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의 2년을 살던 나, 태권도장에 매트에서 자던 아내
- 마 야 -
한국 나이로 41살에 어렵게 3살 아래의 여자와 결혼을 하긴 했다. 찜질방에서 2년을 살았던 남자와 한국에 와서 태권도 체육관 매트에서 잠을 자며 살았던 여자다. 대만에서 데려온 두 제자와 태권도를 가르치고 배웠던 대만의 태권도 사범의 여자랑.
가진 게 쥐뿔도 없었던 시절 그래도 정의하자면 사랑과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 모두 고생을 해봐서 어떤 경우라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란 어떤 단단함이 있어서 두 사람이 한 이불을 덮기 시작한 것이다.
집사람에게 내가 사는 분당선 지하철역 수내역 2번 출구 뒤편의 월드컵 사우나에 데려가서 여기가 참 너른 우리 집이라고 말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이 노래 마야의 ‘나를 외치다’는 새로운 밀레니엄 세대의 첫 10년의 후반기를 관통하는 내 개인의 삶의 노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녀가 대만으로 돌아가기 전 원룸을 하나 구했다. 모자라는 돈은 빌렸다. 그리고 이듬해 그녀가 들어와서는 그녀의 도움으로 투룸 전셋집을 구했다. 일의 특성상 야근이 많았고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못했다. 지금 보면 참 서글픈 일상이었다. 마트에도 늦은 시간에 가서 세일 품목을 몇 개만 사서 돌아왔다.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부러웠던 시절이었다. 급여는 대출금을 갚고 고향 부모님에게 용돈을 보내고 우리 부부가 쓸 용돈을 늘 부족했다. 그래서 대전의 부모님께 보내는 돈을 좀 줄이자고 했지만 아내는 나이 드신 어른들이 힘드니 우리가 좀 덜 쓰면 된다고 해서 날 감동시켰다.
그때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어느 행사장에서였다. 일을 하면서 한 달에 두 번 격주 일요일만 쉬는 여윤가 없는 빠듯한 생활. 언젠가 집사람이 여행 가방을 싸고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산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여하튼 신혼 초 내가 살던 분당구에서 지역 케이블 방송과 걷기 대회를 했다.
걷기 대회 후 분당구청 앞 잔디광장에서 음악공연을 했다. 자전거, 냉장고, 세탁기 등 경품 증정이 있어서 내가 가보자고 집사람을 꼬드겼다. 해가 질 무렵 출발지에 돌아와 가수들의 공연을 보았다. 그중에 한 명이 마야였다.
신나고 경쾌한 ‘진달래꽃’을 부른 이후에 부른 노래가 바로 이 곡 ‘나를 외치다’ 다른 참여자들은 따라 부기도 많이 했는데 인기곡이었나 보다. 서서히 고조되는 리듬도 좋았지만 가사가 정말 와닿았다. 좋아서 결혼했지만 인생은 실전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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