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실리아 Jun 29. 2020

롱런하는 직업인, 정답이 있을까

답은 내가 정하기

4년 전부터 친한 언니와 만날 때마다 '롱런하는 직업인'에 대해 종종 이야기 나누곤 했다. 외국계와 국내 여러 대기업을 거쳐 지금도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언니는 "내가 지금 연봉 많이 받고 있다고는 해도, 회사 나가서 내 이름으로 백만 원 버는 게 지금보다 더 어려울 거 같아"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후 우리는 세컨잡 만들기에 대해 오랫동안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와야 하는 시점이 되면 무얼 해야 할까 함께 이야기 나누곤 했었다.


우리가 오랜 기간 고민했던 이 주제로 한 책방에서 강연이 열리길래 언니한테 제안해 같이 들었다. 듣고 나오는 길에  생각은 '차라리 이 시간에 언니랑 대화를 나누든 글을 쓰든 할걸'이다. 크게 소득 없는 시간이었다.


이 강연자에게 대학생 때 강연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어느 정도 인상 깊었기 때문에 10년 이상 지난 지금 들으면 또 다른 영감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니 솔직히 저 정도는 나도 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평생직장이 없는 요즘, 누구나 인생 2막을 이야기한다. 그런 인생 2막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또 하나의 직업이 된 느낌이다. 수년 전부터 들리는 '퍼스널 브랜딩을 해라;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라', '직장을 다니며 사이드잡을 만들어라'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그렇게 외치는 일이 직업 중 하나인 셈이다.


그런 강연을 들으며 새로운 영감을 받고 실천 의지가 생기는 사람도 있을 순 있다.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니까.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이런 거 듣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내 생각을 정리해 글이나 한 편 더 쓰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제 그나마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아젠다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그것들은 언니와 내가 만날 때마다 서로 이야기했던 부분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둘이 카페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며 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거나 각자 글을 써서 바꿔 읽어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돌아오는 길에 언니는 '저 강연자의 퇴사 후 플랜에 우리가 시간과 돈을 쓴 기분'이라고 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엄마로만 살지 말고 나로 살자'며 경력 단절 여성들을 북돋우는 프로그램이나 북토크, 강연 등이 많이 보인다. 이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의문을 가진 적이 많았다. 경력 단절됐던 여성이 다시 사회로 나가야 된다며 외치는데, 그걸 외치는 사람은 그게 직업인 거다. 다시 사회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돈과 시간으로 본인의 직업을 만드는 셈이다.



십여 년 전, 일로 만났던 한 인플루언서가 있었다. 그때는 인플루언서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흔히 사용될 때가 아니라 '파워블로거'로 불렸는데, 네이버 인증을 받은 블로거는 소수라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그분은 육아 파워블로거로 다양한 매체에 기고도 하고, 책도 내면서 육아맘 사이에서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녀 둘을 키우느라 '직장 경력 단절' 상태라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종종 남겼고, 경력 단절하고자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공유했었다. 지지 기반이 있으니 그걸 공유하는 자체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분은 자신의 글을 구독하는 사람도 수만 명이나 되고, 설득력 있게 말도 잘하는 편이니 경력단절 엄마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가자'라는 취지의 강연을 하는 일을 해볼까 고민했었다(그분을 멘토처럼 삼는 분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강연은 프로그램화했다면 꽤 많은 수입이 될 수도 있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내 그 아이디어는 그만두고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그분이 강사의 길을 가지 않고 다른 사업을 전개하면서 했던 말이 기억 남는다. '정작 내가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의 경력 단절 돌파를 이야기하는 게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해서 인상 깊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사교육이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직장인에게 다가온 느낌이다. 요즘 중고등학교 인터넷 강의는 과목 수업 외에도 '동기 부여' 수업 같은 게 많다고 하던데, 직장인들의 강의 또한 어떤 의미에선 동기 부여다. 하지만 굳이 '이 나이 먹고서' 동기부여를 돈 주고 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돈이 아깝고, 돈보다도 시간이 아깝다.


같은 강연자에게 수년 전 들었던 강의가 그때는 좋았지만, 어제는 별로였던 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서일까? 그렇진 않을 거다. 그 사이 나도 사회 경험이 생겼고, 또 여러 경험을 통해 쌓아 온 나만의 축적된 시간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 대학생 때는 특정 업계의 전문가가 그저 대단해 보였지만, 지금은 여러 겹의 이면을 생각하게 되는 등 그때처럼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롱런하는 직업인이자 일상을 꾸려가는 나로 살면서 꾸준히 인풋을 들이고 아웃풋을 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고민을 나누며 '느슨한 연대'를 하는 언니(이 날 강연 함께 들었던 언니) 너무나 소중하다. 정답 없는 주제에 대해 누군가에게 강연 듣는 것보다는  생각을 말하고 상대의 의견을 들으며 새로운 발상을 해나가는   유익한  같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이 언니와 함께 공모전에 참여하기로 하며 시작했었다. 서로 데드라인에 맞춰 글을 교환하며 피드백을 주곤 했었는데 서로에게 동력이 되어주는 한편, ‘따로 또 같이’ 무언가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곧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당일 여행이라 기껏해야 대여섯 시간 함께 하는 게 전부일 테지만, 산책하며 나누는 이야기가 일상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서로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것들을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시간은 강연 듣는 시간보다 훨씬 소중할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강연 듣고 난 후의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스터트롯과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