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너무 모르는 바보 같은 남자가 있(었)다

공부도 안 하고 사랑도 모르면서 사랑이라 말한 죄

by 황규석
2025.04 춘천

지금도 그렇지만 돌아보면 난 참 바보 같았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우리 과에 눈에 띄는 그녀가 있었다.

소피 마르소를 닮은 여학생을 보자마자 짝사랑에 빠졌다.

단발머리에 젖살이 많았던 또래보다 키가 큰 신입생.

88학번 우리들은 팔팔 꿈나무라고 불렸다.


여자를 사귀기엔 나란 남자는 참 많은 불리한 조건이 많았다.

그런데 남녀공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여자의 심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알지 못했고 연구도 못했을뿐더러 알려고 하지 않았던

무지하고 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숙맥이었다.


집에 가는 방향을 알아두었다고 하굣길 우연인 것처럼

후문을 나가는 그녀에게 다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 다음에

나 너한테 관심 있는데 너랑 사귀고 싶어 그래서 그런데 우리 사귈까?

이렇게 멋도 없고 대화도 없고 매력을 어필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무식하게 들이대면 되면 어느 정도는 될 줄 알았다.


내 심장을 뛰게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그건 외모만 보고 판단한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판단착오였다.

그녀의 심장을 파닥파닥 뛰게 하려면 호감을 느끼게 해야 했는데

나는 여자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완전히 숙맥이었다.

그러니 잘 될 턱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3월 입학 후 자원입대 신청서를 내고

6월 군대 입대해서도 그녀에게 또 편지를 여러 통 썼다는 것이다.

논산 훈련소, 춘천 102 보충대, 화천 사창리 27 시단 78 연대에서도.

정말 그렇게 미련한 바보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2년 선배와 눈이 맞아 나중에 결혼까지 했다고 들었다.


돌아보면 일찍 포기 못한 내가 참 창피하다.

겨우 몇 마디 말을 나누었고 어떻게 상대를 파악할 수 있을까?

사랑 참 어려운 이유는 속마음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여자를 속마음을 모르고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 그런 바보 같은 남자가 있었다.

지금도 있다. 그게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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