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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Jun 22. 2020

미스터트롯과 글쓰기

살면서 꾸준히 이어온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가 책 읽기다. 그리고 유일하게 '보상 없어도 즐겁게 하는 일'이 글쓰기다.


늘 인풋 대비 아웃풋을 생각하며 사는 편이고, 시간 대비 돈 안 되는 일은 안 하는 편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예외다. 일도 하고 애도 키우고, 나름 바쁜 와중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TV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 집에서 지내던 중  '미스터트롯'을 보면서 푹 빠지게 됐다.

미스터트롯엔 지원자가 1만 5천 명 이상이었고, 그중 101명이 사전 오디션을 거쳐 예심에 올랐다. 지원자 중에는 무명가수도 많았고,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꾸준히 가수의 꿈을 놓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1타 수학강사부터 삼성전자 과장, 담배공장 생산직 사원, 엄마의 주먹밥집을 돕는 사람, 라이브 카페 아르바이트생,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생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도전했다.

회사 회식이나 송년회 때면 나한테 노래시킬까  전전긍긍했던 나로선 남들 앞에 서서 노래 부르는 일을 저토록 갈망하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다 문득 글 쓰는 내 모습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 역시 설령 돈이 안되더라도 인생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노래일 테니. 지금은 유명 채널이 된 그들의 유튜브를 보면 무명시절부터 올린 영상이 쭉 있는데, 인상적인 건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찍어 올린 거였다. 청중은 없지만 노래방에서 홀로 노래 부르며 화면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도 한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꾸준히 글을 써서 발행하는 내 모습과 겹친다.


글 쓴 후 DAUM 메인에 가거나 브런치 메인화면에 노출되면 뿌듯했던 나처럼 그들 역시 무명시절 혼자 노래방에서 찍은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높거나 댓글이 달리면 기뻐하지 않았을까?


진과 선을 차지한 임영웅과 영탁은 무명가수였다가 인생역전이 됐고,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던 이찬원은 미를 차지하며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밖에도 진선미엔 못 들었어도 미스터트롯을 통해 이름을 알려 앨범을 내기도 하고 많은 팬이 생기게 됐다. 난 그들처럼 '글 써서 인생역전' 될 거 같진 않지만, 살면서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취미 중 하나다.


글 쓸 때마다 '발행' 버튼 누르기 전에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제목을 조금 더 임팩트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흐름은 자연스러운가? 첫 문장이 괜찮은가? 등. 구독자 250명 남짓일 뿐인데 뭐 이렇게까지 고민하나 싶다가 미스터트롯 참가자 인터뷰를 보다가 깨달음이 하나 왔다.


미스터트롯에서 이찬원이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다가 나와서 미를 차지했길래 타고난 재능은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노래'라는 특성상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이 9할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참가자가 이찬원에 대해 말하면서 경연 중 부른 <울지마>라는 노래의 첫 소절 '울지마~ 울긴 왜 울어'를 어떻게 시작할까 엄청나게 고민하며 '후울~', '우훌~', '우후훌'만 대기실에서 몇 시간 연습해 '울지마' 세 글자를 다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타고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연습을 연마해 선보이는 거구나.




첫 문장을 고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몰랑'하며 발행 버튼을 누르던 날들이 생각났다. <울지마> 첫 소절을 위해  '후울~', '우훌~', '우후훌'만 수백 번 연습했다는 이찬원만큼은 못하겠지만, 일상에서 순수하게 이어가는 취미를 더 만족스럽게 즐기기 위해 꾸준히 고민하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초에도 '돈 안 되는 글을 왜 쓸까?'라는 고민을 하고 글을 썼었다. 그때는 '콘텐츠 소비자'가 아닌 '콘텐츠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때의 생각도 맞지만 '그냥 좋아서'인 거 같다.

https://brunch.co.kr/@ksdy/24



돈 안 되는 일은 가급적 안 하고, 특히 프리랜서 전향 이후엔 무슨 일을 할 때면 시간 대비 페이부터 고려하는 나로선 글쓰기에 한없이 관대한 내가 신기하다. 기업에서 '돈 받고 쓰는 글'도 종종 있지만 개인적인 글을 쓸 때처럼 마음 가볍고 즐겁진 않다(당연하다.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 있고, 수정 요청이 오면 그에 맞춰 변경해야 하는 등 백프로 내 마음대로 쓸 수는 없으니).


좋은 글 읽기와 글쓰기. 인생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가치다.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이 경연 방송이라는 계기를 통해 '많이 플레이되는 노래'를 부르게 된 것처럼 나 역시 어떤 계기를 통해 '많이 읽히는 글'을 쓴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순수한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다.




* 사진출처 - 유튜브 미스터트롯 공식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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