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라(최진희)

by 황규석

제12화 물보라

- 최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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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 때였나... 1984년 LA 올림픽 때. 여름 방학 때 금강 유원지에 (지금 경부고속도로 금강 휴게소) 물놀이를 친구들과 갔었다. 텐트도 없이 그냥 라면과 쌀과 과자만 조금 챙겨서. 시외버스를 타고 휴게소에서 내렸다. 밤에 나뭇가지 꺾어 꽂고 큰 타월 걸치고 자갈밭 위에서 잠을 잤다. 한밤중에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라 금방 그칠 줄 알았는데 비가 거세게 한참을 내렸다. 강가의 자갈 위에 있었는데 강물이 급격히 불어나서 겁이 났다.


우린 짐보따리를 싸서 한밤중에 피난(?)을 갔다. 다음날 비는 그치고 다시 뜨거운 햇살이 나왔다. 졸졸 종아리를 흐르던 물이 제법 허리춤까지 차버렸다. 빠르게 물살이 흘렀다. 흐르는 물 위로 올라가 그냥 엎드려 물살에 몸을 맡기며 놀았다. 나와 친구들은 물 썰매를 타듯 신나게 타고 내려오고 다시 자갈밭을 올라가서 물에 들어가 물살에 몸을 맡겨 내려오며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어서서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까 발이 안 닿고 쑥 몸이 빨려 들어갔다. 흐르는 물살에 깊은 곳까지 흘러간 것이다. 순간 어찌나 당황하고 놀랐는지 모른다. 이렇게 그냥 죽는 거구나 덜컥 겁이 났다. 흐르는 강물이 입으로 밀려 들어왔는데 뱉어내지 못해서 꼬르륵했다. 순간 식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필사적으로 물장구를 치고 발을 저었다. 가라 않았다가 떠 올라갔다 하면서. 정신만 차리면 산다. 정신 차려! 계속 되뇌었다.


죽을 듯 살 동 발버둥을 치니 몸이 나아가고 발이 강바닥에 닿기 시작했다. 코, 턱, 가슴 아래. 그렇게 천천히 얕은 물가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내가 빠져나온 저기 가운데를 보니 다른 친구들 3명 중 2명도 꼬르륵 떠올랐다 가라앉았다가 하는 것이 보였다. 난 주위의 낚시꾼에게 낚싯대를 빌려 그걸 애들에게 던져 끌어냈다. 튜브도 던지고 해서 다른 아이도 물 밖으로 겨우 끄집어냈다. 그렇게 익사 직전에 살아났다.

최진희의 노래 '물보라'를 좋아하던 시절이었는데 물에서 놀다가 하마터면 물귀신이 될 뻔한 이야기다. '물보라'라는 MBC 연속극 드라마가 있었다. 평일에 하던 드라마 시리즈로 기억이 된다. 부상으로 선수를 은퇴하고 작은 시골 학교 축구 코치 선생님으로 온 터프한 남자 (유인촌)와 그에게 다가가 모두가 반대하였지만 가정을 꾸리고 사랑을 이어가는 여인(이혜숙)의 러브스토리다. 물론 그 사랑이 잘 풀릴 리가 없다.


그 드라마의 주제곡이 바로 최진희의 '물보라'다. 축구선수가 되려는 꿈을 가졌던 나에겐 정말 내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쉽게 드라마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금세 빠져들었었다. 세상과의 불화. 타협하지 않았고 세상과는 달절하고 자신의 철학에 고집스러운 운동선수의 꿈. 그리고 바깥세상과의 좌절. 그리고 그를 따스하게 보듬어주려던 여인은 두 사람을 둘러싼 주위의 시선과 외롭게 싸우게 된다는 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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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눈물 많은 걷기 중독자. 복종에 익숙한 을. 평생 을로 살아갈 예정. 전 영화세상, 대전 씨네마떼크 컬트 대표. 전방위 무규칙 잡종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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