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녀는 마주 보지 않고 일한다

by 황규석

나도 그녀도 일한다. 마주 보지 않고.

7시 카페문이 열리면 난 5분을 기다려 들어간다

네모난 키오스크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나도 졸리고 그녀도 졸린 듯 말이 없다

키오스크가 설치되기 전에는 말을 걸었는데

이제 점점 말을 걸일 도 없어진다


6822번 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는다.

머그컵 위에 알맞은 거품이 킨 크레마를

킁킁킁 냄새를 맡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2500원에 나만의 작은 작업실이 생긴 것이다.


나는 5시 반에 일어나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강남에 도착하는데 그녀는 어디에서 출발해

그 커피숍에 도착해 일을 시작하는 걸까.

뭐라도 써야 하는데 노트북에는 월드컵 영상이 돌아가고

탄핵시위 뉴스를 검색하고 하품이 나온다

그녀는 연신 울리는 앱의 배달 주문에

아침부터 분주하다 한동안 손님이 없으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만의 여유 시간을 가진다.

내가 얼마간의 여유의 시간을 거기 그 작은 카페

구석에서 갖는 것은 그녀를 알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그녀 또한 나를 알지 않아도 알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다.

그저 커피를 내리는 사람, 그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다.

공기처럼 흘러가는 스쳐 지나는 사람이다.

자신의 공간에 커피라는 존재가 있어서 필요한 사람이다.


단 한 가지

나도 그녀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남의 아래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아 그녀도 물론 커피를 좋아할 것이다.

아무 관계도 없고 상관할바가 없는 사람이지만

커피를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편해진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 아침에 마주치고

피곤한 듯 보든 말든 알아서 하품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마주 보지 않고 일하지만 같은 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크레마>라는 시를 썼다


<크레마>


너는 왜 항상 진한 갈색의
거품을 달고 다니니?
샴푸를 하고 씻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난 네가 좋단다.
너의 그 수수한 모습
꾸미지 않은 모습이 사랑스럽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아직 미완성인줄 알았어.
어라 왜 완성이 안 된걸 나에게 주지?
하고 물음표를 던졌거든.
하지만 네가 곧 맛있는 신선한
표시란걸 알게 되었어.

어떤 때 너는 뜨거운 저 검은 바다 위에
외로이 홀로 떠 있는 것 같아.
어디에도 숨지 못하고 감추지 못하는 운명.
혹시 실연을 당했을까 아니면
누굴 그리워하는 마음의 연기일까
하얀 갈색 거품 안이 네 진심은 무엇일까?

어쨌든 난 널 매일매일 보고 싶어.
매일 출근길 아침이나 어두운 밤에도
너의 그 푹신한 거품과 솔직 담백한 모습을.
널 가만히 보면서 난 위로받고
너와 뜨거운 입맞춤 하면서 사랑하며
언제나 늘 함께 하고 싶단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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