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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Sep 15. 2020

신입은 돈 따지면 안 되나요?

너나 나나 돈 벌러 일하는데


인턴십 하던 회사에서 기간이 종료되고 취준생으로 지내던 중이었다. 인턴 했던 회사의 상사가 독립했다는 연락을 하며 합류 의사를 물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단연코 노. 전혀 갈 이유가 없었다. 지금 막 시작하는 회사가 순조로울 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급여나 각종 복지가 좋은 조건도 아니고, 업력 있는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그 상사는 나에게 "지금 막 시작하는 회사라 인생의 기회일 수 있어. 회사가 잘 되면 너는 창립멤버가 되는 거야. 그때 과실을 나눠먹자"고 했다.


졸업예정자로 사회경험이 없던 때라 그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고, 나는 출근하기로 되어있던 회사를 포기하고 그 회사로 갔다. 나중에 회사가 잘되면 너에게 벤츠를 사주겠느니 아우디를 사주겠느니 아파트를 사주겠느니 하는 말과 함께  직장생활은 시작됐다.


당시는 한창 비정규직 급여 평균이 88만 원이라는 뉴스가 나오며, ‘88만 원 세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던 때였다. 인턴 기간 내 월급은 88만 원을 밑돌았지만 상관없었다. 이건 '인턴 급여'라 3개월만 이 월급을 받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3개월 후에는 정직원이 되니 정상적인 급여를 받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나고 정직원 전환 시기가 왔다.

대표 - "인턴기간이 끝났으니 이제 수습 기간이네"

    - "인턴이 수습 아니에요? 인턴 3개월을 했는데, 수습을 또 해야 하나요?"

대표 - "인턴은 인턴이고, 수습은 별 개지. 수습사원은 3개월이야"

 - "그럼 수습 기간 동안 월급은 100% 나오나요?"

대표 - "수습기간은 월급의 80%야. 다른 회사는 인턴 3개월에 수습 6개월인데, 우리는 수습 3개월만 할 거야"


내게 세상 물정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선심쓰듯 말했지만, 업계에서 일하던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인턴과 수습을 9개월 하는 케이스는 없었다.

당시는 한창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가 뉴스에 나오며 퇴직금 포함이라는 건 꼼수라는 게 지적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퇴직금에 연봉 포함이면 연봉의 1/13이 월급이었고, 퇴직금이 별도라면 1/12가 월급이었다.


 - "그럼 제 월급은 연봉에서 12로 나누면 될까요, 13으로 나누면 될까요?"

(순간 대표의 눈이 흔들렸다. 13으로 나누려다가 들킨듯한 표정이었다가 급 인자한 표정으로 바뀜)

대표 - "음.. 12로 나눠서 줄 거야. 원래 다른 회사는 13으로 나누는데, 우리 회사는 12로 나누는 거야"


그렇게 퇴직금 별도로 연봉 협상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다른 직원은 13으로 나눠서 주고 있었다는 거다. 음흉함을 먼저 간파하고 확인한 나만 퇴직금 별도였다.


대표는 저연차 직급은 돈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걸 자주 강조했다.

"나는 주니어 시절에 너무 신기했어. 이렇게 재밌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잖아"라며 오버스럽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진짜 저렇게 생각하는걸까,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릴까?' 궁금했다.


사대보험을 들어주지 않고선 "회사 사정상 사대보험이 부담스럽거든. 만약 네가 원한다면 들어줄게.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안들을 거야"라며 마치 중국집 가서 '맘껏 시켜. 나는 짜장면' 같은 소리를 했다.

거기서 '저는 탕수육이요’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사대보험 없이 다니다가 이듬해 직원이 늘어나면서 다 같이 사대보험을 가입했다.


