걱정들 하던데, 근무환경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같다. '급한  먼저 하느라 카톡 확인을 미처 못했어요'라는 말을   테니.


카톡 전에는 MSN, 네이트온 정도가 있었는데 내가 사회 초년생이었던 2009-2010년엔 회사원들이 그 둘을 같이 쓰다가 한 2012년 정도부터 네이트온을 썼던 거 같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끼리 내부 커뮤니케이션용으로 쓰고, 클라이언트와 네이트온을 오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PR회사 특성상 클라이언트 담당자와 아주 긴밀하게 일함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 하루 종일 업무상 힘들게 하던 클라이언트가 있었는데(지금은 개인적으로 만날 정도로 친해졌지만, 당시엔 내 스트레스의 9할이었던) 그 담당자도 내게 네이트온 아이디를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당시엔 1g의 매너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회사가 보안 때문에 개인 메신저 설치가 안돼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육아휴직  2017 연초에 회사에 복직했다. 회사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클라이언트와의 업무 모두 ‘단톡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충격이었다. 내게 카카오톡은 개인적인 메신저 같은 느낌이라 이렇게 업무용으로 활발히 쓰일 거라 생각지 못했었다. 육아 휴직 전에도 회사 PC에 카톡을 깔아 두긴 했지만, 동료들끼리 '점심 뭐 먹을래?' 묻는 정도였지 업무의 메인 채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PC카톡을 쓰는 게 대세가 되고 나니, 카톡이 사내 인트라넷 정도는 된 기분이었다.


복직 첫날 이 방, 저 방에 소환됐다. 담당하는 클라이언트사는 하나인데,  카톡방 하나는 '내부 담당자 방(우리 회사 팀장, 나, 후배 2명이 있는 방)', 그리고 '클라이언트 방 1(우리 회사 팀장, 나, 클라이언트 담당자들이 있는 방)',  '클라이언트 방 2(클라이언트 방 1과 구성원이 동일하나, 클라이언트의 실무자만 있고 상급자는 없는 방), '이벤트 방(당시 브랜드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 이벤트 에이전시에 의뢰했다. 팀장과 나, 이벤트 에이전시 담당자가 있는 방)' 등등.

 

여태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사적인 메신저로 클라이언트와 연결된 적이 없었는데, 하루 만에 여러 개의 카톡방이 생기니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이방 저 방 계속 불이 깜빡이고, 채팅방 구성원이 겹치는 경우도 있으니, 실수할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예를 들어 회사 수익이 노출된 예산안 같은 예민한 이슈를 다른 방에 실수하면 큰일 나고, 내부적으로 논의해야 할 내용이 클라이언트 방에 가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겹치기 때문에 의외로 실수하기 쉽다. 그리고 가장 피곤했던 점은 '나와 상관없는 일'도 계속 카톡방에 울리기 때문에 그걸 다 확인하고 있기도 피곤하고, 무시하자니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칠까 봐 불안했다.


당시 내 사수인 팀장님과 편히 지냈던 편이라 '카톡방은 꼭 필요한 경우만 만들면 안 될까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내가 육아 휴직한 사이 바뀐 업무 트렌드인데 적응하지 못한 것일까 봐 말을 아꼈다.


퇴사하고 나서야 그 많던 단톡방을 정리했다. 담당했던 클라이언트가 하나일 뿐인데, 방이 15개가 훌쩍 넘었다. 예를 들어 우리 팀을 일주일 동안 도와주기로 한 인턴이 있으면 우리 방에 인턴을 초대했다가 일정이 끝나면 나가게 하는 식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 팀과 인턴을 초대한 방을 하나 추가로 만드는 식으로 우후죽순 생성되니 문제였다. 구성원이 동일한데 카톡방이 2개인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는 이 방에서 이야기했다가 저 방에서 이야기했다가 하다 보니, 업무 히스토리 정리도 안됐다.


