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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엘리자베스

by 황규석 Mar 21. 2025

  가 찔금 내렸다.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만나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생리가 시작할 때쯤이다. 미열이 있고 몸이 무겁다. 꾸물거렸더니 좀 늦을 것 같다. 엄마는 약속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1분도 안 돼 전화를 할 것이다. 잠시 후 전화가 올 것이다. 팔달문 로터리를 지나는데 드르르 진동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부재중 전화가 2통이나 왔었다. 동수원 IC를 빠져나가자마자 전화를 해댄 것이다. 3번째 전화가 또 왔다. 그냥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아봤자 잔소리만 들을 것이다. 수원행궁 옆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외벽에 검은 돌이 박힌 고풍스런 그곳은 전에 러브 모텔이었단다. 러브 호텔이 팔리고 병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구에 구급차가 먼지를 뒤집어쓴 구급차가 보였다. 구급차 이마에 달린 빨간불이 삐걱삐걱 힘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모처럼 손님을 모시고 왔구나. 사설 구급차는 환자들의 택시다. 특히 우울증, 정신 질환, 알코올중독 환자 아니 손님을 모시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교통수단이다. 지금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예전에는 그냥 말 그대로 구급차 보쌈을 해가도 누구 하나 눈 깜찍하지 않았다고 한다. 십년 전인가 뉴스에서는 싸이렌 소리를 내며 버스 전용차로를 급하게 달리는 구급차를 경찰차가 세워서 확인해 보니 김장배추와 무가 잔뜩 실려있었다는 뉴스도 봤었다. 도로위의 무법자의 활용은 다양하다. 한편 아픈 사람들을 싣고 다니는 안타까운 사연을 싣고 다니는 자동차다.

  

  “아저씨가 누군데 이 집에 있어요? 나가세요!” 아버지는 엄마의 소리를 3년째 듣던 날 전라도 산골짝 토굴 같은 곳에 혼자 살겠다고 통보하고 나갔다. 엄마는 얼씨구나 박수를 쳤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못지나 불면증에 시달리더니 밤낮이 바뀌었다. 또 졸피뎀을 한 주먹 털어 넣기 시작했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칼로 손목을 그었다. 나중에는 칼을 들고 식당으로 마트로 골목을 싸돌아 다녔다. “저 놈 잡아라, 불알을 잘라주마!”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왔다고 전화가 왔다. 회사를 조퇴하여 달려온 나나 남편도 경황이 없었다. 오줌을 질질 싸며 팔뚝엔 끈적한  핏물이 흥건했다. 바지엔 주먹만 한 똥자루가 말라 붙어있다 있었다.  엄마는 119 구급차 여직원에게 대들었다. "이년아, 네가 우리 서방을 후렸냐? 아니라고, 서방 간수 못한 내 잘못이라고? 오냐 그래 오늘 끝내자, 너 죽고 나 죽자!! "개새끼야! 이 놈 너도 나와라.  어디서 오입질이냐, 대가리를 잘라주마!" 그래, 오냐  내 손안에 죽어봐라.. 이리 와" 구급차 운전기사를 당신의 남편으로 보았다. 


 천의 병원으로 옮길 때는 내가 아버지의 그년 역할을 했다. "이년아, 어디서 꼬리를 치고 다녀! 그래, 맛있냐, 그리 좃대가리가 꼬쑵냐?" "이제 그만해, 엄마, 그만하라고!" "이년 봐라, 덤벼라, 오냐!" 세 번째 구급차를 불러 이곳 동수원 병원에 모시게 되었다. 이제 엄마는 혼자서 모노드라마의 배우가 되었단다. 내 엄마가 되었다가 아빠의 정부가 되었다가 원수인 아빠가 되었다. "아휴 진정하시라니까요. 네 네 제 잘못이죠. 이해합니다. 합의하시죠 “ ”뭐, 합의?" "이 개 같은 놈이 오냐오냐 하니까 누굴 핫바지로 보이지! “ "야! 네가 봤어? 봤냐고오~! 짝짜꿍을 했는지 세세세를 했는지 자빠져 끼고 잤는지 봤냐고!" 엄마는 나름 자신과 아빠와 아빠의 여자와의 성격과 목소리도 구분하면서 아카데미 주연상감 연기를 펼쳐 보였다.

     

 무과 앞에 들어섰다. 기브스를 한 다리를 절룩이며 벽에 혼자 머리를 쿵쿵 박아대는 여자애를 보았다. 짧게 밤송이처럼 머리를 깎았지만 유난스럽게 출렁이는 러닝 아래  큰 젖가슴이 누구라도 여자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급차 요원은 일상적인 듯 의사와 차분하게 접수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한 명만이 그 계집애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아마도 수차례 실려온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단골인 것 같았다. 잠시 후 하늘색 원피스 차림의  검은 선글라스 벗으며 들어오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그 애의 엄마일까 아니면 새엄마? 혹시 배다른 언니인가?


