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32만 명이 봤다
새벽에 업무 마무리하고 난 후, 잠이 오지 않아 브런치에 글을 한 편 쓰고 잠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나니 엄청난 조회수와 함께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상황인데 25만 명 이상이 봤고, 주말 지나니 32만 명 넘는 사람이 내 글을 읽었다.
글 하나에 32만 뷰라니.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많이 읽은 것에 한 번 놀랐고, 몇몇 날 선 댓글들에 두 번 놀랐다. (좋은 댓글이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순간 멘탈이 흔들린다)
이번 글에 대한 반응은 여러 생각을 해볼 계기가 됐다. (관련 글: 카톡에 손자 사진을 왜 올려?)
내 의도와는 달리, 지엽적인 표현을 문제 삼아 나를 추궁하는 듯한 댓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적극 해명하진 않았다.
최근에 읽은 이슬아 작가 <부지런한 사랑>의 '해명하지 않을 용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발송한 글에 대해 해명하고 싶을 때마다 나의 스승 '어딘'을 생각한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나는 어딘의 글방에서 글을 썼다. 다른 글쓰기 모임처럼 그곳에서도 합평이란 걸 했다. 어딘과 제자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과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우리들의 글에서는 언제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다. 합평 시간이 오면 서로 그걸 놓치지 않고 날카롭게 짚었다.
어떤 글쓴이는 합평자의 말을 끊고 입을 열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원래 전하고자 했던 바는...." 그러면 스승은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구구절절 해명을 늘어놓던 글쓴이는 어느 순간 말을 아꼈다. 말이 아니라 글로써 진작 잘 드러내야 했던 이야기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곳이 아니라 글쓰기 모임이니까.
해명을 위한 발언권을 충분히 내어주지 않는 건 적어도 이 곳에선 글에 대한 존중이었다. 서로를 판단하는 근거가 글이기 때문이다. 글 이외의 정보를 함부로 추측해서 피드백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적어도 글방이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글로, 이야기로, 문장으로 서로를 만나도록 훈련했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 새롭게 애쓸 각오를 하면 해명의 말을 꾹 참을 용기가 조금 생긴다.
이슬아 작가 <부지런한 사랑> 中
사회적 문제를 첨예하게 지적해야 하는 글이 아닌 이상, 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딜레마가 있다. 이번 글만 봐도 그렇다.
이번 글은 엄마랑 수다 떨던 중에 "엄마 친구가 손주 사진 카톡으로 해놓는 사람 보면 신기하대"라는 말을 들은 걸로 시작됐다. 저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신선했다. 그래서 그걸 메모장에 저장해두었다가 글로 썼다.
저 말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목을 지었기 때문에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한다. (제목 : 카톡에 손자 사진을 왜 올려?)
다만 난 '카톡에 손주 사진 올리는 조부모 = 자기 인생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위처럼 오해한 분들이 댓글을 남기자 어떤 분께서 '본인 인생을 사는 엄마의 모습을 묘사하는 연장선상'이라며,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인 이야기를 쓰는 건데 천라만상 다 고려해서 글 써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라고 하셨다. 내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이런 점이 평소 글 쓸 때 내 딜레마였던 건 사실이다.
이번 글을 예로 들자면 평소 난 ‘자기 카톡에 프로필 사진 뭘 올리든 본인 마음'이라는 생각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 내용이 사족 같았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기분 나쁠 걸 염려한다면 '카톡 프사야 자기 마음이지만' 혹은 ‘손주 사진을 카톡으로 했더라도 본인 인생 즐기는 사람이 많지만’ 같은 표현을 ‘까방권'으로 곳곳에 넣어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면 글이 산으로 가기 쉽다.
반면 사족이라고 생각해서 생략하면 이번처럼 누군가에게 불편한 글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쓰고 난 후 독자가 판단하는 근거는 ‘글’이다. 오해가 있다면 글에 내 의도를 온전하게 녹여내지 못한 책임도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만 이슬아 작가 말대로 독자 역시 글 이외의 정보를 추측해서 피드백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가끔 언쟁이 오가는 댓글을 보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작가가 개인적인 생각 쓰는 건데 왜 이리 불편해하냐 VS 오픈된 플랫폼에 글을 쓴 이상 개인적인 글이 아니다
둘 다 맞는 말 같다.
보통 유명 작가가 아닌 이상 플랫폼에 글을 올려도 엄청난 확산을 가질 거라 기대를 하진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는 전자(자유롭게 쓰는 개인적인 플랫폼)다.
하지만 브런치팀에 의해 포털 DAUM 메인화면에 노출되거나 카카오톡 #에 노출되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된다. 이 경우엔 후자(오픈된 플랫폼에 쓴 개인적이지 않은 글)가 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공론장에 화두를 던진 셈이 되기도 한다.
브런치 작가는 글을 쓸 때 내 글이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게 될지 알 수 없다. 메인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미미한 조회수를 기록할 테고, 반대로 DAUM이나 카카오톡#에 노출될 경우 엄청난 조회수가 기록되기 때문이다.
이번 내 글만 봐도 며칠 사이에 조회수가 무려 32만 이상이다. 카톡으로 공유된 수도 850회가 넘었다. 아주 사적인 메신저인 카카오톡에 내 글의 링크가 돌아다닌다는 건 애초에 카카오톡#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렇다면 난 어떤 스탠스로 글을 써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그저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플랫폼이지만 채널 메인에 갈 걸 염두해 공적인 글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메인에 오른 글들을 보면 ‘일기는 일기장에’ 라는 댓글이 있는 걸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메인에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 글에 다수의 독자를 의식해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게 브런치는 앞으로도 '아주 개인적인 글'을 남기는 채널이 될 거 같다.
비슷한 마음으로 썼던 글 : 회사 험담한 걸 10만 명이 봤다
막상 글을 썼는데 그 어디에도 노출되지 않고 묻히면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고,
반대로 여기저기 빵빵 잭팟이 터져 조회수가 급등하면 당혹스러운 마음이 드는 게 참 아이러니다.
브런치에 쓴 글이 10만 뷰, 30만 뷰를 기록해도 어떤 특별한 기회가 오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독자에겐 1회성으로 소모되는 휘발성 콘텐츠 일 뿐이다.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브런치는 개인적인 공간일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