이건 단톡방을 만드는 주체(대개는 팀장)의 스타일에 따라서도 많이 다른 거 같다. 카톡으로 업무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면 단톡방을 안 만들고, 단톡방 많은 걸 싫어하는 성격이면 프로젝트가 끝나는 즉시 카톡방을 없애는 등 하기 때문이다.

 


PR회사는 클라이언트 연간 계약을 한 후, 매월 대행fee를 받는다. 클라이언트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본인들 회사 홍보를 맡아주는 팀을 PR전문가라 생각하며 존중하는 사람, 반대로 '우리 회사에서 돈 주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며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경우다.


후자일수록 본인도 정리 안된 상태에서 카카오톡으로 두서없이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어 '메일로 다시 한번 정리해주시겠어요?'라고 하면 그제야 메일을 보냈다.


회사를 관둔 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더 다양한 회사를 만나게 됐다. 회사 다닐 때는 대기업과만 일했던 반면, 퇴사 후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은 작은 회사도 있었다. 작은 회사일수록 메일보다는 카톡으로 일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또한, 예산이나 리포트 같은 중요한 자료도 메일로 남기지 않고,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카카오톡으로 주절주절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거나 전화해서 두서없이 늘어놓으면 '메일로 한 번 정리해서 보내주시겠어요?'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메일을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헷갈릴 때가 있다. 업무 내용을 잘 정리 못하는 사람일수록 카톡으로 두서없이 늘어놓는다는 걸 알게 됐다.


10년 전을 돌이켜보면 메일 보낸 후, 급한 일일 때만 '방금 메일 드렸는데, 보시고 회신 달라'라고 전화했었다.

전화를 한다는 자체가 어느 정도 부담스러운 일이니 '꼭 필요한 경우'에만 했다. 하지만 카톡은 부담이 없으니 급하지 않은 이슈에도 '메일 드렸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메시지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피곤하다. 과잉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적당히 ‘안읽씹하기도 했는데, '접속 ' 뜬다면 너무나도 피곤할  같다.


'접속 중' 메시지가 뜬다는 소문에 대해 카카오톡에서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현재 제공 중인 기능이 아니며 추후 업데이트될 내용은 확인 및 안내가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린다"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


사실 카톡이 생기고 나서 업무상 편리한 점도 정말 많다. 하지만 '활동 중' 같은 피곤한 일은 부디 안 생기면 좋겠다.


그나저나 '퇴근 후 카톡 금지'와 같은 카카오톡 관련 사내 가이드라인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카카오톡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회사 들어가면 '메일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것처럼 '카카오톡 커뮤니케이션'도 배우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업무 카톡 좋은 사례]

A - '안녕하세요. OOO건과 관련해 논의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방금 논의할 내용에 대해서 메일 드렸데요, 읽어보신 후 통화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언제가 통화 편하신지요?

B - 네, 지금 메일 확인 중입니다. 20분 후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업무 카톡 나쁜 사례]

A - 안녕하세요.

B - 네 안녕하세요, 대리님

A - 논의 드릴 게 있어서요

B - 어떤 건가요?

A - 일단 지금 메일을 드렸어요

B - 네 읽고 있습니다.

A - 메일 읽으신 후 통화로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B - 알겠습니다. 언제 통화할까요?

A - 저는 다 괜찮아요. 언제가 편하세요?

B - 그럼 20분 후 전화드리겠습니다.


같은 내용인데, 전자는 깔끔하지만 후자는 너무나 피곤하다. 하지만 충격적 이게도, 후자 같은 경우가 꽤 있다.

1분이면 전달할 내용을 핑퐁 하느라 수십 분이 걸리기도 한다.


메일 커뮤니케이션이 OJT(on-the-job training) 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처럼 카카오톡 커뮤니케이션도 추가되는 말이 정말로 올 것만 같다.

카톡 업무 단톡방은 정말 양날의 검이다. 정말 편하지만, 잘 못 사용하면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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