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님 댁은 압구정동의 동호대교 옆 오래된 H 아파트였다. 회장님의 아파트와 가까웠다. 아파트의 외벽은 누렇게 변색되었다. 물론 주차할 곳도 부족해 3겹 주차는 기본이었다. 저런 낡은 한강변 H 아파트가 80억에 거래가 되었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회장님의 지시로 5일째 그곳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선하게 나라를 선하게 사회를 선하게. 30년 된 부동산 개발그룹 우리 삼선그룹의 목표였다. 내가 이곳으로 출근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회장님의 지시였다. “김 기사, 이번에 우리 사업의 성패는 바로 자네의 역할에 달려있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전당해 알았지?” 반진 반질한 얼굴의 키가 작고 배가 볼록 나온 대머리 이 회장이 전달할 것은 두툼한 초록색 종이 쇼핑백이었다. 입구는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고 크지도 않았다. “회장님, 근데 요새 이런 거 받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런 걸” “어허, 자네는 잔말 말고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해” “네, 알겠습니다.” “그거 전해주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을 말아 알았지?” 알겠습니다”
회장님은 손녀에게 자신이 사는 한강뷰 아파트를 물려주려고 한다. 30년이 넘은 아파트지만 압구정 갤러리아 근처의 그 아파트는 평당 1억이 훌쩍 넘어서 75평 아파트는 85억이 넘는 가격에도 팔려는 작자가 없었다. 작년 회사의 세무감사 때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총무과 경리직원이 회계부정을 신고하고 제법 뉴스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때 뒷일을 봐주건 전담 세무사의 조카인 그 부장검사의 인맥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회장은 사업의 성공을 이야기했지만 아들 벌 되는 젊은 부장검사님에게 줄 선물은 안 보아도 뻔했다. 처음엔 회장님의 커다란 벤츠를 끌고 같이 갔다가 주차도 마땅치 않고 눈치가 보여서 포기했다. 쇼핑백 안 두툼한 종이 뭉치는 현금과 상품권일 것이다. 첫날은 초인종 소리에 아무 반응이 없었고 둘째 날은 누구 심부름으로 왔다고 하니 뭐 놓지도 말고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점심은 근처 칼국수 집에서 했다. 강남은 칼국수도 11,000원이었다. 망할 놈의 물가. “네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고향 집에서 전화가 왔다. 덜컥 겁부터 났다. “그래, 아들 뭐 해”“네 일하고 있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냥” “말해봐요, 무슨 일인데요..” “아니 보일러가 글쎄 온수가 안 나오네”“작년에 수리했잖아요..” “그러게 이상하네...” “알았어요. 다음에 집에 내려갈 때 볼게요” "그래, 고맙다. 집식구는 별일 없지?" "네 잘 있어요" "늘 운전 조심하고..." 목돈이 또 나갈 거 같다. 구두쇠 회장이 주는 기사 월급은 그대로다. 쇼핑백을 들고 나와서 골목 구석에서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 손으로 잡아보니 5만 원권이 가득 잡히는 느낌이다. 10만 원 백화점 상품권일 가능성도 많다. 상품권을 사서 직원에게 돌린다고 하고 경비처리하여 생활비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집에서 일을 거드는 이모님께 상품권을 생활비로 전달하기도 하였다.
저것 중에 한 묶음 빼도 뭐 알기나 하겠어. 그래 하나만 빼자. 한 500만 원 정도... 아냐 300만 있어도 돼 5만 원권 60장... 그래 거면 되지 뭐. 그 많은 돈에서 조금 빼간다고 죽기야 하겠어. 뭐 금액을 확인하고 전달을 하겠어 뭐 어쩌겠어. 나도 이 구두쇠 집안에서 집사로 고생했으니까. 그냥 위로금이라 생각하자. 나는 낡은 상가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고리를 걸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12년째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쉬는 날도 없이 주군을 모시느라 고생했다. 이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설거지까지 회장의 손녀딸과 손자 무등도 태우기도 했다. 아이들이 던진 장난감에 맞아 눈퉁이가 밤탱이가 되기도 했었다. 변기에 앉아 조심스레 쇼핑백 테이프를 문구칼로 잘랐다. 손가락이 후들거렸다.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금수저를 물고 아파트를 갖는다. 세상은 불공정하다. 그래서 조금 공정하게 만들려고 한다. 콩고물 흘린다고 떡이 쉬는 것은 아니니까. 조심스레 쇼핑백 배를 갈랐다. 신문지로 두툼하게 쌓은 뭉치가 보인다. 신문지를 풀었다.
엥? 나는 5만 원짜리 돈뭉치나 상품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이었다. 작은 문고판 시집이 보였다. 작가는 우리 김 회장 영감이었다. 반짝이는 대머리가 보이는 사진을 뽀샵으로 처리한 사진이 작게 들어간 시집 10권이 5권씩, 10묶음이 묶여 종이 쇼핑백 안 신문지 두루마리에 쌓여 있었다. 아니 이런 된장, 돈도 아니고 고작 이런 보지도 않은 책을 전달하다니... 아니 이걸 언제 만들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작가라는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씩 회장실에 들리더니 그분에게 대필을 했나 보다. 그런데 부장검사에게 이런 시집을 보내다니 무슨 이유인가... 그때 편지봉투가 하나 보였다. 그 봉투를 여니 특유의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회장의 특유의 자필 글씨가 툭하고 떨어졌다. 이런 젠장! 어찌 나는 지지리도 운도 없냐. 돈복도 없고!
"존경하는 검사님께...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삼선 그룹의 김조막 회장입니다. 평소의 후의에 감사드리며 이번에 제가 쓴 시집을 선물로 드립니다. 마땅히 찾아뵙고 전하는 게 예의겠으나 부끄럽고 창피하여 이렇게 손을 빌리게 되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원래 시인의 꿈을 가지셨다는 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또 펴내신 시집도 감동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저도 가방끈은 짧지만 글을 쓰고 싶었기에 부장님과 더 시와 인생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제 첫 시집을 보냅니다. 부디 연락 주시어 한번 뵙고 지도 편달을 받았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검사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