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영화세상을 꿈꾼 열혈청년의 헌혈 Story

30년 전인 1995년 일기장에 기록된 그때의 헌혈 이야기

by 황규석

헌혈을 하는 동안 그러니까 헌혈 베드에 누워있으면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궁금하지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헌혈을 하시지 않는 분이라면 말입니다. 전 헌혈을 하는 동안 딱히 무슨 생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늘 그 어렵게 만든 귀중한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정리하겠다고 올라가기도 합니다. 또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고 그냥 쉬자, 멍 때리자 하고 올라가 눕기도 합니다. 피곤할 때는 정말 잠이 든 적도 많이 있습니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디지털 AI 시대에는 정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가족, 나의 친구, 직장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등.. 어쨌거나 휴식과 안정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큽니다.


또 챙겨서 가져간 책을 잃기도 합니다. 자주 가는 강남역 헌혈 센터에는 읽어볼 만한 책이 많이 구비가 되어있습니다. 그중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응급실 의사인 남궁인 교수의 '만약은 없다'는 아주 사실적인 묘사와 날렵하고 예리한 글로 응급실의 모습을 그려낸 책인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책은 헌혈을 하면서 갈 때마다 몇 번을 읽었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나뉘는 응급실. 갖가지 사연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사람들. 사고를 당해 오는 사람들. 정말 아픈 일이 많이 일어난 곳의 이야기를 읽으면 눈앞에 그 모습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런 생활의 편리함과 도움도 못 받는 세상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금단증세까지 나타나는 지경까지 오리라고는 30년 전, 아니 불과 10년 전만에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삐삐를 사용했던 시기입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지났습니다. 저도 나이를 50대 후반으로 달려갑니다. 밤이나 흐린 날엔 먼 곳이 잘 안 보여 안 쓰던 안경을 맞춰 올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1995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기록을 찾아보니 1995년 한창 팔팔하던 때 그해 12번의 헌혈을 했네요. 그해 봄 봉제공장의 운전기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하던 '영화세상'이란 모임의 회지를 만드느라 분주히 정말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2025년에서 딱 30년 전인 1995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봅니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이듬해인 1995년에도 유난히 대형 사고가 많았었습니다. 1995년 4월 28일 -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사망자 101명, 부상자 202명), 두 달 후인 6월 29일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방송에서도 위급한 환자가 많아 헌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당시에 많은 분들이 헌혈에 참여했습니다. 저도 95년 이후에 더 집중해서 헌혈을 챙겼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집안이 어려워져 지고 큰 일을 많이 겪었던 파란만장했던 해로 기억이 됩니다.


30년 전 고향 대전에서 헌혈을 하던 때의 모습은 어땠을까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정리를 해봅니다. 지금처럼 흰머리는 없었네요. 아, 몸무게가 제일 적게 나갈 때 60kg까지.... 빠졌었네요. 그때 가졌던 꿈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 여하튼 헌혈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데 안 하면 왠지 찌뿌둥하고 불안합니다. 성분헌혈이 있어서 그래도 자주 헌혈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리를 해보니 당시 영화세상 이란 모임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그때도 정말 부지런히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5월엔 급성 맹장수술도 해서 입원도 했었고요. 대전에 살던 당시에는 중앙로 지하상가나 대전역 앞의 지하상가에서 헌혈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두 없어진 곳입니다.



95.4.20(목) 34회 헌혈 - 작년 12월 8일 이후 4개월 만의 헌혈. 일을 그만 둔지 20일째 되는 날. 오랜만에 주사 바늘을 꽂아서 인지 바늘이 들어갈 때 정말 아팠다. 실력이 없는 간호사일까.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황규석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B형, 눈물 많은 걷기 중독자. 복종에 익숙한 을. 평생 을로 살아갈 예정. 전 영화세상, 대전 씨네마떼크 컬트 대표. 전방위 무규칙 잡종 글쓰기 작가.

13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4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6화"분당천을 지나 태재고개를 걸어가는 465번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