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올레 완주 4일째 6코스 쇠소깍~ 올레여행자센터

펜이 변신하다

by 펜이

간밤에 푹 잘 잤다. 비록 전기장판이지만 따뜻한 밤이었다. 온몸이 개운하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니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한다. '바람코지 게스트하우스'에서 토스트에 계란 프라이로 아침을 먹고 9시에 출발한다.




가자니아

동녘에서 솟아오른 태양 빛이 출렁이는 바다에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에메랄드빛이다. 들어가 주우면 모두 내꺼다. 아롱거리는 은빛 물결에 수평선이 춤을 춘다.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발길 닿는 대로 나를 이끈다. 오늘은 또 어떤 귀인을 만날까? 또 어떤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질까 사뭇 기대된다. 피로는 누적됐지만, 발걸음만큼은 가볍다. MP3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바람 불어오는 곳'이 콧노래로 리듬을 탄다. 맨 먼저 반기는 게 노란 꽃이다. 처음 본다. 제주도 지천에 깔렸다. 진노란 게 아침에 먹은 계란 프라이 노른자처럼 먹음직스럽다. 차량을 가져온 올레객을 위한 차랑 픽업 서비스 배너 광고. 참 좋은 서비스다. 훗날 캠핑카가 출고되면 유용하게 활용할 것 같다.




등대와 빈지바위

웃수물과 소금막 해안 사이의 높은 절벽 바위 '빈지 바위'가 나온다. 파란 바다와 어우러져 사자의 갈퀴 같다. '빈지'는 제주어로 부엌과 마루방 사이의 두 기둥을 가로질러 막은 널빤지를 말한다. 쇠소깍과 보목 포구 사이에 이런 종류의 바위 이름을 설명한 안내석이 있어 도움이 됐다. 여행객을 위한 배려다.




야자수(위)와 유카 꽃과 갯강활(아래)

바다를 배경으로 나타나는 난대성 식물이 참 제주스럽게 이국적이다. 탄성을 지른다. 난대성 식물이 조금 조금씩 있어 맛보기로 눈요기를 제공하니 제주스럽다는 거다. 올레길을 따라 이런 풍경들은 쭉 이어진다. 키가 상당히 크고 몸집에 비해 꽃도 큰 이름 모를 식물도 있다. 지식인을 통해 아메리카가 고향인 난대성 식물 '유카'를 배웠다. 펜이에겐 스마트폰이 최고다. 이름 모를 식물 사진을 지식인에 올리면 스마트폰이 모두 알려줬다. 갯..강..활.. 참 어렵다. 다음에 만나도 기억이 안 날 것 같다. 갯.강.활...

함께 간 형님이 알려준 석위 종류인 쇠뿔석위 이름도 특이하다. 바위에 붙어 자라는 게 경이롭다. 어제 초대해준 할아버지 댁에서 만난 녀석이다. 그 할아버님 잘 계시는지 벌써 궁금하다. 제지기 오름에서 발견한 우리 꽃 제비꽃이 두셋은 외로웠는지 한 무리를 지어 피웠다.




양식장의 우럭 치어

우연히 양직장에 들렀다. 올레 코스에 올레객을 위해 개방한 시설이다. 굉장한 모터 소리와 검은 비닐막이 드리워진 거대한 양식장이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도록 무료 체험장 안내판이 있다. 치어부터 성어까지 우럭과 광어가 떼 지어 양식되고 있었다. 우리가 횟집에서 먹는 횟감일 거란 생각이 든다. 양식이 가능해져 모든 국민의 회 대중화가 되었다.




소금코지와 한라산

하효동의 남쪽 갯가가 길게 뻗어 나간 곳을 '소금코지'라고 한다. 편평한 바닥 돌에 바닷물을 끼얹져 만든 간물을 솥에 달여 소금을 만들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야자수 뒤로 한라산이 구름에 드리워져 있다. 맑게 갠 한라산의 완전한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나...




섶섬과 유채꽃

발걸음을 재촉한다. 제지기 오름에서 남쪽 바다를 내려다보면 섬 4개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보목 포구 바로 앞에 섶섬, 서귀포항에 새섬과 문섬, 강정 포구 못 가서 범섬이 있다. 제지기 오름 높이가 94.8m라고 해서 히피 봤다. 오르막이 장난이 아니다. 산책하다 모처럼 등산한 기분이다. 등골과 목덜미를 따라 노폐물이 빠져나간다. '제지기'는 오름 남쪽 중턱에 절과 절을 지키는 사람인 '절지기'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기지기 오름과 한라산
보목 포구와 섶섬

제주에는 오름이 약 360여 개가 있다. 저마다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 올레길에 오름을 가능한 한 넣었다고 한다. 제주올레는 이렇게 바다를 끼고돌면서 난대성 식물이 자연스럽게 이뤄놓은 나무 터널이 많다. 봄볕이 좀 뜨겁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구세주다. 같은 나무 터널이지만 모두 다르다. 자연이 빚어놓은 작품이다. 이런 올레가 참 좋다.

올레 터널




소천지

바닷가를 따라 걷다 소천지를 발견했다. 백두산 천지와 비슷해 소천지라고 한다. 날씨 맑고 바람 없는 날에는 소천지에 투영된 한라산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고 한다.