 "김정숙 씨 보호자 계세요?" "김정숙 씨 보호자 되시는 분... " 그제야 난 5층 격리병동으로 올라갔다. 인터폰을 누르려는데  CCTV를 본 야리야리한 간호사가 눈웃음치며 달려 나와 육중한 철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오세요 호호호" 다시 쿵하고 문이 닫힌다. 그때부터 나도 얼마 동안 입원 환자가 되는 순간이다. 나는 면회실로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멍한 눈빛의 여자 환자들이 짐짓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빙빙 멀리 돌면서 날 예의주시한다. 내 앞에서 윙크를 하고 지나가는 미숙 씨. 47세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었다. 외아들이 성적비관으로 투신자살해 죽자 우울증에 시달렸단다. 환청에 시달리고 고속도로 역주행을 했다는 환자다. 누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는다. 킁킁킁 냄새를 훑는다  피자와 치킨을 좋아하는 뚱뚱한 지예다.  


 그녀는 예전에 예뻤다. 18살에 대학생과 관계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화장실에 유기했다.  또 21살에 아이를 또 낳았다. 아이는 시설에 가고 아이 아빠는 모른단다. 그리고 우리 엄마. 증권회사 지점장이던 아빠의 외도. 그녀 우리 엄마 말을 옮기면  이렇다. "외동딸 키우고 살림만 잘 한 죄로다 겨우 훈장을 주니 넌 개보다 못한 놈이다! 삼복더위에 불에 끄질여 죽일 놈!" 이 폐쇄 병동의 터줏대감은 자타공인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보다 5살 많은 왕언니는 70세인데 집도 없고 아이도 없단다. 이 병원에서 청소도 하고 허드렛일도 한단다. 병원이 천국이다. 천직을 병원에서 찾은 것이다. 매일 웃고 다니니 다행이다. 

   

 면회실 중앙의 의자에 앉았다. "왔어, 이 전무, 결재서류 가져왔어?" "네 회장님, 여기.." 나는 마트 영수증을 붙인 검은 노트를 내밀었다. 엄마는 아니 회장님은 가운데 앉아 진지하게 펜을 움직이며 심각하게 노트를 넘겨본다. "10킬로 쌀 4만 5천 원, 총각 무 5천 원 , 골뱅이 1+ 1, 아이스 아메리카노 3,  누가바 3개, 오리주물럭 15,700원,  한방 생리대... 으흠... 잘하고 있네 "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무, 그리고 왜 내가  지난주 부탁한 거 어디 있나? 응? 아차, 차에 두고 내렸다. 밖에 나가니 과일 야채 노점상 리어카가 보였다. 왕 수박이 싸다. 두 개를 샀다. "아저씨, 이거 하나는 여기 원무과에 부탁해요.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 "네 회장님, 여기 있습니다." 


  는 노란 고무줄에 묶인 명함케이스  5개를 들이밀었다. 명함곽을 만지는 김 회장의 눈빛이  더 초롱초롱해졌다. 금빛 명함을 꺼내보는 김 회장  아니 우리 엄마. 눈앞에 가까이 대고 소리 내어 읽어본다. "인터내셔널그룹 회장 엘리자베스! " 다시 혼잣말을 한다. "엘리자베스!" "잘했네 , 호호호 역시 우리  이 전무가 일은 똑 부러져!" "감사합니다. “ "역시 우리 맏딸이 최고야!" 멤버 체인지다.  이제 딸이 되어야 한다.  "네, 엄마 고마워요"  "뭐..? 뭐라고 했나, 이전무! 뭐라고 엄마?" 이게 아닌데 또 변신. "아. 예, 회장님!" "다시 한 번 더 내 이름이 뭐라고?" "엘리자베스 김 회장님" "그렇지 난 엘리자베스 회장이야. 까르르르르 까르르르~" 


  마는 아니 엘리자베스는 교복을 입은 중학생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신나서 말한다. "김기사 차 준비해!" 같이 살면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눈부신 청초한 미소다. 면회실 밖 창문에 귀와 눈을 박고 서있는 환우 아니 부하직원들도 거침없이 웃어젖힌다. 면회실 밖의 지예도 배꼽을 잡고 까르르 웃었다. 손에 든 수박을 먹다가 엘리자베스 회장이 먹던 수박의  검은 수박씨 하나를 힘차게 뱉었다. 검은 씨 하나가 공중으로 힘차게 솟구쳤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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