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재즈 카페

501호 엘리자베스

by 황규석


501호실에 1년 넘게 엘리가 살고 있다. 그녀는 지금 찾아오는 이가 없다.

얼마전 유리창 너머로 아들이 찾아왔지만 눈만 멀둥 멀둥 뜨고는 못 알아보았다.

우뚝 솟은 콧대는 여전하지만 머리속에는 지우개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음식도 삼키지 못해 콧줄을 한지 2년째로 연하운동을 하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깊은 주름골 안에 잠깐이나마 그녀의 눈빛이 빛을 발할때가 있다. 휠채어에 앉아

맞이하는 아침 모닝 커피 시간이다. 영국 유학시절에도 공부시간이 아깝다고 안마신 커피.

요양병원 간호사가 주는 신경과 약을 탄 종이컵을 믹스 커피로 기억한다.

키피잔을 받아둔 그녀의 모습은 일순간 경건해지고 밝아진다.

나이 예순이 넘어서 마시기 시작한 믹스 커피의 향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른다.

그 달달한 맛은 그녀가 대학 교수를 퇴직하고 처음 맛본 세상의 맛이었다.

늘 책장앞을 벗어나지 않았고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을 잊기위해 강의와

집을 오가는 삶이었다. 그녀에게 오직 유일한 여가시간은 믹스 커피타임이었다.

그리고 스윙 재즈 음악을 함께 듣는 일. 콘트라 베이스의 낮은 저음이 깔리면서

책에서 봐온 높은 세상을 벗어나 지구의 낮은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듯하다.

둥둥 두둥 띵띵 그녀의 뇌신경을 자극하는 달짝찌근한 믹스커피가

그녀의 유일한 낙이자 벗이다. 그녀가 이제 그 커피를 마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지워져도 그녀는 그 달달한 믹스 커피맛을 제 세상까지

가져가리라 다짐한다. 약이 든 컵을 든 그녀가 알듯 모를듯 미소를 짓는다.

말라버린 작은 발가락들이 바닥을 꼼지락거리며 춤추듯 움직인다. 두둥 두둥 띵띵.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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