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빈 사무실 문을 열고, 나 홀로 불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한두 시간을 홀로 우두커니 있기도 했다. 갓 창업한 회사의 으쌰으쌰한 기운보다는 슬렁슬렁 회사생활하고 싶은 사람들의 인생 2막에 단추 잘못 낀 신입사원인 내가 앉아있는 거 같았다.
아홉시에 출근하면 혼자 있는 날이 많았고, 점심시간까지 아무도 없어 김밥을 사 와서 우두커니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10분쯤 늦은 어느 날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을 즈음 휴대폰으로 이사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길래 회사 앞이라고 하니 알겠다고 하고 끊는데 수화기 넘어 냉기가 느껴진다.
출근하니 역시나 아무도 없었고, 내 자리 내선 전화기엔 이사의 휴대폰 번호가 부재중으로 찍혀있었다.
한참 후 출근한 이사는 내게 '사원이 이렇게 지각하는 건 태도가 좋지 못한 것'이라고 째랑째랑하게 경고한다. 매일 기본 한 시간은 지각하는 본인도 민망하긴 한지, 그 말 끝에 '억울하면 너도 빨리 14년차 되든지'라고 덧붙인다.
그 날 지각한 내 잘못도 있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각하는 상사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납득되지 않았고, '억울하면 너도 14년차 되라'는 말도 안 되는 첨언은 더 이해 안됐다.
출근은 늦게 하고, 점심시간엔 운동하고 온다며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들어와선 뒤늦게 점심을 먹고, 퇴근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슬쩍 집에 가는 상사를 보면서 이 회사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회사를 관두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던 첫날, 출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갔는데 대부분의 직원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원들에게만 근태를 강조하고 정작 본인들은 지각하는 회사만 다니다가 이렇게 모든 사람이 출근을 준수하는 '당연한 일'을 보고 난 아주 놀랐다.
아침에 팀장, 부장님들이 지각할까 봐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도 내게는 아주 생경한 모습이었다. 어느 회사든 저연차 사원들이나 시간 맞춰 출근하려 동동 거리는 건 줄 알았고, 팀장 이상은 당연히 지각해도 되는 건지 알았다. 이런 정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이상했다. "억울하면 너도 빨리 14년차 되든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스라이팅 된 셈이다.
빈 사무실에 앉아서 회사 아카이빙 폴더라도 보는 것이 신입의 태도라고 강조했지만, 신입에게 책임감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상사의 태도 아닌가.
그 기억 때문인지, 일정 직급 이상 되고 나서 후배들한테 작은 지적이라도 해야 할 때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작은 회사에서 배운 교훈이라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