정방폭포

정방폭포에 도착하자 둘 다 체력의 한계가 왔다. 펜이는 오른쪽 발바닥이, 형님은 허리와 어깨가 ㅜㅜ 그래서 긴급 계획 변경이다. 종점 외돌개를 포기하고 서귀포 올레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고 어제 예약한 숙소 올레여행자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래서 정방폭포 입구에서 눈으로만 담았다. 아쉽다. 체.력.한.계




이중섭거리

서귀포 시내로 돌아왔다. 이중섭거리다. 3년 전에 왔던 거리여서 더욱 반가웠다. 관광 관련 부서에 근무할 때 한국관광공사 관계자와 함께였다. 그땐 화백 주거지가 있는 줄 모르고 지나쳤는데 오늘은 초가지붕이 눈에 띄었다. 이 화백은 일본인 아내와 자녀 둘과 함께 아주 작은 초가에서 생활했다.

이곳 제주에서 유명한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궁핍한 생활은 여전했다고 한다.




이중섭 거주지와 예쁜 입구, 이중섭 화백은 황소 그림으로 유명하다.

화가 이중섭은 평남에서 태어나 임용련으로부터 미술 지도를 받았다. 1935년 일본 문화학원 미술과에 입학해 1938년 자유미술협회전에서 협회상을 수상했다. 1951년 서귀포로 피난 와서 약 1년간 거주했다. 1956년 극심한 영양실조와 간장염으로 타계했다.




서귀포올레시장, 중앙에 식물이 자라고 물이 흘러 길손의 쉼터가 된다.

이중섭거리를 지나면 서귀포올레시장이 나온다. 아주머니가 물고기를 사길래 옆에서 지켜봤다. 옥돔이 크기별로 있는데 저울에 단 옥돔이 마리당 20,000원이란다. 시장통인데도 비싸긴 비싸다. 대신 맛은 끝내주겠지ㅎㅎ

혼자만 멋진 곳, 맛있는 곳으로 힐링하는 게 미안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 천혜향을 택배 주문했다. 받을 가족을 생각해 종류와 가격은 비밀~ 다음 주 월, 화요일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서울 딸아~ 너에게도 배송했다. 사랑하는 마눌님아~ 딸들아~ 아들아~ 이거 먹고 눈 찔끔 감아다오~"

한 달 계획으로 제주에 오다 보니 은근히 짐이 많았다. 막상 올레를 다니는 데 필요 없는 물건도 많다. 그래서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해 우체국 택배로 보내버렸다. 큰 딸내미가 말한 대로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마눌님아! 이거 받고 무슨 선물인가 하고 고대하지 말그레이~"

용서를 위한 뇌물(?)이 부족할 것 같아 제주 밀감 초콜렛 가게에 갔다. 주문 과정에서 우리 지역의 고유어를 듣고서 쥔장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전라도 광주에서 왔지라우~"

자기는 고창에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 "복분자의 고장 고창이라고라우?" 했더니 여행객임을 알고 간식거리를 마구마구 집어줬다. 후한 전라도의 인심이다. 뇌물과 거추장스러운 잡동사니를 택배에 넣어 보내버렸다.




제주 현지인이 된 펜이

한복집에서 제주 갈옷을 샀다. 입어보니 마치 제주 현지인 같다. 통기성이 좋아 활동에도 편하다. 펜이 일대 변신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후한 인심과 가벼워진 배낭 덕분에 숙소를 향하는 발걸음은 나빌레라다.





제주올레여행자쉼터 숙소

오늘의 숙박지는 '제주올레 여행자 쉼터'다. 여행객을 위해 작년 제주올레사무국에서 개장한 숙박시설이다. 새 시설물이라 아주 깨끗하고 이용에 편리하다.

도미토리 침대 하나에 22,000원, 1층 카페에서는 차와 음료, 술과 식사를 판매한다. 아침 식사는 산나물 보말죽으로 투숙객은 3,000원, 일반인은 6,000원이다. 전날 미리 쿠폰을 사면 된다.


카페에 전자지도가 있어서 내일 돌 코스를 점검하다 우연히 여행자센터 관계자와 얘기했다. 건강상 6코스 종점인 외돌개를 포기하고 이곳에서 숙박한다고 했더니 이곳이 종점이란다. 2개월 전에 몇 개 코스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럼 우린 6코스 종점까지 제대로 온 거다. 그것도 종점에 숙소를 정하는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 관계자는 여행에 참고하시라며 새로 바뀐 지도를 제공해주어 감사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설령 우리가 다른 게스트하우스나 숙소에 머물렀다면 6코스 종점에 가서 스탬프 찾느라 개고생할 뻔했다. 그래서 내일도 여기서 묵기로 하고 2인실 방으로 예약했다. 요금은 60,000원.

카페와 흑돼지 덮밥

저녁에 숙소 카페에서 1인분 8,000원의 흑돼지 덮밥을 먹었다. 채소와 함께 젓고 나니 완전 비빔밥이다. 먹어 보니 뭔가 1% 부족하다. 간도 안 맞고 소위 감칠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주방에서 고추장을 얻어 비비니 '딱'이다. 전라도에서 왔다고 하니까 "음식의 본고장에서 오셨으니 오죽하시겠어요ㅎㅎ" 라며 웃는다. 그래도 고추장 덕분에 덮밥이 아닌 비빔밥을 참 맛있게 잘 먹었다. 모두가 내일을 위한 에너지가 되리라~

2018-11-05T19:15:16.000+09:00.jpg
keyword