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울면서 걸었는지 모른다

by 황규석

얼마나 울면서 걸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울면서 걸었는지 모른다. 혼자 한참을 걸었다. 눈물이 마를 때쯤 외딴 길이 나타났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작은 길. 건물이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서 다리가 아프다고 느낄 때 덩그러니 놓인 기차역이 보였다. 사람들도 없었다. 안개가 자욱한 역이었다. 뭐에 이끌리듯 역의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하얀색 기차가 한 대 보였다.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씨였는데 너무나 조용했다.


“어서 와라! 얘야,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갑자기 등 뒤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갑자기 부드러운 손을 내 등에 얹은 그 사람 때문에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다. 놀라움도 잠시 사람을 봐서 너무 다행이고 반가웠다. “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지?” 난 그제야 내 몸을 둘러보았다. 허름한 반 팔 티에 신발도 신지 않았다. “네, 다리가 좀 아프지만 아픈 데는 없어요”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걱정 마라, 아이야, 이제 저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면 아프지도 않고 오랫동안 아니 평생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 거야” “네 아저씨, 고맙습니다. 근데 여기는 어디죠? 왜 제가 여기에 있는 거죠?” 아저씨가 무릎을 꿇고 내 볼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응,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넌 착한 아이지, 좋은 데로 같이 가자” “제가 어디로 가는 거죠? 집에 가야 하는데...” “가 보면 알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꾸벅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하얀 얼굴에 키가 큰 얼굴의 아저씨의 미소를 보고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서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나는 역을 다시 천천히 좌우로 앞뒤로 둘러보았다. 하얀빛이 들어오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유령역 같았다. “저기요... 아저씨 그런데요, 배가 좀 고픈데요...”


사실 엊그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무지 배가 고팠다. 아저씨의 손을 잡고 기차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래? 뭐가 먹고 싶니, 네가 좋아하는 게 뭐니?” ”네 제가요, 햄버거를 좋아하고요. 치킨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레고도 좋아해요. 수학은 싫어요. 참,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 그렇구나, 우리 준이는 피자도 좋아하지?” “맞아요, 피자도 있었네 네, 정말 맛있거든요. 헤헤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셨어요?”

나는 아저씨와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오를 때 고개를 쑥 내밀며 주위를 살폈다. 나와 아저씨 말고는 기차에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와 함께 자리에 앉자 곧이어 기차는 출발했다. “빼에에엑 빼엑!” 기차는 정적을 깨고 큰 소리를 냈다. 뭔가가 찢어지는 쇳소리를 내며 출발했고 이내 소리가 사라졌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쪼그려 앉아서 미친 듯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아니 그런데 꿈이 아닌 것 같았다. 어제 일어난 일 같았다. 아침 집에서 늦잠을 자는 꿈이었다. 방문을 쾅 열고 엄마가 나타났다. 손에는 부러진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내가 자는 이불이 젖어있었다. 소변을 본 게 확실하다. 오늘도 화장실에 갇혀 있어야 하고 학교는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떨었다. 방구석에 가서 손을 들고 있었다.


“이 새끼야 너 9살 초등학생이 아직도 이불에 오줌을 싸?” “잘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때리지 마세요. 살려주세요” “너는 또 얼마나 맞아야 정신 차릴래!” 나는 울면서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엄마의 얼굴은 뿔이 난 괴물 같았다. 부러진 야구 방망이가 높게 들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엄마 잘못했어요” 난 눈을 감았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천지가 어둠으로 가득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내 눈물이 말라있는 눈가를 핥는 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간지러웠다. 눈을 뜨니 아저씨는 안 보였다. 내 옆에는 때가 탄 더러운 갈색 강아지가 날 바라보고 꼬리를 치고 있었다. 강아지는 그러나 맑고 커다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 강아지가 있네. 귀여운 강아지? 이름이 뭐야?” 강아지는 내가 앉아 잠든 기차의 자리 옆에서 배를 깔고 누웠다. 나는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었다. 배에 큰 상처가 있었다. 뒷다리도 상처가 있는 거 같아 안타까웠다. “저런, 너 배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구나... 난 준이야. 김 준. 너는 어디서 왔지? 엄마는 없어? 내가 이름을 지어줄까? 음... 동글이 어때?”


동글이는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내가 이름을 지어준 작은 어린 강아지 동글이는 내가 안아주자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난 동글이를 꼭 안아주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주위는 하얀 도화지 같았다. 기차는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동글이와 그렇게 아주 먼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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