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지금부터 당신은 한정판 그래서 스페셜

인간 '을'은 과일 '을'을 만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측은지심을 느끼게 된다

by 황규석
2021.08 모란

떨이를 보았습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고 또 생채기가 나서 정상 가격을 받을 수 없는 궤도를 이탈한 과일들입니다. 과일 중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을입니다. 역시 바로 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인간 '을'은 어떤 형태든 '을'을 볼 때면 자연스레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게 됩니다. 또 어떤 미묘한 아픔이 있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이 됩니다. 참 외롭겠다. 그 한 여름을 버티고 농약으로 몸조리하고 수확의 기쁨을 농부에게 주었는데 결국 이동과 진열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 이탈한 과일들. 또 열대의 나라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지만 인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서글픈 운명의 과일도 있네요.


매대에도 앉지 못하고 바닥에 서글프게 앉은 과일들. 참외와 사과가 같이 또 바나나와 참외 토마토가 한 바구니에 앉아있습니다. 연합군입니다. 힘없는 '을'들은 '을'끼리 뭉쳐야 합니다. 작은 사과와 큰 사과가 뭉쳤습니다. 이쁘지 않다고 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요? 외모만 이쁘고 잘 생겼다고 성격이 좋으란 법은 없습니다. 과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무릇 사람은 물론이고 과일도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저도 살아보니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첫인상이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속마음 진심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전 역으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누구 하나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므로 한정판 과일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새롭게 발견하는 의미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정말 특별한 과일들입니다. 규격에 어긋나지만 개성 있는 조합이고 거기다가 가격도 착합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스페셜한 과일을 선택하고 맛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천 원과 이천 원의 행복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죽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늘 풀이 죽고 피곤한 제 얼굴 보다도 더 당당한 모습의 과일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래요, 희망을 가지자고요. 저 땅바닥 바로 위에 있는 과일이 제게 말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당신도 힘내라고요. 지금 비록 바닥이지만 그 바닥에서 선택을 받고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요. '을'에게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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