사대보험을 가입하면서 그제야 근로계약서를 썼다. 그런데 내 입사일을 사대보험 가입일로 기재하고선 서명을 요구했다. 그럼 난 1년이 지나도 계약서상 1년이 안됐으니 연봉협상을 못하는 셈. 그걸 따질까 하다가 어차피 이런저런 핑계로 연봉협상을 안 할 거 같아서 그냥 이 회사를 빨리 탈출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1년 O개월이 되었을 때 퇴사 의사를 밝혔다. 퇴사 후 겸사겸사 미뤄뒀던 병원 치료를 할 예정이라 혹시 실업급여 신청이 가능한지 물었다.

대표가 "안 그래도 내가 그거 먼저 챙기려고 했었어"라고 하는데, 너무 흔쾌히 오케이하는 게 불안했다. 아니나다를까 "근데 사대보험 가입한지 1년이 안돼서 퇴직금은 지급이 힘들겠다"라고 했다.


  - "사대보험이랑 상관없이 1년 이상 임금 받은 기록이 있으면 퇴직금 받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표 - "아닐 텐데.. 근데 그렇다 하더라도 너 인턴이랑 수습 기간을 제외하면 재직 기간이 1년 미만이야"

 - "정직원 상관없이 인턴이나 수습 기간 포함해서 1년 넘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표 - "음.. 그러니? 내가 세무사한테 확인할게"


퇴직금 지급해야 한다는 걸 분명 대표도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거 같았다.

대표 - "세무사한테 물어보니 네 말이 맞더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네"

 - "네. 졸업반 때 근로기준법 배우면서 같이 배워서 알고 있었어요" (뻥이었다. 내가 알아봤다 하면 주니어가 돈 밝히네 어쩌네 이상한 프레임을 씌울 게 뻔하니 학교에서 배운 척했다)

대표 - "그렇구나. 그럼 퇴직금 대신 실업급여를 해주면 어떨까?"

 - "그럼 전 실업급여를 안받고 퇴직금을 받을게요. 제가 일했던 대가니까 퇴직금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대표 - "그럼 실업급여는 내가 줄 수가 없는데.."

 - "네. 괜찮아요. 퇴직금은 권리인데 실업급여는 아니니까요"


당연한 거 아닌가.

학교 갓 졸업하고 일하다 퇴사하는 신입사원한테 저런 말도 안 되는 딜을 하다니. 게다가 실업급여는 회사 돈으로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생색을..


"네가 순둥이처럼 보여도 이런 걸 잘 따지니까"라며, 퇴직금을 잘 '챙겨'주겠다고 했다.

이건 또 뭔 소리?

그 이후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돈 밝힌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어차피 회사야 돈 벌러 다니는거라 회사에선 월급 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동기들끼리 인센이 많이 들어왔네 적게 들어왔네 혹은 연봉 인상이 많이 됐네 적게 됐네 이야기는 했어도,  회사 측에서도 '돈 받는 거'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사주시겠다던 벤츠랑 아우디 안 사줘도 되니까 줘야 할 돈이라도 잘 챙겨주세요.


프리랜서가 되기 전, 4곳의 회사에 다녔다.

당연히 완벽한 회사는 없지만 그중 좋은 기억도 많고 ‘그 회사 이런 점은 좋았는데'라는 점이 최소 한두 가지는 있다.

그런데 첫 회사는 그런 점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굳이 꼽자면 '내 권리는 내가 지켜야 한다'라고 느낀 점과 '내가 보장받을 수 있는 근로기준법을 숙지하자'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는 것 정도다.



TMI : 1년 이상 주 15시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 지급 대상자

- 근속연수 1년에 대해서 30일분 평균 급여를 지급해야 함

- 1인 평균 임금 X 30일 X (재직일수 ÷ 365)

* 평균 임금: 지급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개월 동안 지급했던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 총일수로 나눈 것

*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퇴직금 계산기나 네이버 임금 계산기를 이용하면 확인할 수 있음

* 세금 때문에 실수령액과 일부 차이 있을 수 있음



가장 기본적인 월급 주는 걸 아까워했던 이 회사에선 별별 특이한 기억이 많다.

다음 편은 ‘사무실에서 밥 해먹자는 대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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