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잡지. 1984년 3월 창간! 동국대 교수 정재형 씨와 평론가 유지나 씨를 배출했다. 내용면에서도 후발주자인 로드쇼와 견주어 볼 때 한 발 앞서있었더. 같은 가격의 책이지만 로드쇼와 비교해 볼 때 어느 정도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달, 그러니까 1996년 4월호부터는 완전히 후발 주자인 로드쇼 스타일로 탈바꿈했다. 우선 지난 3월호 전까지의 책과 이번 4월호의 책 두께를 비교해면 확연히 표시가 난다. 창간 13주년을 기념하고 난 뒤 왜 갑자기 얄팍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는가? 광고야 어찌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용도 부실해진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시 예전의 독특한 색깔이 사라져 버린 어린 중고생들을 위한 흥미 위주의 기사거리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화가 스타를 팔아먹으며 상품이 시장 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본다는 주류영화의 흐름으로 볼 때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의 이 잡지는 상당히 안정적인 소비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마력이 있다.
3, 4년 전의 로드쇼 그러니까 dossier가 나오고 투박했지만 진지한 접근이 보이는 구성이 좋았는데 아쉬워 보인다. 로드쇼에서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로드쇼가 타깃을 잘 잡고 있다. 이제 막 영화에 빠져드는 찰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단맛이 나는 잡지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정성일이라는 스타 편집장이 우두머리인 이 잡지는 말 그대로 얼터너티브 하다. 영화의 패션잡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품위를 지키려고 하면서도 가벼운 소품적인 면에도 손을 대고 있으니 말이다. 키노는 또한 좀 색다를 것을 원하는 신세대와 기성이 잡지에 식상한 스크린, 로드쇼 세대는 물론 새로운 영상세대를 단시일 내에 품 안에 넣는 위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다. 자아도취가 그것이다. 그들은 관객의 소리를 경시하고 멀리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유식한 체하며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 지적 허용심이 가져오는 커다란 폐해는 관객을 무력하게 혹은 나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씨네 21의 독자는 주로 젊은 층과 성인층이다. 전철역에서 혹은 터미널에서 쉽게 잡지를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매주 나오는 만큼 신속하고 상큼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광고, 만화 인터넷 등 공통 관심사에 빠르게 대처하는 기민함은 한계라라는 신문사 내의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독자투고의 성실한 반영은 칭찬할만하다. 문제는 이런 씨네 21의 노력이 얼마만큼 영화현장과 영화관렵번, 문화사회에 영향을 제대로 끼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있다. 실행력이 없는 의견의 개진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광고와 음악, 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영화 본래의 색깔에 더 관심을...
위와 같이 지금의 영화잡지들을 내 주관대로 비교하여 평가해 보았다. 하지만 사실은 나도 예전만큼 꼼꼼히 영화 잡지를 챙겨보고 있지는 못하다. 어떤 때는 첫 장에 나오는 "본지는....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라고 끝까지 다 읽어보기도 했는데 말이다.
영화잡지에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들은 저마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는데 전문적인 영화기고나 영화평론가들에 대한 알맞은 대우나 이야기의 장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역시 지금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기도 쉽고 공부를 하다 온 사람들도 많다.
그들도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할리우드 영화의 충동구매자나 훈련받은 영화벌레가 되지 않게 영화잡지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영화잡지들도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관객들도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영화세상 독자들은 왜 우리가 영화잡지에 길들여지면 안 되는가 그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 월간 관객집단 영화세상 31호 (1996년 4월호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