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실리아 Oct 05. 2020

회사 험담한걸 10만 명이 봤다

잭팟이 터졌지만 찝찝한 마음

회사 험담한걸 10만 명이 봤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래전 관둔 회사 이야기를 11만 명 가까이 봤다.


브런치 알림 설정을 해두지 않아서 조회수가 이렇게 폭발했는지 몰랐다가 앱을 켜고 깜짝 놀랐다.

이전에도 자주 Daum 메인에 걸리고 카카오톡#에 노출됐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급등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1만이 넘고, 3만, 그리고 5만이 되자 좋은 게 아니라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10만을 훌쩍 넘었다.



오픈된 플랫폼에 글을 올리면서도 조회수가 너무 급증하면 두려운 아이러니한 마음.

많이 읽히는 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애매하게 아는 사람은 안 읽었으면 좋겠다는 이중적 마음.


아마 익명성에 기대 글을 쓰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글 쓸 때마다 대부분 Daum 메인 등에 노출돼서 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도 봤을 거 같다.



특정 글이 11만 뷰를 앞둘 정도로 조회수가 급등하자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말이 11만이지 헤아려보면 정말 엄청난 숫자 아닌가. 걱정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 글에 등장하는 회사 대표가 볼까 봐?

- 가볍게 쓴 글이 너무 큰 파급력을 갖게 돼서?

- 내가 프로불편러처럼 보일까 봐?


 

이번 글 <점심시간에 밥해먹는 회사>의 특이한 점은 카카오톡으로 많이 공유됐다는 점이다.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공유한 거 아닐까 싶다. 통계를 보니 130회 이상이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찝찝하고 불안한 마음이 항상 있었다. 특히나 조회수가 폭발하면 더 그랬다. 그런데 박상영 작가 소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책을 읽으니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유명 작가도 느끼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유명 작가가 된 그 역시 사적으로 아는 사람, 특히 회사 사람들이 본인이 글을 쓴다는 걸 아는 게 극도로 싫었다고 한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아는 작가 친구는 내게 그런 마음과 극복하면서 쓰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꼭 그런 마음을 극복해야만 프로인 것도 아니니 그런 생각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난 프로도 아닌 데다가 이게 밥벌이도 아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지.


최근 들은 팟캐스트에서 '글 쓰는 여자는 지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귀에 쏙 들어왔다. 여자라는 말을 빼고 사람을 넣어도 맞는 말이다. '글 쓰는 사람은 지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내가 겪었던 부조리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글 쓰기 전엔 '내가 프로불편러인가?', '내가 유난스럽거나 예민한가?'라고 자기 검열했다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당시 내게 주어진 상황이 불합리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 글들이 파급력을 갖게 되면서 내가 겪었던 부조리함을 겪는 다른 누군가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퇴직금 못 받을뻔한 사건을 다룬 글엔 퇴직금 계산하는 법을 넣은 것도, 점심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던 글엔 휴게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을 짤막하게나마 넣은 것도 그런 이유다. 내 글이 그저 옛 회사의 험담이나 불평불만 정도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가족같은 회사’라고 강조했지만 난 ‘콩알같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어야 할 거 같은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강요된다고 느꼈고, 어떤 때에는 그 회사가 밴댕이 같이 아주 작고 쪼잔한 콩알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며, 단지 물리적으로만 작은 회사가 아니라 모든 게 콩알같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원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할때 ‘가족’이라는 정에 기대지만, 직원의 의무를 요구할 땐 철저히 ‘회사’로 돌변하곤 하는 ‘가족같은 회사’. 그 회사를 다녔던 초년생 시절은 내게 피해의식 비슷한 감정으로 남아있다.


글을 쓰면서 그 감정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 드는 한편, 조회수가 10만을 훌쩍 넘겨버리니 앞으로 어떤 스탠스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도 된다.


너무 검열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써야겠다. 글쓰는 사람은 지지 않을테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